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해오는 말 중에 제 팔자는 타고 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서양말 중에는 은수저를 물고 나오는 아기가 따로 있다고 한다.
수키의 아들 애담이 바로 그 부류에 드는 아기였던 모양이다.
태어난지 일주일이 넘어 연말을 맞았는데...
수키에게 어떤 기업체에서 러브콜이 날아왔다. 지금 줏가가 바닥을 향할 때 많이 사놓자는 투자 전문 그룹에서였다.
그들이 대강 제시해 주는 대상에는 은행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수키는 오히려 그들에게 충고를 돌려보냈다.
은행을 섣불리 만졌다가는 많은 손해를 볼 것이라고.
그들에게서 연구한 후 다시 연락하겠다는 회신이 왔다.
우디는 그저 수키가 그런 일에 통달한 여인인가 보다고 여기기만 했다.
한편 정애는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품행이 좋지않다는 이유로 파면을 당했다.
그 곳에 먹으러 오는 손님들 중에서 어느 한 남자 즉 주유소를 몇개 가지고 있다는 남자와 대화가 차차 길어지며 익어갔는데, 레스토랑 주인이 불량하다고 난리를 벌였던 것이다.
연말인데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정애는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딸은 겨울 방학 때 못 왔고, 아무도 없는 학교 기숙사에서 라면으로만 떼웠다고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정애는 엄마도 힘들다고 잠자코 공부나 하라고 쏘아부치기만 했다.
한국에 나간 아들은 복학은 않고 아마도 길거리의 불량학생으로 나도는 모양이다.
남편이란 자가 어쩌다 응답한 전화 통화에서 소리쳤다.
나와서 아들새끼 다 버려놓은 년이 도로 데려가라고.
남편은 아들이 나갔을 때 동거하던 여인을 내보냈다더니 도로 들어오게 하고 아들을 내쫓은 모양이다.
정애는 거기에다가 다 약 먹고 죽을 거라고 악을 써댔다.
정애는 주인이 역시 한인인 다른 주유소에 캐쉬어로 취직했다.
그 주유소는 남자 주인이 메카닠이고, 여자가 가게 안을 지켰다.
남자의 차 고치는 기술이 월등한지 앞에서 정애가 보더라도 하루에 평균 열 대는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여자는 일년에 한번씩 꼭 한국 나가서 얼굴을 뜯어 고치고 들어오는 성형중독자였다.
뜯어 고치는 얼굴이 남들의 눈에는 겨우 '그 정도'였다.
그 여자는 세시 되면 아들 둘의 핔엎 문제로 들어갔다.
정애는 아침 여덟시에서 네시까지 펌프 캐쉬어를 보고, 거기 일이 끝나면 그 주유소에서 얼마 안 떨어진 샤핑 센터의 역시 한국 사람이 주인인 캐리아웃으로 일 간다.
거기서 밤 열시까지 샌드위치를 싸고, 치킨을 튀기고 집에 가면 초죽음이 되어 쓰러져 잔다.
자연 정애는 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을 다니다 보니 성에 대해서는 엄두도 못냈다.
간혹 주유소 남자가 마누라만 들어가면 앞에 나와서 수작을 걸곤 했는데, 정애는 아무런 꾀도 나지 않고 그저 시계만 보는 편이었다. 정애는 돈 때문에 주유소 캐쉬어 일을 육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애는 웬지 눈에 익어 보이는 벤즈 차 한대가 주유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 동네는 고급차들이 많이 다닌다. 벤즈 렠서스 비엠더블유 차종은 너무도 흔한 그런 동네라서 웬만한 외제차는 눈에 기별도 안 가는데, 정애는 그 벤즈 차에서 오운진이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목까지 올라간 털코트에 허리띠와 목도리를 색상으로 맞추고, 다리미질을 한 것처럼 반듯하게 펴진 청바지를 입었다. 그는 돈을 미리 내러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운전자처럼 펌프에다 카드를 긁었다.
정애는 그 벤즈 차의 뒷자리에 탄 한숙희를 보았다.
숙희는 무얼 보는지 눈을 내리깔고 무척 열중이다.
'임신 중이었다더니 애를 낳았구나!' 정애는 불 같은 질투심이 확 일었다.
수키와 우디는 생후 일주일 된 신생아를 혹시 황달인가 해서 담당 소아과 닥터에게 보이고 집에 가다가 남의 동네 주유소에 들렀던 것이다.
우디는 펌프를 차 개스통에 꽂고 유리창을 통해 무심코 차 안을 들여다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차 안의 가족이 아니라 유리에 비치는 가게의 반사였다.
우디는 건물 쪽을 흘낏 돌아다봤다.
어떤 종류의 사람이 일하는 곳인가 그냥 쳐다보는 눈길이었다.
'어!'
우디는 유리창 안에서 내다보는 여인의 눈과 마주치고는 얼른 차로 돌아섰다.
우디는 주유 펌프를 확 빼어서는 걸었다.
수키가 다 됐는 줄 알고 자세를 바로 하다가 가게쪽을 흘낏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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