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숙희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다.
즉 가방을 방 안에다가 도로 감춘 것이다.
숙희가 운진을 방 안으로 밀어넣고 따라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사위들이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니까, 내색하지말고 오늘은 일단 땡쓰기빙 보내."
"알았소. 시키는 대로 하겠소." 운진은 얼른 대답했다.
숙희가 운진을 훌어봤다. "자기 왜 그래? 어디 아퍼?"
"아니요."
"안색이 왜 그래?"
"사실 난... 아니요."
"자기, 떨고 있니?"
"떠, 떨긴! 체!'
그런데 실상 운진은 비겁하지만 숙희의 사지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어느 순간 이 여자가 발을 날릴지 아니면 잡고 넘겨뜨릴지 그걸 지켜보는 것이다. 맞싸울 수도 없는 일.
숙희는 정말 끓어오르지만 일단은 털키 디너를 잘 지내고 나서 마저 얘기하자 결심했다.
"씻고. 옷 갈아 입고. 좋은 얼굴로 나와. 알았지?"
숙희는 남편을 아래위로 훑어봤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았으면 해."
"그, 그럽시다."
운진은 그 답지 않게 쩔쩔매는데 숙희는 마음이 짠했다.
숙희는 남편을 방에다 남겨두고 나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운진은 아내가 하라는대로 씻고, 옷 갈아입고 그리고 거울 앞에서 애써 웃는 낯을 연습한 다음에 안방을 나섰다.
숙희가 저 아래서 올려다 보며 웃으라고 눈짓을 했다.
운진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하이, 댇."
"대디."
"헬로..."
딸들과 사위들이 웬지 긴장된 얼굴들을 하고 인사를 보내왔다.
"Hellooo! Did they give you everything I ordered? (헬로오! 그들이 내가 주문한 모든 것을 주었나?)"
운진은 일부러 목에 힘을 주었다.
챌리가 티켙 같은 것을 처들어 보였다. "This? (이것?)"
운진은 그 티켙을 받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 식탁에는 여러 개의 일회용 그릇들이 즐비했다.
숙희는 마켙에 주문한 터키 디너가 찾아와진 경위가 궁금하지만 참는 중이었다.
그래! 나와는 헤어지려 들지만, 그래서 연락도 않고 그러지만 딸들과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Where is turkey? (털키는 어디 있지?)"
운진은 숙희의 시선을 의식하며 짐짓 좋은 낯이 겉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실상 그는 속으로 떨고 있는데.
개리 주니어가 오븐을 가리켰다. "Reheating now. (지금 다시 데우는 중이요.)"
"굳! 굳! 굳!" 운진이 고개를 크게 끄떡이는데, 숙희에게서 그의 셀폰이 넘어왔다.
운진은 셀폰이 꺼져있음을 확인하고, 평상시 늘 그렇듯 부엌 식탁 위에다 놓았다.
당연히, 정애가 아무리 통화를 시도해도 오운진의 셀폰은 곧바로 메세지를 남기라는 음성 녹음으로 넘어갔다.
'와아! 이 남자 단수가 높구나... 역시 보통이 넘으니까 숙희하고 살지.'
정애는 하도 만져서 뜨뜻한 그녀의 셀폰을 백 안에 넣었다.
그녀의 딸이 욕실에서 근 한시간 만에 나왔다.
스무살 짜리가 제법 늘씬하게 빠진 몸매에 큰 타올 한장만 가린 채로.
정애의 눈이 딸의 노출된 어깨와 목 주위를 빠르게 그러나 샅샅히 살폈다.
딸을 먹이를 탐내는 짐승처럼 쳐다보던 오운진이란 사내의 눈빛이 정애의 심장을 얼게 만들었다.
'보통 꾼이 아닌 거야... 자칫 하다가는 돈 때문에라도... 쟤를 어찌해 보려고 들겠는데? 보통 몇백불에서 천불 정도씩은 받아 썼는데, 이십사만불을 척 건네주는 그 속셈이...'
그 돈은 이미 은행에 돌아와 있다. 그리고 벌써 많은 금액을 써버렸다.
돌려줄 수도 없고...
정애는 궁하다고 받기부터 한 그 돈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겁이 더럭 나기 시작했다.
설마 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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