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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C 임관식에 참석한 졸업생들 중 태권도반의 4학년이 다 들었다.그들은 물론 숙희보다 일년씩 선배이지만 일렬로 서서 그녀에게 거수경례를 붙였다.숙희는 모처럼 만에 화사하게 웃으며 그들과 일일히 악수를 했다.그리고 그들은 모자를 벗어서 돌아가며 숙희에게 씌워 주었다.숙희는 그럴 때마다 머리가 헝클어지지만 그냥 흔들어서 펼 뿐 감사히 받아 들였다.   충~성!그들이 다시 거수경례를 붙였다.   "오오오오!"   숙희는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다시 한번 축하해요~"되려 일년씩 선배인 남학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왜.그들은 비록 선배 학년이지만 실력상 사범격인 숙희에게 단단히 혼나면서 다들 검은 띠에 4단들이다. 그들 중 숙희에게 안 얻어터지고 기진맥진할 때까지 벌 받지 않은 학생이 없다.   나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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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가 창원을 마주친 것은 해가 또 바뀌고 나서였다.    "오! 윤 선배! 복학했어요?"숙희의 아무렇지않게 던지는 말에 창원은 목이 아파와서 말을 못 했다. 숙희는 언제 복학했느냐 졸업은 언제 하느냐 하는 그 다음 인사말을 생략한 채 지나쳤다. 그녀가 복도를 걸어가는데 아마도 후배 학년들인 듯한 무리가 그녀에게 깎듯이 인사를 했다. 그녀도 그들에게 깎듯이 인사하고 계속 가는 것이었다.   올해 봄까지만 대회에 나가고 담부터는 안 나간대   아냐 졸업반이라 올해부텅 걍 안 나간댕   그럼 인제부턴 우리가 못 이기면 일 나네   그러니까 이겨야지   와아 송 선배 먼저 대회에서 실수로 넘어져서 졌는데에   울었어   분하지이   와아 이를 드득드득 갈면서그 무리가 창원은 그냥 슥 보기만 하고 지나쳤다.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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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원은 예정 보다 일년 빨리 복학한 셈인데.학교에서는 ROTC 제도와 혜택이 있는데, 일부러 현복무를 고집한 이유를 물었다.창원은 혹 군대를 영원히 못 벗어나는 불상사를 초래할까 봐 그랬다고 둘러댔다.   "일년 만 더 했으면, 소위로 임관하고. 거기서 삼년, 같은 삼년만 복무하면 자유로와지는데."주임 선생이 창원에게 의심쩍은 눈초리를 던지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창원은 동창들이 거의 소위로 임관되어 뿔뿔히 흩어진, 그래서 그에게는 텅 빈 교정을 절룩거리며 걸었다. 그는 행여 송숙희를 먼 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렸다.김정애는 마지 못해 창원을 계단 끝에서 기다렸다. "숙희는 후배 양성에 땀을 흘리고 있대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이제 복학하셔서 지난 계간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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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갑은 별 둘짜리 이성 장군을 부대로 찾아가서 면회했다.이 장군은 부관의 설명을 듣고도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우리가 어떻게 아는 사이요?" 이 장군은 일단 한 중령과 악수를 했다.   "저는 육본 인사과에 근무하는 한순갑올시다."   "아이구! 육본에 계시는 분이시구만!"   이 장군이 한 중령의 손을 한번 더 잡았다가 놓았다. "우리 육본 인사과에 계신 참모님이 이렇게 누추한 곳을 다 방문해 주시고... 뭐, 하늘에 무슨 움직이라도?"한순갑이 잠자코 있으니 이 장군이 부관더러 잠깐 나가 있으라 손신호했다.   "믿을 만한 친구지만, 그래도... 그래, 인사과 참모님.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장군님도 전쟁터로 후방으로 좋은 성과 많이 올리고 다니셨는데, 이제 금뱃지라도 달으셔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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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세 번 결전 만에 결승에 올랐다.김 중위가 숙희의 귀에다 속삭였다.    쟤는 다리를 잘 건다 그렇다고 발을 보지 말고 눈을 봐.   쟤가 재작년에 윤창원이를 그 식으로 이겼어.그런데 숙희는 마주 보고 인사하자마자 이기고 말았다.그 선수가 인사하자마자 다리 걸기로 공격했는데, 그것도 상대 여자 선수의 허벅지 안쪽을 노렸는데.숙희가 붕 뜨며 그 다리를 내리 찍은 것이었다. 그 선수의 다리에서 뚝 소리가 났고, 그 선수는 악 하고 주저앉았다.장내가 물 끼얹은 듯이 조용했다.주심이 남학생에게 세 번에 걸쳐서 물었다. 싸울 수 있겠느냐고.그 선수가 다리를 붙들고 매트 위에 누웠다.와아아아!숙희가 속한 대학교의 응원팀에서 고함이 터졌다.이겼다아!우리가 이겼다아!그 국립학교 학생들은 울분을 토했다. 