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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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0. 05:17

   그들이 즉흥적인 착상으로 오션 씨티에 도착한 때는 저녁이 으슥해진 후였다.
   "임신 초기에 이렇게 장거리 여행하는 것이 해로운데."
   운진이 행여 임신한 아내가 추울까 봐 제 코트로 감싸주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파도는 보러 저기까지 나가봐야지?"
   "당연하지!"
찬 기운이 구두를 통해 스며 올라오는데도 둘은 모래를 걸어서 물과 닿는 끝까지 나갔다.
숙희는 운진이 코트 깃을 세워주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전부인이나 다른 여자한테 이 짓 많이많이 했지, 오운진!"
   "그것도 저 파도에다 씻어버리지, 그래."
   "그래야지? 자기가 가끔 친절을 베풀 때면, 나 질투 나."
   "흐흐흐!"
   "자기두 내가 다른 남자 언급하면 질투 나니?"
   "이젠 질투가 아니라 자랑스럽겠지?"
   "그래... 자긴, 참, 가끔...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 같은데, 남의 맘을, 참, 콕콕 찌르면서 아프게 한다?"
   "그런 말들이 이젠 사랑하는 감정에서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그렇구나아... 난 아직 멀었나 봐."   

운진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자꾸 달아오르려는 얼굴을 식혔다.
   '못 들은 걸로 하자. 그 자식들이 한 말을 안 들은 걸로 하자구!'
운진은 챌리가 뭐라하든말든 써니를 만나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들어나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다 씻겼나. 모래 위에 낙서해 놓은 것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군?"
   "후후! 하지 마!" 숙희는 코트 소매로 운진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이 모래 위에나 눈 위에다 제일 많이 쓰는 말이 뭔지 아나?"
   "그런 걸 또 누가 조사했나 부지?"
   "뭐, 앙케이트 조사로 했겠지. 일일히 쫓아다니면서 본 사람이 있겠어?"
   "궁금하네... 뭘 제일 많이 쓸까?"
   "당신 같으면 뭐라고 쓸 건데?"
   "그건, 비밀이다."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아이, 빨리 말해 봐. 궁금하다니까 더 해."
   "미안해."
   "뭐가, 또. 뭐가 미안해."
   "이런!..."
   "응?"
   숙희가 그녀답지않게 잠시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가 얼굴이 확 펴졌다. "오오!"
   "수줍은 고백, 사랑해 일 줄 알았지?"
   "글쎄? 그건... 하위일 것 같은데?"
   "사랑해가 상위는 맞는데, 미안해가 가장 많대."
   "거, 믿을 수 있는 소식통이야?"
   "흐흐흐! 지어낸 말이야. 즉흥적으로."
   "것봐라!"
그래 놓고 숙희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맞는 말일 것 같다. '미안해...'
운진이 바람을 막으며 숙희를 슬쩍 미는 시늉을 했다. "그만! 감기 들라, 가지?"
   "응." 
숙희는 괜히 바닷바람이 눈물나게 하는 척 바다를 흘겼다. 
   "글루... 갈 거지?"
   "어... 디. 그 호텔?"
   "마무리를 지어야지."
   "홋! 마무리랜다. 가끔... 자기 멋진 말 하네?"
   "그래야 가끔이라도 날 써먹을 거 아니겠어?"
숙희가 주먹으로 그의 어깻죽지를 때렸다. "에이그! 말을 해도!"
   "남잔 써 먹을 가치가 남아 있을 때 행복한 거래."
   "그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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