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7-1x061 모든 일에는 그 까먹은 시작이 있어요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4. 05:30

모든 일에는 그 까먹은 시작이 있어요

   미스터 오. 
   댁은 나한테 한 모든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친절하게 내가 댁을 겁나게 한 문젯점을 지적했어요. 그런 말들이 나를 깊게 생각하게 했고 난 22년전으로 돌아갔어요. 내가 댁한테 한 일이 미안해요. 다음 주에 휴가를 냅니다. 내가 날아가서 댁을 만날 거예요. 뭐, 이 이-메일이 댁을 거북하게 한다면, 우리가 만날  때 내게 말해요. 언제 정확히 비행기 탈 지 키미에게 말할 께요. 빠이! 
킴벌리가 '빠이!' 에 힘을 주었다.   
운진은 딸들의 안색을 의아한 눈길로 살폈다. '얘들하고 숙희씨하고?'
킴벌리가 아빠를 올라탔다. “22 years, huh! (22년씩이나, 엉!)”
챌리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How romantic! (참 낭만적이네!)”
   “Classic! (구식이지!)” 
   킴벌리가 침대에서 내려갔다. “She’s coming to kick your ass! (그녀가 아빠를 혼내주러 온대!)”
딸들이 각자의 방으로 물러간 후 운진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숙희씨를 다시 볼 수는 없지. 도둑놈이냐, 뻔뻔스럽게! 이 지경이 돼 갖고도 미련을 가지면 진짜 나쁜 새끼지.’
   운진은 천장을 보고 누웠다. 쟤네들이 언제 숙희씨와 이-메일을...
   숙희의 얼굴이 천장에서 맴을 돌았다.

   며칠 후 애들의 성화에 운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공항으로 끌려 나갔다. 
되려 애들이 출구를 열심히 지켰다.
챌리가 큰소리로 말했다. “I think that’s her! (내 생각에 저 여자 같애!)”
운진은 슬쩍 곁눈질로 챌리가 가리킨 방향을 봤다. 
키가 늘씬하고 머리가 긴 사십대 후반, 아니, 오십대의 여자가 얼굴 만한 색안경을 쓰고, 구둣발 소리도 정확한 박자로 또각거리며 걸어나왔다. 
물론 숙희였다.
챌리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아줌마?”
   “챌리?” 
숙희의 목소리를 듣고, 운진은 오금이 저려왔다. 
   ‘아니, 내가 왜 이러나! 아니, 왜 저 여자만 대하면 겁이 나냐구!’
   “하아이!” 킴벌리가 숙희를 안았다. 
   “네가 키미?” 숙희가 마주 안았다.
운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모친상 때 집에 와서 저녁을 같이 먹은 것 뿐일 텐데 그들이 아는 척 하는 분위기는 마치 오래 전부터 가깝게 지낸 사이같이 보였다.
   “나오셨네요?” 숙희가 운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안녕 하십니까?” 
운진은 숙희의 여자치고 큰 손을 살짝 잡으며 경계했다. 본능적으로 숙희에게 방어자세를 취했다.
숙희가 손을 놓고 웃었다. “왜 그래요?”
   “He’s chicken-shit! (그는 겁장이!)” 킴벌리가 말했다.
세 여자가 주위를 아랑곳 없이 크게 웃었다. 
운진은 어이가 없어 에게게 하며, 주위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상관없다는 제스처를 했다. 
챌리와 킴벌리가 숙희의 양 손을 나눠 잡고 걷기 시작했다. 
운진은 숙희의 트렁크를 찾아들고 여자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동작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많이 해 본 짓 같이 느껴졌다.
숙희가 비행기로 오고 그가 그녀를 마중 나가는데 그가 그녀의 짐들을 나르는...
세 여자는 마치 오래 전부터 친한 사이처럼 너무도 정답게 걸어갔다. 특히 킴벌리가 숙희의 팔에 매달려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까불었다. 숙희의 팔이 챌리를 꼭 안아주는 것이 뒤에서 보였다. 
세 여자가 뒤를 보고는 허리가 끊어져라 웃었다.
   ‘그래, 느그들 잘났다.’ 
운진은 어차피 자신이 빠져도 세 여자는 한데 어울리기로 돼있을 것 이라는 추측이 들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운진은 누구보다도 킴벌리가 숙희를 너무 좋아하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죽은 제 친엄마한테 했던 것보다 더 엄마처럼 대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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