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다 치운 것을 한번 더 확인하고, 나갈 자세로 아내 앞에 섰다.
"다 했소."
"수고했어." 숙희가 애들 방향을 슬쩍 보며 낮게 말했다.
딸들과 사위들의 눈들이 돌아보려다가 얼른 텔레비젼으로 돌아갔다.
좀 전까지도 게임에 열중해서 소리지르던 그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운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간다구?"
숙희가 운진을 발에서부터 얼굴까지 찬찬히 훑었다. "어디로 가느냐 묻지 않을께."
운진은 주머니에서 여태 꺼져있는 셀폰을 꺼내 들었다. "오 참! 나 차저(charger)는 가져가야 사용하지."
"빼 가..." 숙희가 앉은 데서 일어섰다.
운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숙희가 눈에 띄게 심호흡을 했다. '정애 그거를 어떻게 한다?'
운진은 신장 앞에서 우물쭈물거렸다.
딸들의 눈이 은근슬쩍 새엄마를 훔쳐봤다.
결국 사위 둘이 서로 눈짓을 주고 받았다.
개리 주니어가 현관으로 갔다.
"Challie. You wanna come with me? (챌리. 나와 같이 가고 싶어?)"
"Where... Oh, sure! (어디를. 어, 그래!)" 챌리가 얼른 일어섰다.
"Where're you guys going? (너희들 어디 가는데?)"
킴벌리가 걱정되는 말투를 던졌다. "Not fair! (불공평해!)"
주니어가 코트 깃을 세웠다. "You can come with us if you want. (원하면 우리와 같이 가도 되는데.)"
제이콥이 킴벌리에게 움직이자는 눈짓을 했다.
딸들과 사위들이 우루루 몰려나가고.
운진은 여전히 신장 앞에 서 있고.
숙희가 리못 콘추롤로 텔레비젼을 껐다. "갈 거면 얼른 가던가."
"오, 그럼." 운진은 그제서야 놀라듯 몸을 돌이켰다.
"어디루 가는데? 정애 그 기집애한테 가는 건 아니겠지. 아, 묻지 않는다 해놓고."
"우선... 가까운 데에 모텔을 잡을 거요... 좀 싼 데로 해서, 롱 텀(long term)으로."
"끼니 꼭 챙기고. 어떻게 할 건가, 생각되면 알려줘."
"내, 내가?"
"내가라니? 자기가 알아서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오..."
"오라니? 장난해, 지금?"
"아니요. 그럼..."
운진은 집을 서둘러 나섰다.
'젠장! 재수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김정애 거...'
'이젠 이기지 못하는 술을 줄여야 하나.'
운진은 차를 출발시키며 아내 숙희가 언제쯤 몸을 풀지 계산해봤다.
암만 그래도 애 낳을 때는 들여다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혹시 연말에 낳는 거 아냐? 지금이 땡쓰기빙이고... 잘하면 그렇게 되겠군.'
집 앞 골목을 빠져 나가면 신호등이 나오고, 거기서 좌회전을 해서 오분 더 가면 더 큰 거리가 나온다.
그리고 라마다 잌스프레스라는 모텔이 바로 나온다.
운진은 그리로 차를 몰았다.
클럽에서 술에 만취되어 투숙했던 모텔.
한날 아침에 눈을 뜨니 정애가 곁에서 자다가 같이 깼던 방.
운진은 프론트 데스크에다 그 방이 가능한가 문의했다.
그리고 그는 그 방을 얻었다.
그는 이제 정애가 연락하고 오면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고 마음 먹었다.
새삼 김 여사의 예쁜 아랫도리가 그립다. 아내 숙희와 전혀 다른.
그러기 위해서는 셀폰을 살아나게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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