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pt.2 9-1x081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26. 00:39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생존하려

   이튿날, 숙희와 운진은 걸어서 고풍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거리로 나섰다.
호텔 라비에서 준 관광 소개 전단지를 소중히 들고서.
북위도가 높다 보니 봄의 북유럽은 기온이 낮았다.
숙희는 코트를 입고, 운진은 편한 파커를 입었다.
두 사람이 팔짱을 바짝 끼고 거리를 걷는데, 무척 어울려 보였다.
   "어머어! 여기서 또 만나네에?" 단체 여행객들 중 한 여인이 숙희를 먼저 아는 체 했다.
운진은 속으로 아, 재수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상한 눈초리를 하는 남자가 숙희를 자꾸 훑어 보는 것이다.
   '자식은 지 마누라나 잘 간수할 것이지!' 하는 눈초리로 운진은 그 자를 자꾸 째려봤다.
숙희가 그들과 인사하고 운진에게로 왔다.
   "같이 어울리자는데, 안 하길 잘했지?" 숙희가 운진의 팔을 꽉 잡았다.
운진은 뒤를 돌아보고는 그 자가 역시 이쪽을 돌아보는 것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운진은 숙희가 어려워서 주저하던 태도를 고쳐서 그녀의 허리에 팔을 돌렸다.
   "오오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이제 신혼 여행 온 기분이 나네?" 
   숙희가 얼른 목을 움추렸다. "아니다! 우린 25주년 여행이다!"

   미국은 아무 음식점이나 가면 냎킨을 그야말로 휴지처럼 쓰는데 숙희와 운진이 큰 맘 먹고 들어간 북 유럽 스타일 레스토랑에서는 누런 종이 딱 한장씩만 주었다.
그것을 둘은 앞뒤로 뒤집어가며 쓰고 나왔다.
그들이 느낀 유럽은... 절약하고 알뜰하고 부강한 나라들이 아니었다. 
특히 영국은 사는 것이 너무 힘든 것처럼 느껴졌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밝은 기운이 하나도 없이 종종거리는 걸음들로 재촉할 뿐이었다.
자동차도 미국에서는 재구와라면 영국에서 만드는 고급차 하지만, 정작 런던 시내를 질주하는 차들은 하나 같이 장난감 만한 차들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걸어 다녔다.
그나마 차를 소유한다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요 차를 세울 공간의 거처에서 사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몸만 뉘일 협소한 장소에서 사는 것 같았다.
영화 같은 데서 보고 가고 싶어하던 유럽여행은 역사적으로는 볼거리들이 많았지만 뒷골목을 들여다보면 영세민같은 생활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북유럽여행은 사치였다.   
   숙희와 운진은 원래의 예정에서 이틀을 앞당겨 귀국하고 말았다.  
챌리가 워싱톤 디 씨 내쇼널 공항으로 마중 나왔다. "벌써 오세요?"
   "응. 엄마가..."
   "응, 아빠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다가 웃었다. "그냥 왔다."
결혼 휴가를 이틀 남기고, 숙희는 운진과 따로 회동을 가졌다.
해가 지는 뒷뜰을 내다보며, 두 사람은 와인을 가득씩 딸았다. 
유럽에서는 와인 값이 얼마나 비쌌는지 한방울이라도 남길새라 글래스를 핥을 지경이었는데 미국 여기서는 줄줄줄 부어서 마셔도 아깝지가 않다.
   "나보고 세일즈를 계속 하라구요?"
   "운진씨 구역이 생겼다며?"
   "그게 실은 탐의 구역을 자른 거지요." 
   "탐이 준 거 아니구?"
   "하긴 탐은 지금 은퇴 준비를 하고 있어요."
   "탐을 초대해서 직접 말하자, 운진씨. 회사에 추천해 달라고."
   "그래두 되는 건지..."
   "어차피 은퇴하면 탐의 구역을 회사에서 나눌 텐데, 일부를 달라는 게 뭐 어때서?"
   "그래두 되면 그러든지."
   "Dog eat dog world. Or be eaten. Have no choice."
   "..." 
운진은 물론 그 말의 뜻을 안다. 먹고 먹히는 세상. 선택은 없다. 하지만...
   "우리 둘 중 누군가는 일을 해야지, 운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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