이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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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갑은 정 장군에 대한 면회신청이 두 번이나 반려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그는 혹 그 새 송 마담이나 숙희가 정 장군을 만났나 하고 상상하니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 날 숙희를 납치해서 어디로 데려가려고 합세시켰던 쫄따구들이 반기를 들었다. 진정서 올리기 전에 두 번 다시 뭘 시키지 말라고.이제 한순갑은 숙희의 집 앞은 커녕 학교로도 찾아 가지 못 한다.그렇다면 정 장군을 거세 시키기 위해서는 정적을 포섭해서 약점을 폭로하는 수 밖에는. 그 동안에라도 송 여사나 숙희가 정 장군을 못 만나도록 해야 하는데...모녀는 또 술을 나누고는 합의했다. 아버지를 안 찾기로. 왜.   이제 와서 찾는다고 달라질 것 없고.   괜한 집안에 풍파만 일으킬 것 같고.   그리고 정말 이십년이 가깝도록 찾고자 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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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장군이면 별이 몇 개야?"숙희는 모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장, 장군이라니?"   "엄마..." 숙희는 모친의 손을 잡았다.   "얘가 오늘은 왜 이러니?"   "정... 장군님!"   "뭐!"   송여사는 문자적으로 앉은 자리에서 뒤로 펄쩍 뛰었다. "니가 그걸!"   "맞어?"   "누가 그래!"   "맞어, 안 맞어!"   "누가 그러냐니깐!"   "한 중령님 쫄병들이."   "누구... 한 중령님이?"   "아니. 오늘 말 못 해도 무슨 일이 있었는데, 어찌 말 주고받다 보니 나왔어."   "아니, 그 냥반이..."   "근데. 정... 장군님이 나한테 아버지란 인데."   "..."   "날 모르지?"   "..."송 여사는 딸의 눈을 보느라 바쁘다.숙희가 픽 웃더니 벽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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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한 중령을 까맣게 잊고 살다가 어느 날 버스 정류소에서 소위 급습을 당했다.국방색 천을 뒤집어 씌운 찝차가 그녀 앞에 와서 탁 서더니 장병 둘이 뛰어 내려서 그녀를 강제로 태운 것이다.그녀는 뒷자리로 곤두박질 당했고. 두 장병이 양 옆에서 꽉 붙들었다. 그런데 그 군인놈들이 숙희의 유방을 슬쩍슬쩍 누르는 것이었다. 앞의 조수석에 앉은 한 중령이 시커먼 안경 쓴 얼굴로 돌아다 보고 그 특유의 교활한 입웃음을 보였다.숙희는 되려 침착해져 갔다. 그녀는 양 팔을 으스러져라 붙잡고 있는 군인에게 풀라고 말했다.그랬더니 그 놈들이 장난하던 팔꿈치를 떼는 것이었다.   "꽉 잡고 있어라. 그 기집애 태권도가 3단이다." 한 중령이 비양거렸다.   "이젠 4단인데, 어쩌죠?"   "이 놈의 기집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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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허우대 좋은 애들을 경비사로 차출한다 하고 실제로는 데모 진압용으로 사용되었다.윤창원은 어느 대학로에서의 데모 진압에 투입되었다가 학생이 휘두르는 각목에 엉덩이를 맞았다. 근육과 신경이 한데 엉긴 것을 수술로 풀었는데, 제대로 걷기까지는 오래 걸린다고 했다.그는 경비사에서 아주 먼 다른 데로 배치받았다. 행정병이라고는 하는데, 군기가 사람 잡는 곳이었다.눈만 뜨면 구타로 시작해서 구타로 해가 졌다.   데모는 씨발놈들아 지금이 어느 땐데 데모야   그게 구타의 죄목이었다. 요런 새끼들은 전방에 보내면 월북할 새끼들이야.창원은 나중에 내무반장한테 데모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데모 진압에 참여했다가 부상 당했다고 눈물의 호소를 하고 나서야 안 맞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는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

pt.23//4-1x031 그런 단어는 내 사전에 없는 말

그런 단어는 내 사전에 없는 말   숙희네 학교는 정문 입구부터 썰렁했다.강의실은 보통 반도 안 찼고, 교련 없어진 운동장은 낙엽만 굴러 다녔다.숙희는 돌계단에 수건 깔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뒤에서 그늘을 타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그녀의 목덜미를 하얗게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숙희야바람이 그렇게 소리냈다.   숙희야낙엽이 그렇게 소리냈다.숙희는 고개를 들어 빈 운동장을 보다가 문득 뒤를 돌아다 봤다.정애가 거기 서 있었다.숙희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윤 선배가 다쳤어."정애의 그 말에 숙희는 조금 뜨끔했다. 그러나 숙희는 내색함을 애써 감춰야 할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다. "근데?"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데에!" 숙희는 짜증이 확 났다.그리고 그녀의 뒤는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