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이 모는 차가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를 연결하는 캐빈 좐 다리로 접근하는데, 검정색의 유난히 반짝거리는 승용차 한대가 앞을 가로지르고 들어왔다.
'아까 본 그 차. 흠! 우리인 줄 알고 장난하는군!'
운진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앞 차에 바짝 붙어지든지 말든지 내버려두었다. '설마 니들이 나와 같이 죽겠냐? 어디 얼마나 깡이 좋은가 보자?'
"악! 자기! 자기!"
숙희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등이 탄 차가 앞 차 뒷범퍼와 부딪칠 찰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운진이 되려 벤즈 차의 개스 페달을 밟았다.
쿵!
벤즈 차의 앞 범퍼가 앞차의 뒷 범퍼를 밀어부쳤다.
앞차가 콘추럴을 놓치는지 좌우로 비틀거렸다.
"자기! 미쳤어?"
숙희의 비명이 한 옥타브는 올라갔다. "죽을려구 그래?"
운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죽는 게 그렇게 겁나나?"
"자기!" 숙희는 운진의 눈빛에서 생전 처음 간담이 서늘하다는 경험을 했다.
그의 가늘어진 눈은 평소 피하던 시선의 것이 아니었다.
웃는 건지 사람을 노려보는 건지 아무튼 소름끼치는 눈빛이었다.
운진이 차의 개스 페달을 한번 더 밟았다.
끼이익!
앞차가 밀려서 앞이 들먹거리더니 기를 쓰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Chicken shit! (겁장이가!)"
운진이 그제서야 개스 페달에서 발을 조금 떼었다. "저 자들 누군지 당신 알지?"
"내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숙희는 덜덜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심호흡을 계속 했다. "자기 왜 그래애..."
"이젠 당신의 목숨을 아예 깨놓고 노리는구만."
"내 목숨을?"
숙희는 남편이 다른 사람인가 했다. "내 목숨을 노린다고? 자기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막 해? 누가 내 목숨을 노려."
"그야 목에 현상금 붙은 당신이 잘 알겠지."
"왜 아까부터 당신이 잘 알겠지 당신이 잘 알겠지 그렇게 비꼬는데!"
"내 그 말이 당신의 귀에는 비꼬는 걸로 들리나 보군. 미안하오."
"지금 그 미안하다는 말도 비꼬는 거잖아."
"흠!"
운진은 갑자기 훤히 트이는 앞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비꼬는 거 하고 다 알면서 시침떼는 것이 얄미워서 대놓고 묻는 거 하고 구분도 못 할 정도로, 당신 멍청한 여잔가?'
숙희는 개리 시니어가 빈정거린 말이 생각날 때마다 얼굴이 화닥거린다.
'당신은 참... 뻔뻔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그리고 아주 비굴한 여자요. 그렇게 살면서 끌어모은 돈이 대체 얼마요?'
숙희는 남편에게서 남을 기만한다는 말을 이미 들었고.
남에게서 뻔뻔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비굴하다는 말을 추가로 들었다.
둘 다 자존심 상하고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말공격인데, 숙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버틴다. 왜...
그녀는 여태까지 더 한 모욕과 굴욕과 비굴을 참으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녀는 오로지 돈만 원하는 대로 쥐면 미련없이 뜬다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나저나 누가 내 목숨을 노린다고...'
숙희는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남편이 두렵다. '운전하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차선을 침범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과속이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디렠터 개리가 그런 말은 언급한 적 없는데...
운진의 미간이 있는 대로 좁혀졌다.
'이 사람의 근본이 뭘까...'
숙희는 남편의 진짜 얼굴이 궁금해졌다. '김 선생님이 뭘 보고 이 이를 무조건 잡으라 했을까? 그 전에 내가 때리면 바보 같이 맞던 남잔데.'
"아까 그 차... 경찰인데, 자기가 실수한 거 아냐?" 숙희는 간신히 용기내어 말했다.
"경찰이 그런 장난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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