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할 일들을 만들고
숙희가 어느 새 다시 내려와 있었다.
"나한테,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야, 자기?"
"이리 와!" 운진은 손짓과 함께 고함을 질렀다.
숙희는 겁이 나서 얼른 다가갔다. "자기, 술 그만 해애. 응?"
"너, 그 때, 주몰 만났을 때 말고는 다른 남자 만난 적 있어, 없어!"
"자기! 너라니!"
"대답부터 해!"
숙희는 대답은 안 나오고 분해서 입술이 떨렸다. "그 말 취소하고! 사과해!"
"그래. 취소하고 사과한다... 대답해!"
"주몰. 그러니까 싸이코는 그 때 처음 만났어." 숙희는 대답하며 후둘후둘 떨렸다.
"그 전, 그 이후로는 다른 놈들하고 셐스, 안 했지?"
"자, 기..."
숙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은... 몰라. 나도 몰라!"
"몰라?'
숙희는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내 맨 정신으로는 절대 다른 남자와 자지 않았어! 내 이 말만은 제발 믿어줘.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 어떤 일을 당했나는... 몰라!"
"좋아! 그리고."
"그리고! 그 때 자기한테 말도 없이 며칠 집 비운 거 내가 잘못했어. 그 때 내가 생각을 잘못 했나봐."
"좋아! 그 때 제프랑 돌아다닌 거 알아. 그래서."
"하지만... 나, 정말 몰라. 난 지금 뱃속의 아기, 제발 자기 아기이기만 바래."
"좋았어! 좋았다구! 이리 오셔!"
운진이 먼저 숙희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는 거라구, 이 사람아!"
숙희는 저도 모르게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당신이 집을 나가 있었을 때, 제프란 새끼와 셐스 가진 것만 아니면, 그리고 그 이후로 다른 남자와 만난 게 아니면, 주몰 말대로라면, 당신은 얼마든지 용서 받을 수 있어."
"정신 차리고 나니까, 그 때 내 옷이 벗겨져 있는 것만 알았어."
"아무 일 없었어. 아무 일 없었어."
"자기가 어떻게 알아?"
"주몰이 그랬어. 주몰이 나한테 엉클 운 제이의 와이프인줄 알고는 절대 손 대지 않았다고 그랬어. 주몰 걔는 어려서부터 나를 엉클이라고 불렀고 내가 걔네 집을 잘 알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내가 자기한테 허락받지않고 집 나갔던 것만 용서받으면 괜찮아?"
"그래! 그러는 거야! 설령 당신이 나한테 실망해서 잠시 다른 남자를 만났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거야."
"자기의 침묵이 나를 얼마나 숨 막히게 조이는지 알어?"
숙희는 새삼스럽게 울음을 또 터뜨렸다. "고문이야."
"내가 원래 말주변이 없다 보니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걸로 택해서 그런 거야! 당신도 잘 알잖아. 나 말주변 없는 거."
"자기 혼자서 자기 말주변 없다고 변명하더라?" 숙희가 운진의 가슴을 가볍게 쳤다.
"나는... 난 말요. 챌리도 내 딸처럼... 어흐흑!"
운진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요. 난 나쁜 놈이요. 챌리가 내 딸 아닌데 내 딸처럼 감추고 키운 전처를 걸어서 이혼 소송한, 그런 놈이요!"
이제는 숙희가 운진을 달랬다. '사람은 술이 들어가면 진실이 나온다더니 정말인가봐.'
운진은, 그 날, 몇해 묵은 통한을 한번에 몽땅 배설하듯 내뱉으며 울었다.
숙희와 운진 두 사람은 서로 부등켜 안고 마치 초상을 당한 것처럼 울었다.
두 사람의 머릿속으로 점령군의 군화발처럼 밟히고 지나간 기억들이 좀 많았을까.
이제 두 사람 앞에 당장 닥친 일이 정애를 기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숙희는 숙희대로 정애가 껄끄럽고. 운진도 그녀가 걸림돌로 다가오리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돈을 한번 맛보았으니. 특히 저 사람에게 기회다 하고 또 접근하겠지?'
'정애 그게 기회만 되면 이 이에게 또 달라붙겠지?'
부부의 머릿속으로 스쳐간 걱정들이었다. 그런데 부부에게 공통된 악의가 스쳐갔다.
그 여자의 입을 막는 최상의 방법은 그 여자의 행실을 밖에다 노출 시키는 거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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