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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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2. 05:29

   숙희는 시간이 가도 눈썹학생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같이 있던 학생에게 넌 제발 입 좀 조심해라 응 하고 어른처럼 말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장을 나가서는 제법 폼 재면서 담배를, 그것도 건방지게 꼬나 물던 모습이. 
서울.
숙희는 고 3이 되도록 서울을 구경 못 했다. 왜.
그녀의 모친은 서울을 무슨 사람 잡아가는 곳처럼 표현하며 딸에게 절대 생각도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서울에서 소위 데모하고 도망다닌다고 말한 학생들은 달라 보였다. 
장호원에서 보는 남학생들과 많이 달라 보였다.

   "엄마. 정애는 서울로 대학 간대."
숙희는 방과 후 모친에게 어려운 말을 꺼냈다.
   "정애가 실력이 되남?" 송여사는 딸의 말을 일단 부정적으로 받았다.
   "걔 중학교 때부터 체조한 걸루."
   "워떻기?"
   "체육대 특기장학생으루."
   "그런 것두 있니?"
   "엄만... 일본에서 유학했다며. 그럼 대학교는 여기서 안 나온 거야?"
   "엄만 고등학교도 일본에서 다녔다고 했잖어."
   "그럼, 엄만 일본말 아직도 해?"
   "암. 하지."
   "나도 차라리 일본으로 유학 갈까..."
   "얼래. 너 돈 있어?"
   "엄마 돈 없어?"
   "너 일본 유학 보낼 돈은 없어."
   "그럼, 서울로는?"
   "요것이!" 송여사는 말로만 쥐어박았다.
숙희는 책가방에서 숙제할 것들을 꺼냈다.
밖에서 숙희야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애 왔네?"
엄마의 말에 숙희는 하는 수 없이 들어 와 하고 소리만 질렀다.
곧 키가 아담한 정애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섰다.
   키가 백오륙십 센티미터 가량인 정애는 키 큰 숙희에게 늘 질투했다. 
그래서 숙희는 실상 백칠십이 센티미터인데 늘 백육십팔이라고 고집한다. 숙희는 정애와 다닐 때는 일부러 구부정하게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보이려고까지 한다.
정애는 남학생들과 장난도 잘 치고 빼앗아 먹는 걸 좋아했다. 
숙희는 정애와 있으면 말도 하고 웃기도 하는데 남학생들에게는 차게 굴어서 별명이 얼음이었다.
둘이 붙어 다니면 정애가 주로 돈을 썼다. 그녀의 부친은 뭐를 하는지 전국 방방곡곡 다닌다는데, 정애는 사는 것에 비해 돈이 늘 풍부했고 잘 썼다. 물론 숙희에게만이었다.
숙희는 용돈을 받으면 모아서 되려 엄마에게 선물을 했다.  
그리고 정애는 숙희의 숙제를 늘 베꼈다. 그래서 혹간 수학선생이 여러 학생들을 임의로 지적해서 정애도 불려 나가 풀라 하면 베낀 것을 칠판에다 옮기기는 해도 설명을 못했다.
그러면 선생은 정애에게 꿀밤을 먹이며 남의 것 베꼈구나 하고 망신을 주었다...
   정애는 이 날도 숙희의 숙제를 그대로 베꼈다. "설명해 봐."
   "뭐를?"
   "이게 왜 1 나오는지 설명하라니까?"
   "그냥 주욱 풀어보면 1 나와."
   "너 담부터 떡볶기 안 사준다?"
   "그럼, 떡볶기 두 번 사." 
숙희는 그렇게 너그럽게 굴었다.
정애는 베껴서 답을 썼으면서도 왜 그 답이 나오는지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안 되었다.
숙희는 정애가 정말 서울로 진학하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참았다. 얘네는 돈이 많으니까.
송 여사는 딸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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