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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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21. 04:56

   이제 사람들의 저녁 밥까지는 가게가 한산하다.
   "나 볼 일이 좀 있어서." 
운진이 가게를 나서려니 영아가 따라나왔다. "형부 안 올 거야?"
   "어... 형록이가 못일어나면, 처제 혼자 못하지?"
   "하긴 하는데에... 볼 일 보구 오지? 내가 밥 해 놓을께."
   "그래요, 처제. 그럼."
   "빨리 와, 형부. 응?"
   영아는 사뭇 예전처럼 어리광 비슷했다. "맛 있는 거 해 놓을게."
운진은 차를 몰며 영아가 보여준 모습을 눈 앞에 자꾸 떠올렸다.
어리광은 다 아니지만 곁에서 치대고, 말할 때 콧소리를 섞어서 아양도 떨고 하던 모습을. 아니. 
영아가 몸 접촉을 스칠 때마다 그리고 바로 곁에서 말을 건넬 때마다 운진은 아늑한 허공으로 떨어지는 황홀감을 느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못 가져보던 그런 설레임을.
   '흥흥흥! 수키는 천만분의 일도 못 따라가지.'
운진은 괜한 신호등에다가 도리질을 해보였다. '그냥... 확! 영아랑 살아버려?'
그가 간 곳은 전에 하던 술가게와 그 옆에 나란히 붙은 캐리아웃 동네였다.
캐리아웃은 일부러인지 아니면 전깃세를 아까느라 그러는지 어두컴컴하게 해 놓았고, 술가게는 그 전면을 베니아판으로 완전히 가렸다.
   "진짜 총을 갈겨댄 모양이네?"
   운진은 셀폰에서 주몰의 번호를 찾았다. "얘가 잘 알래나?"
그리고 주몰이 전화로 짧게 들려준 얘기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정체 모를 자들이 난입해서 우디 우디를 외치며 그대로 난사하고 달아났다고. 
   '내가 이 가게를 떠난 게 언젠데...'
   '그리고 웬 놈들이 날 찾으면서 총을 휘갈겨 대?'
관계 없는 이유이지만 운진은 서 있는 주위를 살펴보고는 그 새 많이 변했다는 느낌을 가져야 했다. 전에 장사했을 때와 주변이 무척 달라져 보이는 것이었다.
   [예! 뻑 뀨!]
그 외침소리와 함께 일단의 흑인 청소년들이 캐리아웃 가게문을 뻥 차고 나왔다.
안에서 여인네가 저 놈의 새끼 뭔 놈의 새끼 하고 우리말로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뻑 뀨, 빗치!]
또 일단의 흑인 여자애들이 몰려나왔다.
합쳐서 일곱명 정도는 되나, 그들이 우디의 옆으로 지나갔다.
   '인심 잃어놓고, 완전히 다 버려논 모양이네. 관두자!'
그는 쓰레기가 무성한 주차장으로 내려섰다. '난 또 혹시나 해서 와봤더니만...'
세탁소 정 여인이 드나들 때만 해도 술가게와 캐리아웃은 이 동네에서 장사가 가장 잘 되었었다. 그러고 보니 정 여인과 같이 들어갔었던 카페테리아 겸 간이 레스토랑이 없어졌다.
그는 주차해 놓은 차를 향하다가 등 뒤에서 귀에 익은 음성이 부르는 것을 들었다.
   [엉클 운 제이! Wait up, 엉클 운 제이!]
   [주몰?] 운진은 일단 응수하며 돌아섰다.
여전히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향수를 진동시키는 주몰이 우디를 가볍게 안았다가 놓았다.
   [헤이 두잉, 주몰?]
   [Can't complain. 워 썹?]
우디는 턱으로 술가게 쪽을 가리켰다.
   [오, 예! 그들이 누군가 하면...]
   주몰이 새삼스레 우디를 한쪽으로 이끄는 시늉을 했다. [북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불리우는 자들인데, 아마도... 엉클을 표적한 것 같던데?]
   [나를? 내가 뭘 했는데?]
   [누가 엉클의 목에다 뭘 걸었나?]
   [흠...] 
우디는 대번에 칼침 사건과 연관지었다. 하지만 뻘건 대낮에 총질 할 정도면 칼을 썼겠나...
주몰이 흑인들만의 악수를 척척 했다. "Be watchful. Okay?"
   "Sure thing! Thanks!"
그리고 운진은 조금 긴장감이 들었다. 'The Men from the North... 많이 들어본 느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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