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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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5. 00:15

   고국은 초여름으로 접어드는데, 알프스 산의 한 벙커에서는 벽난로의 장작이 불꽃을 튄다.
숙희가 딸들과 인터넷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뽑아낸 여행의 시발점의 한 부분.
영화에서나 보았을까, 운진은 어색해서 어디 앉아야 할지 모르는데, 숙희와 딸 둘은 불 앞에 앉아 담소를 하고 있다. 
이방인이란 단어가 운진의 뇌리를 스쳤다. 
   젠타일(Gentile). 유대인들이 저들을 뺀 다른 모든 족속들을 부르는 칭호. 
비단 숙희와 같은 부류처럼 행동하는 딸들에게서도 이방인 느낌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서도 이방인 같은 버림을 받고 있다. 
   죽은 아내 영란은 무드를 모르는 여인이었다.
몸 노출도 서슴없이 했고, 거침없이 ㅇㅇ로 감행하고, 남편의 얼굴을 ㅇㅇ 앉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행위를 뭇남자들과도 했겠지만 그녀는 그러니까 직선적이었고 노골적이었다.
   반면, 숙희는 말이 결혼식을 거행하고 신혼 여행을 왔다 뿐이지 아직 잠자리는 커녕 입맞춤도 없다.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딸들에게 '너희들도 같이 갈래?' 하고, 여행에 끌어들인 숙희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벙커에는 방이 두개 있다. 그것도 나무벽으로 붙은 아주 좁아 터진 방이다.
방바닥은 흙이라서 당연히 신을 신고 침대까지 다가가야 한다.
거의 하루를 스키 탄 사람들이 즉 피곤해서 자야할 사람들이 벽난로 불에다 쇳덩어리 주전자를 매달아서 물을 데우고, 커피를 또 타서 마신다.
운진은 방 두개 중 짐이 어떻게 놓여졌나 조사하고는 여기가 잘 방이다 싶어서 들어갔다.
그가 침대 위에 벌렁 누우니 얇은 요 같은 것 밑에서 스프링이 찌꺽찌꺽 울었다.
   '크크크! 섹스는 다 했군!'
운진은 속으로 웃었다. '할 리도 없겠지만...'
그나저나 딸들이 언제부터 이런 낭만적인 분위기에 어색함 없이 금방 동화되는지 운진은 궁금해 하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
운진은 차가운 감촉을 입술에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신혼 여행 와서 먼저 자는 신랑이 어디 있어요?" 
   숙희의 웃는 얼굴이 코 앞에 있다. "코까지 골구..."
   "아, 녜. 잠깐 졸았나 봅니다."
   "졸긴요. 아주 한밤중처럼 자던데..."
   "애들하고 얘기를 재미있게 하시길래. 애들은, 옆 방에...?"
   "음. 옆의 벙커로 갔어요."
   "옆에는 침대가 여분 있어요?"
운진은 상반신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숙희에 의해 눌려졌다. "그럼, 같이 자요?"
   "아니, 뭐... 방은 두개길래."
   "파이어플레이스에 불 폈어요. 나올래요?"
   "그럴까요?"
운진이 숙희에게 손 잡혀서 따라 나온 꼴이 되었다.
좀 전까지는 아이들과 앉아 있었던 자리에 담요가 깔렸고, 짐승의 털 같은 것이 덮혀있다.
   "문 단속 좀 하시고, 창문 가리개 모두 하실래요?" 숙희가 짐승 털을 들추고 앉았다.
   "아, 녜!" 
운진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창문 가리개를 모두 닫고, 역시 나무로 된 문을 흔들어서 잠긴 것을 확인했다. 
나무문은 보기에는 엉성해 보여도 바람 한 점 새들어오지 않았다. 
방 안은 나무 타는 불 말고는 아주 깜깜했다. 
눈을 아주 크게 뜨고 봐야 코 앞이 보였다.
그가 불 앞으로 돌아오니 숙희가 짐승 털 안에 들어가 누워서 올려다 보고 있다.
운진은 언뜻 보니 그녀가 방금 전까지 입었던 옷가지가 얌전히 접혀서 그녀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였다.
   "옷 벗고 들어와요." 
숙희가 긴 팔 하나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팔은 매끈한 맨살이었다.
운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녜?"
   "우리 첫날 밤 안 치룰 거예요?"
   "아..." 운진은 짐승 털 담요 안에 그녀의 나신을 상상했다.
비록 털 담요이지만 여인의 몸이 마치 벗었다 하고 그 윤곽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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