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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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2. 05:30

   "너, 그럼, 한 소령님네서 학교 다닐래?"
   "엄마!" 
   숙희는 대번에 눈물을 글썽였다. "차라리 대학 안 갈께."
숙희는 더운 날인데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송 여사는 한 소령 보다는 정 장군이 더 두렵다. 왜.
정 장군이 숙희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나올까 모르기 때문이다. 혈육이라고 반길지 아니면 남의 가정 파탄 일으킬 일 있느냐고 난리를 피울지 감이 안 잡힌다.
차라리 한 소령에게 비밀 지켜 달라 하는 편이 더 수월할 것 같다.
그런데 딸은 한 소령 말만 듣고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그러나 숙희는 서울로 진학하고 싶은 열망이 점점 가열되어 갔다. 
그 이유는 한 소령이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면, 혹 혼자 자취하며 다닐 일이 걱정되지않기 때문도 아니었다.
   어느 대학생이 눈썹 학생을 야 운진아 하고 부른 것이 시일이 흘러도 또렷히 생각난다. 그녀가 생면부지인 어떤 남학생을 다 합쳐서 오분 동안 보았나. 그런데 그의 첫인상이 강렬하게 화인처럼 찍혔다.
숙희가 고 3인 학교는 남녀 공학이다.
숙희는 여학생으로서는 큰 키이지만 그래도 남학생들 보다 크지는 않았다. 남학생들 중에서 시시껄렁한 애들은 숙희에게 감히 말도 걸지 못했다. 그래도 개 중 공부도 잘 하고 집안도 괜찮은 남학생 애들이 접근하고 교향곡 LP판 같은 것을 구해서 선물하고 그랬다.
숙희는 어느 남학생이건 어떤 호의이건 다 물리쳤다. 왜.
그녀는 남자 하면 생애 최초로 상면한 사람이 한 소령이다. 그리고 그 한 소령은 음흉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 남자들이 다 한 소령 같다면 혼자 늙어 죽을 거라고 벌써 이른 나이에 결심했다.
그런데 엄마는 정 서울로 공부하고 가고 싶으면 그런 사람네 집에서 다니라니.

   "숙희, 너 무슨 고민거리 있니?" 정애가 물었다.
   "..." 숙희는 고개만 저었다.
   "선생님이 너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원서 못 낸대?"
   "..." 숙희는 고개만 저었다.
   "그럼, 니네 엄마가 가지 말래?"
   "아니." 숙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근데, 너 왜 그래. 도시락도 안 먹구."
   "서울에, 대학에 붙어두 다닐 방법이... 너무 싫어서."
   "너 서울에 누가 있어?"
   "아니." 
   "근데, 뭐가 싫어?"
   "그런 게 있어."
   "나한테도 말 못할 그런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숙희는 정말 모르겠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숙희는 고교 3년 동안 희한하게도 정애와 늘 같은 반에 뽑혔다. 물론 출석 번호는 정애가 앞이고 숙희가 뒤이지만 둘은 늘 같이 등교하고 점심 도시락도 같이 까먹고 하교도 같이 했다.
정애네는 비록 하꼬방이라고 부르지만 식구들만 사는 집이고.
숙희는 모친과 전셋방에 산다.
그런데 여학생이라고 집에서 방을 따로 받은 정애가 늘 숙희네 단칸방으로 와서 먹고 자고 뭉갰다.
   숙희는 모친이 조금 여유 있어서 딸을 대학에 보낼 준비를 했는데. 
정애네는 최근 들어 그렇지 못해서 천상 전액보조 받고 교복까지 나오는 국립대학을 지원해야 했다. 그렇다고 서울에 있는 일류 국립대학을 들어갈 실력은 안 되고 해서 특기 장학생에게 혜택을 주는 다른 국립대학을 지원하는데, 정애가 숙희를 마치 고문하듯이 졸랐다. 
같이 가자고.
정애는 체조로 밀어볼 것이라며 숙희더러 너는 태권도로 써 내보라고 졸랐다.
숙희는 대번에 안 한다고 나왔다. 그녀가 태권도를 배운 것은 순전히 한 소령 때문이었다. 그녀는 심지어 일곱살 될 때까지 자신이 사내아이인 줄로 알고 자랐지 않은가. 머리도 늘 상구머리였었고.
   한순갑 소령이란 자가 그렇게 시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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