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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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4. 05:30

   아무 것도 할줄 모르는 숙희는 거들기만 하고, 챌리가 거의 혼자 저녁을 차렸다. 
저녁 식탁도 세 여자의 차지였다. 
처음 대하는 자리인데도 챌리와 킴벌리가 숙희의 늠름한 모습에 매료되었는지 연신 말을 붙였다. 
숙희는 어느 면에서는 명령쪼의 말투를 쓰고 있었지만 두 딸은 개념치 않는 기색이었다. 
숙희는 주로 그들이 학교에서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어딜 다니는가를 물었다. 
챌리와 킴벌리는 싫은 내색없이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고 때로는 무얼 묻기도 했다.
   운진은 그녀들의 수다를 대충 들으며 식사를 묵묵히 끝냈다.
딸들이 설겆이는 저희들이 한다고 아빠와 숙희를 밖으로 떠밀었다.
두 사람은 나무로 끝도 없이 세운 울타리에 걸터앉아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봤다.
   “들어오는 입구에 집 하나가 나왔더군요?” 숙희가 말을 불쑥 꺼냈다.
   “어, 녜...” 
운진은 의아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집은 또... 왜?
   “저한테, 편지에 쓴 것처럼 저한테, 미안하세요?”
운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녜.”
   “저도 미안해요. 저 많이 생각했어요.”
   “숙희씨가 미안할 건 없죠, 사실...”
   “나 챌리하고 킴벌리가 너무 좋아요. 딸 같애요.”
   “망나니들인데요, 뭘…”          
   “저 다시 이쪽으로 와요. 그 동안 본사와 추라이해서 지사 하나를 열기로 합의보고 지난 주에 어프루브가 됐어요. 내 실력 이만하면 괜찮죠?”
   “어, 녜.”
   “좀 전에 들어오다가 요 앞의 집을 봤는데, 괜찮더라구요? 애들도 좋아하고.”
   “애들이 좋아해 봤자죠. 애비가 능력이 없는데.”
   “제가 살 거죠.”
   “아아, 네에.” 
운진은 고개를 크게 끄떡거렸다. 댁이 살 집을 왜...
   “우리 한번 가 볼래요? 겉에서만이래두 보게?” 
숙희가 울타리에서 가볍게 내렸다.
   “어, 저기, 어두운데 보게 할까요?”
   “지나가면서 보는 것도 안 될까요? 낮에 봤어요. 운진씨도 보시라고. 가요!”
운진은 이미 선택도 없이 끌려 내려졌다. 
   밤에도 색안경을 왜 쓰고 있지? 희한하네.
그가 챌리의 차 열쇠를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숙희가 그를 세웠다.
   “나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 원해요.”
   “녜에?” 
   운진은 문자적으로 땅에서 발이 뜨도록 놀랬다. “아, 안 돼요!”
   “싫으세요? 애들하고는 합의를 했는데.”
   “안 돼요! 그러면 제가 도둑놈이 돼요. 안 돼요!” 
   운진은 신음처럼 부르짖었다. "말 같아야..."
   “거절인가요?”
   “안 돼요! 전 숙희씨의 청을 들어드릴 수가 없어요. 전 아주 나쁜 놈이예요. 저는 진짜 나쁜 놈이예요. 저와 어울리시면 숙희씨가 사람들 한테서 손가락질 받아요. 안 됩니다.”
   “저는 이런 말 하기 쉬워서 하는 줄 알아요?”
   “아뇨. 그렇지만 저는 나쁜 놈이예요. 숙희씨께 나쁜 짓을 한 이상 숙희씨의 청을...”
   “오운진!” 
   숙희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녀는 곧 후회했다. “미안, 운진씨. 우리 지난 일은 얘기하지 말아요. 상처만 기억나니까.”
운진은 울고 싶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얼른 차 키 갖고 나오세요. 전 여기서 기다릴께요.”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른요!" 
   그녀가 그를 툭 밀었다. "말로는 미안하다면서 미안해 하는 구석이 하나도 안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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