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기에도 육중할 것 같은 회색문이 안으로부터 열렸다.
운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했다.
정복 경관이 얼굴을 내밀고는 우디에게 오라는 손신호를 했다.
운진은 신속히 움직여서 문 앞으로 갔다.
"Wait here. I'll be right back! (여기서 기다리시요. 금방 돌아오겠소!)"
그 말을 남기고 그 경관이 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 숙희가 정복 경관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문에서 나타나기까지 운진은 일초일초가 숨 막힐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숙희는 걸음도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오!"
운진은 저도 모르게 숙희에게 달려갔다. "어서 와요!"
숙희는 몹시 초췌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려 했다. "자기..."
"고생 많았지?"
운진은 숙희를 안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좋아 보이는군."
숙희가 남편 운진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훌쩍거렸다. "미안해, 자기."
"아냐, 아냐. 얼른 갑시다!"
주니어가 나중에 집에서 보자 하고는 먼저 떠났다.
주니어가 가면서 챌리에게 엄마가 석방되었다고, 셀폰으로 전해주었다.
운진은 차를 몰면서 저도 모르게 잠깐잠깐씩 거울로 따라오는 차가 있나없나 살폈다.
숙희는 시트에 머리를 기댄 채 졸고 있다.
운진은 노는 손을 뻗어서 아내 숙희의 큰 손을 잡았다.
"응?"
숙희가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왜 그래, 자기..."
"당신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니. 나 피곤해. 그냥 집으로 가자, 자기."
숙희가 시트에 머리를 다시 기대고 눈을 감았다. "자기 일은 어때?"
"으응... 세일즈 일, 그만 뒀어."
"기여코 가게 하려구?"
"아냐... 내 뒤를 누가 자꾸 따라 다녀. 그래서."
숙희가 눈을 뜨고 앞을 봤다. "자기한테서 뭘 알아내려구?"
"그야 당신이 잘 알겠지?"
운진의 '그야 당신이 잘 알겠지' 라는 말이 숙희의 가슴을 뜨끔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말이 나갔다. "왜 내가 잘 알 거라고, 자기는 그리 잘 아는데? 내가 자기한테 안 물었나? 집에 어떤 경찰이..."
"그 경찰차... 베이지색이요?"
"베이지색이던가?"
숙희의 머릿속에서는 '아, 맞다!' 로 대답하는데 정작 입에서는. "잘 모르겠던데."
"당신이 색맹이 아닌 이상에야... 그 밝은 색의 베이지 계통을 모를 리는 없고. 설사 색맹이라 해도 그런 베이지색을 모르진 않을텐데."
"그게... 그 차 색깔이 왜 그리 중요한데?"
"내 구역에 다니면서 나의 행적을 묻는 흑인의 차가 베이지색 토요다라고 해서."
숙희는 또 뜨끔하고 놀랬다. '아, 맞다! 그 차 뒷트렁크에 토요다 마크가 붙었던데.'
"밤에도 식별되는 밝은 베이지색을 낮에 모른다면..."
운진은 좀 전부터 양 가장자리 거울을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차 안에는 덩치 큰 흑인이 늘 앉아있고. 얼굴을 아예 노출시키던데..."
숙희는 물론 그 차가 경찰이 모는 차이고, 흑인 남자가 뱃지를 흔들어 보인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인하고픈 마음이 얼른 생기지 않았다.
'혹시 시니어가 이 이에게 말을 슬쩍 흘린 건 없나?'
'이 이는 하도 내색을 안 하니 알고 있는지 몰라서 가만 있는지 도저히 알 재간이 없네.'
'그나저나 빠져 나올 욕심에 개리에게 제프와 셐스 가진 것 뿐만 아니라 아담과도 그랬던 것을 실토했는데, 정말 이 이한테 일렀고, 그런데도 이 이가 잠자코 있나?'
'그나저나 그 사진들을 미끼로 날 어떻게 괴롭히려고...'
'그리고 만일 이 이가 그 사진들을 보면 어떻게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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