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집 앞에 누런 천지붕을 뒤집어 쓴 찝차가 세워진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정애는 계속 재잘거리며 두어 걸음 더 가다가 멈춰섰다. "왜 그래?"
"아... 쫌 이따 들어가자."
정애가 찝차를 가리켰다. "저 차 맨날 누군데?"
"돌아가신 아부지의 부관이셨대."
"근데. 왜 맨날 와?"
"우리 떡볶기 먹으러 가자. 응? 내가 살께." 숙희는 정애의 팔을 끌었다.
그 때 한순갑이 대문을 나섰다. "오! 숙희야!"
숙희는 이미 돌아서서 가기 시작했다.
"야!" 한순갑이 꽥 소리질렀다.
정애가 돌아서서 숙희를 쫓아갔다.
"너 일루 못 와?" 한순갑이 동네가 떠나가라고 소리질렀다.
송여사가 대문을 나왔다. "한 소령님, 저..."
"어쭈? 이것들이?"
한순갑이 공군 잠바 소매를 걷어 올리려 했다. "딸내미 교육 이렇게 밖에 못 시키지."
송 여사가 한순갑의 잠바 자락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겉의 나일롱은 맨질맨질한지라 손이 미끄러졌다.
"야!" 한순갑이 마치 교관이 훈련병들에게 소리치듯 그렇게 했다.
숙희가 뛰어 가기 시작했다.
정애가 뒤를 돌아다 보고는 같이 뛰기 시작했다.
"허! 조게 달아나면 어디까지 가겠다고."
한순갑이 워커발도 사각사각거리며 숙희가 마악 꺾어져 달아난 모퉁이로 뛰어갔다.
끼이익! 쾅!
새나라 탴시가 삐뚤거리며 모퉁이에서 나타났다.
그 탴시가 서고 운전수가 내렸다.
이 씨발놈의 군바리 새끼가 뒈질려고 환장을 했나 하는 고함소리가 사라졌다.
송 여사는 절망적으로 쿵쾅 뛰는 심장을 부여안고 그 모퉁이를 향해 뛰어갔다.
한순갑은 탴시 운전수에게 반 죽도록 맞았다. 아니.
한순갑은 탴시 운전수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 운전수는 탴시가 찌그러진 것을 볼 때마다 한방씩 날렸다. "나 먹여 살려, 이 씨발놈의 군바리 새꺄!"
그 날 따라 바람은 매서웠다. 그러나 숙희는 모친의 팔을 잡고 서서 한 소령의 비굴해 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웬지 눈에 익은 장면 같았다. 한 소령이 누구에게 혼나면서 쩔쩔매는 모습이.
서울은 연일 데모로 난리인데.
장호원은 얼어붙은듯 신작로는 조용했다.
내일이면 숙희가 정애와 같이 서울로 시험보러 올라가는 날이다.
송 여사는 두 딸내미에게 몸보신 시킨다고 사골을 푹 고아서 그 국물을 먹이고 있다.
"그래도 정애가 아는 집이 있어서 다행여. 아니었음, 너이 둘이 여관방에서 잤어야 허는디."
두 여학생은 뿌연 국물에다가 밥을 말아서 하하 하고 불며 먹는다.
"우리 둘이 여관방에서 자면 좋은데, 그치." 정애가 까불었다.
숙희는 웃지도 않고 뭐라 하지도 않고 수저로 얼른 먹기나 하라는 시늉만 보였다.
"느네들 핵교 어떻게 찾아가는 줄 알어?" 송 여사는 또 다짐한다.
"원서 사러 갔다 온 사람한테..."
"그래두 수험장에 늦어서 못 들어간 사람도 있대니까."
숙희는 그저 덤덤하다.
시험 치러 가지만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안 든다.
떨어지면 엄마랑 살지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체육 선생님이 농구 하라는 거 할 걸. 그랬으면 어디 농구 장학생으로 들어갈텐데.
근데 붙어도 어디서 학굘 다니나.
그랬는데.
"숙희, 서울로 가야 하면, 엄마, 이사할껴."
"정말?"
숙희는 반색했다. "나 땜시?"
'[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3//1-7x007 (4) | 2024.10.02 |
---|---|
pt.23//1-6x006 (5) | 2024.10.02 |
pt.23//1-4x004 (0) | 2024.10.02 |
pt.23//1-3x003 (1) | 2024.10.02 |
pt.23//1-2x002 (2) | 2024.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