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챌리가 일단 마켙으로 주문한 털키 디너 패캐지를 가질러 가겠다는 말까지만 나누고 일단 통화를 마쳤다.
"따님?" 정애가 셀폰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음."
"음성이 참 곱네... 큰딸?"
"음."
"따님하고 잘 지내시나 봐요? 대화하시는 게 참... 좋다."
운진은 구태여 역사 얘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착해. 둘 다."
"그러실 거예요. 아빠가 자상하시니..."
"별로 그렇지도 못하지, 뭐."
차는 어느 덧 195번 도로로 접어 들었다. 볼티모어 공항으로 직행하는 도로이다.
"정애씨 따님이... 날 보면... 놀라지 않을까?"
운진은 그 점이 걱정되었다. 엄마가 낯선 남자와 같이 마중 나온 것을 보는 딸의 심정이 어떨지.
"말했어요. 엄마가 길을 잘 몰라서 어떤 아저씨가 대신... 운전해 줄 거라고."
"그럼, 난 그냥 어떤 아저씨만 되면 되는 거군? 가까이 있지도 말고?"
"아이... 오 선생님, 은근히 재미있으시네? 그럼, 딸 앞에서 절 껴안으실 거예요?"
"와아! 정애씨도 보통은 넘으십니다? 말을 잘 받으시네..."
"저를 더 사귀시면 앞으로 점점 놀라실 일만 있을 거예요."
"이미... 기절하고 있는 중."
"지금까진 약과예요."
정애가 요염한 미소를 풍겼다. "앞으로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헛 참... 은근히 겁나는데?"
"기대하셔도 될 걸?"
공항에서 얼마 기다리지않고, 정애의 딸이란 학생이 출구를 나왔다.
"엄마아!"
키가 훤칠한 여자애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왔다.
그리고 운진을 보고는 얼른 멈추면서 꾸뻑 인사했다. "안녕, 하세요?"
"오. 반갑다." 운진은 어색하게 손인사를 했다.
모녀가 서로 끌어안고 좋아서 호호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데, 운진의 직감에 뭔가 이상한 소름끼침이 오갔다.
김정애란 여자의 얼굴에 스치는 가식된 미소를 보고.
그런 미소는 계모인 수키가 챌리나 킴벌리에게 주는 미소보다 더 차게 느껴졌다.
'뭐야. 뭐 저래... 딸도 마지못해 웃는?'
"가자!"
정애가 딸의 손을 찾아 잡으려 하며, 동시에 운진을 쓱 흘겨봤다. "차, 가져오실 거예요?"
그런데 딸애가 엄마의 손을 피하는 기색이었다. "엄마아!"
정애가 무안해 하며 슥 외면하는 것이었다.
"걸어도 되구요."
운진은 정애가 갑자기 건방지게 나오는 것 같아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어차피 출구가 혼잡해서 차를 갇다 대려다가 시간 다 보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공항 청사 안은 왁자지껄 도착하는 사람과 마중 나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그런데다가 차를 앞에다 대려고 가져와 봤자 이중 주차도 못하고 그럴 것이다.
"이번엔 다른 아저씨네, 엄마?" 딸애가 제 엄마에게 달라 붙으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정애가 얼른 운진을 훔쳐봤다. "얘는!"
운진은 속으로 웃었다. '그럼, 그렇지! 하여튼 돈 줬는데 또 입만 놀려라!'
공항 청사를 나와서 운진은 모녀가 따라오든말든 앞만 보고 걸었다.
멀리 초겨울 햇볕에 은색 벤즈 차가 유난히 반짝거렸다.
'여자와 딸만 내려주고 당장 떠나리라! 역시 꾼이구만. 회포를 이 남자 저 남자하고 푼다 할 때 알아봤지!'
운진은 뒤도 안 보고 차에 먼저 타므로써 기선 제압을 하고 있었다.
정애의 딸이 운진의 벤즈 차를 보고는 와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차만 보고.
운진은 숙희가 몇살 때부터 물욕에 눈 멀어 비뚤린 길을 걸었나 마음이 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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