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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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8. 04:23

   숙희는 암말않고 운진에게 위스키와 진저엘을 섞어서 내밀었다.
운진이 암말않고 그 글래쓰를 끌어당겼다.
숙희는 웬지 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지않았다.
운진은 아내를 외면하는 핑게로 지하실 한쪽 벽에 세워진 대형 텔레비젼을 켰다. 그가 리못 콘추롤을 스탠드 바 식의 테이블에 던지듯 놓았다.
   화면에 나타난 채널이 무엇이든 대화를 피하기 위한 눈처리이다.

   숙희는 프론티어 뱅크에 대한 작업의 마지막 페이지를 끝내고 컴퓨터의 어느 'My Documents' 에다 넣을까 망설인다. 
   '이중으로 만들어도 이들은 모르지.'
   '클로버에게도 하나 보내줄까? 클로버가 프론티어 뱅크를 인수하면, 주피터 뱅크가 주저앉는데 어떤 쪽이 나한테 유리할까?'
숙희는 주피터 뱅크가 무너져서 알트로부터 해방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러나 그렇게 해주면 숙희는 무일푼으로 남고 부사장직도 잃게 된다.
   '내 나이 낼모레 오십인데, 빈털털이로 그만 두게 되면 곤란하잖아?'
숙희는 마우스를 까불다가 'My Documents' 아이콘을 연다. 그리고 인터넷 페이지에 들어가 이-메일 창을 연다. 그녀가 일단 이-매일 보낼 준비를 한다. '보내. 말어.'
   '클로버로 넘어가게 하면, 제프가 무지하게 손해를 본다. 그러면 나를 가만 안 놔두겠지?'
그러나 그녀는 다큐먼트를 첨부로 해서 클로버에게 이-메일을 친다.
곧 뉴스마다 주피터 뱅크의 몰락을 보도한다.
숙희는 사무실을 정리하고 경비에게 방 열쇠를 넘긴다.
쫄딱 망한 제프가 책임지라고 숙희를 괴롭힌다.
   '나도 손해봤어, 제프!' 
숙희가 아무리 변명해도 제프의 구박은 나날이 늘어간다.
그런데 알고 보니 클로버 코포레이숀의 회장이란 자가 알트 보다 더 저질이다.
아예 프론티어 뱅크 출신들을 하나도 기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숙희는 은행에 취직한 설이와 연락이 끊긴다. 무더기 해고 때문에.
그래서 당연히 운진과의 만남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시나리오가 그려지자 숙희는 저 혼자 놀랬다. 
텔레비젼 화면에는 경찰차의 추격 장면이 한창 흥미를 돋구고 있는 중이었다.
   "자기. 저거 진짜 찍은 거야?" 숙희는 가까스로 말을 건넸다.
   "음."
   "진짜 차가 전복된 거라구?"
운진이 반복될 대꾸 없이 글래쓰를 비웠다.
   "그만 해?" 숙희는 그렇게 물으면서 빈 글래쓰를 당겼다.
운진은 목을 가다듬는 기침을 길게 하며 텔레비젼만 보았다.
   "혹시 자기 먼저 다친 거... 경찰 말대로, 강도일... 수도 있잖아."
   숙희는 그렇게 말해놓고 남편이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했다. "세일즈 하면서 수금도 한대매. 그걸 노렸을지도. 아냐?"
   "그게 차라리 더 낫지."
   "무슨..."
   "마치 어떤 큰 계략이 숨어있어서 날 어찌 해보려는... 말하자면 내가 무슨 음모의 대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썩하는 것 보다는... 날 털려던 강도가 실수해서 날 찌른 걸로 보는 편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는 말이지. 그리고 내 비로소 말하지만, 그 때 내 차 몰고 달아난 놈이, 영호야."
   "누구?"
   "그 미쭈비시 차를 시동걸 줄 아는 사람이 몇 없거든. 내가 못 마땅해 하는 것은, 차를 몰고 달아날 대상이 거의 없는데, 왜 아주,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는 것처럼, 들, 떠드냔 말야."
  "그럼, 애들 삼춘이란 사람이... 자기를 찌른 공범이래?"
   숙희는 어느 정도 안심을 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나도 자기한테 할 말이 있거든."
   "혹시... 혹시 말요... 챌리 아버지. 그러니까 내 전처와 챌리를 낳은 자가... 당신을 칸탴트 한 적 없소?"
허걱!
숙희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얼굴이 빨개졌다.
   "영호자식이 우리 방도 뒤졌거든. 그러니 자연..." 운진이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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