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메릴랜드
숙희가 남편의 셀폰으로 정애에게 전화를 또 했다.
"너 왜 이래! 내가 너한테 돈까지 주었잖아. 내 남편에게서 떨어지라고!"
"미안해."
정애가 우는 소리를 냈다. "너무 좋은 분이라서..."
"너 학교 다닐 때도 내가 만나던 선배 가로채서 날 우습게 만들더니 이십년도 지나 우연히 만났는데, 나한테 또 이러니?"
"사실, 운진씨는 너보다 내가 먼저 만났어. 그건 확실히 하지?"
"얘가! 지금은 내 남편이잖아!"
"아, 그런가? 그럼, 그렇다 그러구."
정애가 뺀질거렸다. "어떻게 만난 건데?"
"그건 니가 알 필요없구. 오늘 이 후로 내 남편 앞에서 사라져! 알았지?"
"니네 남편 보고도 말해. 나 찾지 말라구."
"두번 다시 말 안 한다. 내 남편 앞에 얼씬도 말어."
"니네 남편이 또 날 찾아오면?"
"화아! 너 아주 뻔뻔하구나?"
"하여튼 돈은 잘 쓸게."
"그냥 준 돈 아냐. 우리 남편 앞에 안 나타난다고 약속해."
"넌 여전히 모든 걸 다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구나? 내가 널 몰라?"
"무슨 말이야, 그게?"
"아니, 됐어."
"아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돈이 인생의 다가 아니라는 말이야. 돈이 뭔데. 있다가도 없는 거. 돈에 목을 메고 돈으로 헤결해 보려고 하는 네가..."
숙희는 정애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되려 당했다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숙희가 남편의 셀폰을 살그머니 훔쳐서 화장실로 가져가고는 붘스토어를 찾아서 눌렀었는데, 네에! 하고, 대번에 응답하던 정애가... 기절하도록 증오스럽다.
돈이 인생의 다가 아니다 불쌍하다라는 정애의 말이 왜 그리 숙희의 가슴을 찔렀던지...
지금의 남편 운진과 결혼하면서 전부인과 연관된 사람들을 끊으라고, 그들에게 돈을 적당히 나누어 주었는데...
여태 안 끊어지고 있는 실정.
정애와도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까봐 돈을 주었는데...
되려 둘이 대놓고 동침을 했고.
숙희의 세상에서는 돈이 다이던데.
그녀가 보아온 바로는 돈이면 세상이 발 앞에 와서 무릎을 꿇던데.
그토록 오랜 세월을 야만인처럼 대우해 오던 알트도 이제 와서 결국 자금에 쪼달리니 즉 돈이 딸리니 쑤에게 반위협 반사정쪼로 나오기 시작하는 것만 보더라도 돈이 최고인데.
'왜 남편에게는 돈이 전혀 작동을 안 할까.'
한푼도 없이 내쫓길 걸 알면서도 꽁돈 생겼다고 주던, 아니, 바치던 모습이 낯설다.
게다가 그 돈을 냉큼 받아 먹고는 시침 딱 떼고 남편을 건드리는 정애도 낯설다.
털키 디너를 말끔히 먹어 치우고.
와인병도 여러 개 비우고.
두 딸 두 사위들은 대형 텔레비젼 앞에 모여서 미식 풋볼을 보면서 열광들을 하고 있다.
이 집 남자 운진은 어서 설겆이을 마저 해주고 나면 아내가 뭐라 할 것이라는 기대와 조바심에 한눈 팔지 않고 부엌에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쓰레기가 벌써 큰 봉지로 두개가 나갔다.
운진이 차고 앞의 쓰레기통에 쓰레기 백을 내다 버리고 집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하나짜리 의자에 앉아있는 숙희가 고개만 돌려서 그를 지켜봤다.
아마도 딸들과 사위들은 의식적으로 장인 장모를 보지 않으려는 기색이다.
운진과 숙희 둘 중 누가 더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까...
운진은 이제 가라앉았는지 태연한 모습이었다.
정작 숙희가 어떤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으로는 가서 붙잡아라 외치는데 몸으로는 버틸 때까지 버텨라 한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3 19-3x183 (9) | 2024.09.18 |
---|---|
pt.3 19-2x182 (5) | 2024.09.18 |
pt.3 18-10x180 (1) | 2024.09.18 |
pt.3 18-9x179 (1) | 2024.09.18 |
pt.3 18-8x178 (2) | 2024.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