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 힘드시죠?"
영아의 말에 점감이 담뿍 들었다. "얘기, 들었어요."
운진의 눈은 폴에게 고정되어서 눈썹으로만 까궁하는 중이었다.
녀석이 낯을 안 가리고 눈을 자꾸 마주치며 웃었다.
"무슨 얘기를, 누구에게서?"
"챌리가... 가끔 와요."
"오오."
"아빠가 여태까지 저들 때문에 힘들게 사셨는데, 이제 편하게 살았으면 한다구."
영아가 폴의 머리를 살짝 밀어서 안으로 보냈다.
"원... 걔도 쓸데없는 말을 여기다 해서, 처제를 속상하게 만드나."
"에게게? 저는 영원한 이모예요. 형부는 가짜아빠지만."
"흐흐.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는 영원한 가짜아빠."
"그런데, 우리 챌리하고 킴벌리는 참 특이하죠?"
"왜?"
"왜... 아빠하고 이모하고... 사랑하면서 같이 못 사느냐고, 물어요."
"저런 못된..."
운진은 턱짓으로 안채를 가리켰다. 행여 형록이 들을까 봐.
사람 하나가 들어섰다.
영아가 간단히 손님 처리를 하고 운진을 향해 다시 돌아섰다. "폴이 아빠 아직 못 일어나요. 아마 사나흘은 저럴 걸요?"
"그럼, 가게는 어떻게."
"저 혼자 봐요... 오늘 다행히 학교가 클로즈여서. 저번에 오빠랑 술 먹고 이틀을 뻗었는데 그 때는 잠깐씩 가게 문 닫고 갔다오곤 했어요."
"그거... 긴 안목으로는 안 좋은데."
"아주 가끔."
영아가 애교스럽게 말했다.
영아가 옛형부 운진과 나누는 그런 대화의 분위기를 형록이 갖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래서 형록이 운진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었던 것이다.
영아는 정작 부부가 된 형록과 말을 별로 안 하지만 형부 앞에서만 어린애처럼 군다. 왜 안 그렇겠나.
사춘기 때 집에 찾아온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고 한 집에서 살면서 다 보며 자랐는데.
고등학교 시절 영아가 그 늘씬한 몸매에 비키니를 입고 형부 앞에서 물개처럼 수영하면 그가 얼굴이 빨개져서 기침을 하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데.
형부가 부엌에서 뭘 만들면 옆에 붙어서서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장난도 쳤는데.
그리고 술에 만취해서 벗고 자는 형부를 덮쳐서 처녀를 주었는데.
'언니가 늘 그랬어요. 형부는 진짜 속마음이 무섭고 차다고.'
운진은 운전하면서 영아의 그 말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무섭고 찬 게 아니라 우유부단하고 무능력하지... 여자 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운진은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이 넓은 미국 땅에서 갈 곳이 없으니 정말 삭막하다.
김정애란 여인을 모텔 방으로 데려가서 말장난 몸장난 치는 것도 이젠 지겹다.
우디는 예년보다 푸근한 날씨라는 것에 힘 입어 그 예전의 물가를 찾았다.
파크에서 모터 보트를 렌트해서 영아랑 뼛가루를 뿌리러 나갔던 다리 밑 그 물가를.
이 날따라 날씨가 맑아서 멀리까지 물이 보였다.
대충 저기쯤까지 가서 아내의 뼈를 물에다 흩뿌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처제 영아는 병채로 흔들어서 나머지 뼛가루를 물에다 쏟아버렸고.
'참! 그 노인네들은 어떻게 살고들 있나...'
참 지독히도 거세게 나왔던 장모란 분이 새삼 궁금해졌다.
우디는 물가에서 물러서며 바지주머니에 든 셀폰을 꺼냈다. 수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받는 버튼을 눌렀다.
"응. 무슨 일이요."
"얘기 좀 해."
"말하시요."
"와. 오면 말할게."
'[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4 4-7x037 (4) | 2024.09.21 |
---|---|
pt.4 4-6x036 (2) | 2024.09.21 |
pt.4 4-4x034 (5) | 2024.09.21 |
pt.4 4-3x033 (6) | 2024.09.21 |
pt.4 4-2x032 (1) | 2024.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