[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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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4. 05:32

   숙희는 며칠 만에 운진에게 간다는 인사를 하러 왔다.
그녀는 여전히 얼굴 만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운진은 언뜻 스치는 눈길에서 그녀의 목덜미가 약간 부었던지 멍이 들었던지 그렇게 보았다.
   "잠깐... 얘기 좀 하죠." 운진은 그 말을 무척 힘들고 조심스럽게 꺼냈다.
   "무슨 얘기죠? 나 비행기 시간 때문에 바로 돌아가 봐야 하는데."
   "저랑... 결혼하자 하시는 거 말입니다.."
   "아, 또 그 얘기예요? 왜 내가 운진씨랑 결혼하고 싶어하느냐고?"
   "보시다 시피, 저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겠고. 마치... 뭐에 홀린듯, 그렇습니다. 아직 결혼도 안 한 상태에서 남의 돈을 임의로 나누시고. 이 사람 저 사람 일방적으로 끊고 맺게 하고 말입니다."
   "운진씨. 그럼, 내가요,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실래요?"
   "어떻게 말입니까?"
   "운진씨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그 시작이 설이가 우리 회사에 취직된 덕분이었어요. 처음에 운진씨 소식 듣고... 많이 갈등했구요. 이제 혼자 되신 운진씨한테 이제라도 우리 앞으로 잘 해보자고, 제가 용기를 내어서 청혼하는 거예요. 됐어요?"
   "저로서는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숙희의 얼굴에 약간의 초조해 하는 기색이 서렸다. 
그녀가 입술을 달짝거리다가 말했다. "혹시 운진씨 나보고, 그럼, 무슨 정표라도 남기라고 하시는 거면... 알았는데요, 지금은 좀 곤란해요. 이해해 줘요."
   "아뇨. 그런 거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아직도 마치 낮도깨비한테 홀린 기분입니다."
   "나 낮도깨비 아니구요... 아이, 어떡허나... 운진씨 아주 은근히... 옛날부터 나를 아주 아무렇지 않게 밀어부치는데. 지금은 정말 곤란해요. 나보고 지금은 일단 갔다가 다시 와서 그 때 보이라면 보일까, 지금은 진짜 곤란해요. 이해해 줘요."
   "숙희씨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정표 남기라고 수작 떠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다만, 이런 식의 결혼을 얼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왜요?"
   "이게 무슨 어린애 소꼽장난도 아니고... 내가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게 해 주시는 것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숙희씨 임의로... 다 처분해 버리시고. 게다가 남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애들 엄마가 되고 싶다, 집을 다 봐놨다, 금방 갔다 온다..."
   "운진씨! 운진씨는 세상을 왜 그렇게 힘들게 생각으로만 살아요? 생각만 하다가 실천은 언제 해요?" 
   "생각만 맨날 하는지, 잘 생각하고 사는 지를 숙희씨가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그야... 내가 운진씨를 몰라요?"
   "우리가 처음 만났다가 헤어질 때까지 겨우 일년도 안 됐습니다. 그리고 이십년을 넘게 서로 모르고 살다가 다시 만났는데, 숙희씨가 저를 아시면 얼마나 아신다고... 제가 그렇게 쉽사리 노출하고 사는 사람 같습니까?"
   "그리... 숨기지도 않잖아요."
   "숙희씨에게만은... 숨기고 싶다 밝히고 싶다, 뭐, 그런... 수준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건 좀 지나친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제 돈 다 돌려주시구요, 결혼은...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구요."
숙희의 검은 안경 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그녀는 울려고 하는 것도 같았고, 두려워 하는 것도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가 한참 만에 얼굴을 들었다. "그냥... 나를 받아 줘요. 프로포즈 하는 거예요."
   "숙희씨! 그런 말은... 프로포즈도 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그런 걸 두고 억지부린다는 겁니다. 남의 의사를 끝까지 무시하고, 어떻게 숙희씨 말만 계속 하면서 저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겁니까?"
숙희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가 약간 굳어진 입술이 되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운진씨를 택해요."
   "살기 위해서라뇨? 그럼, 저랑 결혼 안 하면 숙희씨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는 겁니까?"
   "안 좋은 일 뿐만 아니라 내가 어쩌면... 죽을 지도 몰라요."
   "뭐요?"
   "지금은 말 못해요... 제발... 내 말만 들어줘요. 이렇게 애원할 께요." 
   숙희는 운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 내가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어요. 나를 구해줄 사람은 오직 운진씨 뿐이예요. 제발, 그 말만 받아주고, 나와 결혼해요."
운진은 이 여인이 장난 아니라고 걱정이 들었다. "저, 제가 결혼해 드리면 괜찮아요?"
   "네!"
   "해요, 그럼! 합시다?"
숙희가 얼른 일어섰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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