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pt.3 4-1x031 집을 나가자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8. 04:34

집을 나가자

   '그 여자가 그래서 나한테 말은 못 하고 늘 불안해했구만!' 
   '돈을 훔쳐. 그것도 한두푼이 아니고, 투 빌리언?' 
운진은 손가락으로 꼽기 시작했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 영이 아홉개. 십...억.'
   "씨발! 뉘집 개새끼 이름이야? 이십억불? 놀구들 있네!"
운진은 집 앞에 다 와서도 얼른 내리지 않고 차의 발동은 놔두고 헤드라이트만 끈 채 차 안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집은 불들이 다 꺼져있고, 현관문 유리를 통해 리빙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투 빌리언... 저 여자 미친 여자 아냐? 그런 돈이 뭐에 필요해서 훔치고는 저리 난리야...'
운진은 차의 시계가 새로 세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나서 차의 발동을 껐다. 그가 차 열쇠를 뽑자 차 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들어왔다.
그제서야 현관문이 빼꼼히 열리는 것 같았다.
운진은 차에서 내렸다.
   "자기야?" 숙희의 잔뜩 겁먹은 음성이었다.
   "여태 안 자고 뭐 해."
숙희가 스웨터 앞을 여미며 나섰다. "어디 갔었어?"
   "추운데 왜 나와. 들어갈께 얼른 문 닫어."
   "빨리 와." 숙희가 롱드레스를 입은 채로 돌아섰다. 
자연 그녀의 늘씬한 몸매가 밤인데도 현관 위 천장 불빛에 잘 보였다.
   숙희가 운진이 들어서기를 기다렸다가 흑!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그의 목에 팔을 걸고 매달렸다. "나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어."
   "그러게..."
   '그런 짓을 왜 했어' 라는 말이 쏙 들어가고, 운진은 숙희를 가볍게 마주 안아주었다. "그랬어? 그래도 밖을 함부로 내다보고 하지 마."
   "아니야... 나, 자기 떠난 줄 알고 무서웠단 말야."
   "내가 떠나면 떠나는 거지. 그게 뭐 무섭나."
   "말이라도 그렇게 하지 마. 나 진짜 무서워."
   "사람, 참..."
   "자기가 날 떠나면... 난... 그 날로 죽어. 말했잖아." 숙희가 운진의 목을 고쳐 안았다.
   '프로텤숀...'
운진은 숙희의 팔을 천천히 뜯어냈다. "무조건 이런다고 일이 해결되는게 아니지."
숙희는 한번 더 매달리려다가 무안해졌다. "해결?"
   "경찰한테서 들은 게 있는데... 뭣 좀 물읍시다."
   "...응"
   숙희의 목이 기름칠 안 한 기계처럼 불규칙하게 끄떡거렸다. "뭔데..."
   "애담 갠지스?"
   "아담... 갠지스?" 숙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당신, 제레미 코이네하고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닌가 봐?"
   "제레미하고라니?"
   "그리고... 랠프 미거가 누구요? 당신 셀폰에도 번호가 들어있던데."
허걱! 
숙희의 입이 딱 벌어져서 다물 줄을 모른다.
   "그리고 제프 드미트리하고는 그냥 직장 상사, 아니, 사장과 부사장의 직책 관계만이 아니었나 봐?"
쿵! 
숙희는 그 소리를 정말로 들었다. 자신의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를.
   "나랑 결혼하고도 펜실배니아란 데를 뻔찔나게 드나들고..."  
숙희는 소리죽여 울기만 했다.
   "여러 남자들과 돌아가면서 다운타운 호텔 같은 데도 드나들고..."
   '그냥 탁 이대로 죽고 싶다!' 그 말이 그녀의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운진은 그러는 숙희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기만 했다.
   '이래도 이 여자 말 안 하네?'
   '그냥 이대로 뒤돌아 보지 말고 나가자! 미련두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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