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물에 그 밥
숙희는 야유회들 갔을 일요일날 시내에 잠깐 나가서 책방을 들렀는데.
누가 뒤에서 그녀를 툭 건드렸다.
숙희는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보기보당 또 문학소녀인개벼?" 남자의 유별난 사투리.
숙희는 고르던 책을 탁 놓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책방을 나섰다.
"어이, 나 좀 쪼께 보더라고?" 김흥섭 중위 특유의 코맹맹이에 비꼬는 말투.
챙피도 모르나 하고 숙희는 계속 걸어갔다.
워커발의 찍찍소리가 잦아지고, 숙희는 저고리 단을 잡혔다.
숙희는 그 손길을 때려서 치우게 하고 돌아다 봤다.
"아따, 나이도 어린 것이 싸납네, 잉?"
정복 차림의 김 중위와 교련 조교가 나란히 서서 빙글빙글 웃었다. "인물 베리겄네."
숙희는 그 두 사람한테 겁 같은 것은 나지않았다. 한 소령님한테는 어려서부터 야단 맞는 것을 당해 와서 큰 다음에도 겁부터 나지만 저들이 어떻게 하겠나.
숙희는 아무 버스나 타고 가버릴까 아니면 다른 책방을 들어갈까 망설였다.
만일 아무 버스나 타면 저 둘이 따라 탈 것 같고, 아무 책방이나 들어가자니 나중에 못 나오게 막을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걸어가 버릴까, 그러면 저들이 제 갈 길로 가려나 계속 망설였는데.
김 중위와 조교 하사가 그녀를 가운데 들어가게 하고 앞뒤로 섰다.
길의 행인 아무도 그들을 쳐다 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외출이나 휴가 나온 군발이 둘이 처녀 하나를 히얏까시 하는 정도로 봤는지.
"워떻기. 나한테 사과 안 빚졌냐?" 김흥섭이가 숙희의 손을 잡으려 했다.
숙희는 뒤로 한 걸음 내딛으려다가 어떤 몸이 바짝 막은 것을 알았다.
"아따. 몸 좋네요, 소대장님, 에." 조교가 감탄했다.
거리가 너무 없다 하고 숙희는 옆으로 비켜 서려 했다.
조교가 똑같이 따라 움직였다.
"내랑 조오기 다방에락도 들어가서 이야그 좀 헐까나?" 김흥섭이 손을 내밀었다.
그 때였다.
어디서 어 저기 우리 학교 쟤잖아 태권도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날아왔고.
여러 명의 발소리들이 후닥닥닥 다가왔다.
맞네 71 학번 윤창원이랑 단짝 하고 같은 여성이 말했다.
어 교련이네 하고 남자들이 말했다.
조교가 학생들을 돌아보며 폼을 탁 잡았다. "느그들은 인사도 안 하냐?"
학생들이 일단 당황해서 어 어 했다.
여학생이 숙희의 손을 잡아 끌었다. "무슨 일이니?"
"아무 것도 아녜요." 숙희는 일단 움직인 다음에 손을 풀었다.
김 중위와 조교가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학생들이 숙희를 에워싸고 가기 시작했다.
숙희가 월요일에 등교하니 벌써 어떤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각설하고.
김 중위가 ROTC 후보생들을 아침부터 집합시켜놓고 단체 기합을 주고 있었다.
조교가 엎드려 뻗친 자세가 안 좋다고 하나도 안 빼놓고 빳다로 치고 다녔다.
학교 측에서는 법적 교련 시간이 모자라서 채우려 한다는 것에 속수무책.
교무실에는 창원이가 불려가 있었다.
김 중위는 현역이라 학생과 말썽이 생겨도 아무런 제약을 못 준다고.
만일 잘못 보이면 그나마도 현역 장교를 교관으로 안 보내주고, 그러면 학교는 공화당 정부의 문교부에서 정한 교련 과목을 이수 못 하게 되고 운운.
숙희는 점심 시간에 창원을 만났다.
창원은 그래도 숙희에게 김 중위의 치사한 권력남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이 교무실 사환에게서 들은 자초지종을 숙희에게 들려주었다. 치사하지않니 하며.
숙희는 천상 소령님을 만나 봐야 하나 하고 속이 상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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