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확정
운진은 지하실에서 혼자 술을 하며, 챌리가 들려준 말을 깊이 생각해 보고 있었다.
아빠가 새엄마를 많이 사랑하라고 하던 챌리의 말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하고 있다.
'애들 눈에 그렇게 보인단 말이지... 먼저 엄마한테만큼 안 하는 것 같다고.'
새엄마한테 비밀이 많아요.
무슨 비밀?
그건... 말 못해요. 새엄마가 직접 말하기 전까지는.
네가 알고 있다면, 그리고 써니언니가 나를 보자 하는 것도 네가 아는 것을 나한테 말해주려고 그러는 거라면, 나도 알아야 하지 않겠니?
그냥(just)... 아빠가 새엄마를 많이 사랑해 주면 되는데!
운진은 이층방에서 책도 안 읽고 텔레비젼도 켜지않은 채 침대에 멍하니 앉아 맞은편 벽을 보고 있는 숙희를 발견했다.
"넋 나간 사람처럼 왜 그러고 있나? 내려와서 나랑 술이나 한잔 하지?"
숙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 그녀가 깜짝 놀라듯 침대에서 내려섰다. "술은 안 하고, 그냥 자기랑 같이 있을께."
운진은 술을 극구 사양하는 아내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유행과 시절이 아주 오래 지난 대중가요를 은은히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나머지 위스키를 기울였다.
숙희는 맞은 편 벽을 보다가 남편을 보다가 할 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응?" 숙희는 저도 모르게 놀랐다.
"사람, 참. 당신 답지않게... 또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어?"
"응." 숙희가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가?"
"응!" 숙희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말해보지 그래, 그럼..."
"나랑 회사 하나 접수할래?"
"내가 할 줄 아는 건가?"
그는 글래쓰를 기울여서 위스키를 한모금 넘겼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자긴, 그냥... 나만 곁에서 보호해주면 되는데..."
"바디가드?"
"그보다 더..."
"바디가드보다 더라..."
운진이 글래스를 마저 비우고 내려놓았다. "이봐. 바다에 가면 사람들이 모래에다 글씨를 쓰고는 파도가 와서 지우기를 기다리지... 지워지는데... 왜 소리를 지르는지 아나?"
대번에 숙희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안 지워져서 누가 볼까 봐?"
"그렇지!"
숙희가 흑!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운진의 목에 매달렸다. "나두 그게 두려워!"
운진이 숙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동안 내가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한 게 많다면, 파도가 와서 지워주듯 지우라구."
"자기... 자기는 보지않고 지워줄 수 있니?"
"그러지."
"고마워!"
숙희가 운진의 목에 더 힘주어 매달렸다. "그리구... 나, 임신했어."
"어엉?"
"이대로 가만 있어!" 숙희가 운진의 목을 흔들었다.
"그래서 하나 낳을까 하고, 그런 걸 물어봤구만?"
"에이그! 그렇게 눈치가 없냐?"
"난 설마 그래서 그렇게 묻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소."
숙희가 포옹을 풀고, 운진의 앞을 가볍게 쳤다. "내가 임신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줄 알어? 피곤해서 죽겠는데도 섹스하자고 덤비구."
"그랬군... 고맙소."
숙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 임신이 제발 당신이 시킨 거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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