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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숙희와 창원은 학교 내에서 공식적인 짝으로 알려졌다.숙희를 만나는 3학년 학생들은 창원이 저기 있는데 또는 창원이 어디 있는지 봤느냐고 했다. 심지어 선생들도 창원의 도움이 필요하면 숙희에게 전달했다. 왜.창원이가 학교측의 어떤 부탁을 일차 거부했거나 사양했어도 숙희가 그를 보고 전하면 하기 때문이다.창원이가 있는 데에 숙희는 없어도 숙희가 있는 데에는 반드시 창원이가 있었다. 숙희가 창원을 찾아 다니지 않아도 창원이 숙희를 찾아 다녔고. 벗들은 숙희가 어디서건 보이면 기다렸다. 창원이가 오기를.그리고 정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숙희 곁에 꼭 붙어 다녔다.   운동 클럽에서 여름 야유회를 가기로 했는데. 숙희는 엄마의 허락을 염려하고 당연히 참석 못한다고 했다.창원은 숙희를 안 놓아주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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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징계위원회에서 결과가 나왔다.학생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선생을 폭행한 것은 퇴학깜이라고.그런데 말이 서로 엇갈렸다.흥섭은 한숙희란 여학생을 지목했고.창원은 그가 사범에게 보복으로 그랬다고 나왔고.그 자리에서 유일한 목격자인 정애가 숙희를 지목했다.하루 후 한숙희 학생을 어떻게 할 것이지를 최종 결정한다는 발표가 나왔다.창원이 정애를 한구석으로 데려갔다.   "너 숙희랑 친구잖아. 너 왜 가만 안 있어?"   "저 선배 좋아해요!"   "난 너 안 좋거든?"   "전 좋아해요!"   "내가 김 중위랑 싸웠다고 하면, 감정 싸움으로 처리하는데. 니가 목격자라고 입을 놀려서 숙희가 처벌 받으면 넌 좋아? 너 친구한테 그럴 수 있어?"   "난 숙희 걔가 선배한테서 떨어져 나가기 바래요."   "난 너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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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는 버스를 연신 바꿔타며 결국 아현동으로 오게 되었던 활극을 두고두고 재미있어 했다.그 때 처음 타 본 외곽 노선 시영버스는 완전 콩나물시루였다. 얼마나 때려 실었는지 새로 꾸민 것처럼 깨끗한 버스 차체가 우직우직 소리를 냈을 정도였다. 그런데.창원은 승단시험을 패쓰하지 못 했다.그의 대련실력을 직접 상대한 사범이란 자가 비겁하게 굴어서였다. 학생이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유도해 줬어야 할 사범이 되려 창원을 가격해서 쓰러뜨린 것이었다.물론 창원은 숙희가 보려니 해서 폼도 열심히 구사하며 최선을 다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학생들 교련도 가르치고 ROTC 교관이기도 한 김흥섭 중위에게 조금 과하긴 했다.그렇다고 승단시험을 치루려는 학생을 사범이 발로 턱을 차서 쓰러뜨린 처사는...    창원은 한쪽 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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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보다 겨우 두 해 선배인 창원은 몹시 어른처럼 굴었다.방과 후 그가 꼭 숙희의 마지막 강의실로 찾아왔고, 나가 놀 때는 정애가 꼭 끼었다.숙희도 정애가 같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 했다.두 고향 친구는 창원에 의해 막걸리라는 것을 처음 맛보았다.숙희는 걸죽한 액을 맛있어 했고, 정애는 쓰다고 못 먹었다.   "엄마! 나 막걸리 먹었다?"숙희는 집에 오자마자 모친에게 허 하고 입김을 내보냈다.   "뭐어?" 송 여사는 그렇게 놀라는 시늉만 했다.피는 딸이라도 못 속이나. 왜.정 장군은 주량이 엄청났고 아무리 취해도 자세나 말이 흐트러지지 않았었다. "정애랑?"   "정애는 쓰다고 못 먹어서 내가 대신 다 먹었구."   "그럼, 누구랑?"   "그, 축구선수로 있는 선배."   "그 선배...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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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숙희와 정애는 운동 계통의 국립대학에 나란히 입학했다.둘은 공부도 잘 한 편이었고, 정애의 체조와 숙희의 태권도가 면접에서 점수를 얻었던 것이다.그리고 3개월 정도의 이사 준비 기간 동안 송 여사는 돈을 거의 거둬들였다.   그 동안 한순갑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모녀는 아현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 곳에서는 서울의 어느 곳이든지 버스로 연결되었다.송 여사로서는 근 이십년 만에 서울 땅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다.그러나 그녀는 요정이 있었던, 아직도 있는지 모르지만, 그쪽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어쩌다 딸과 함께 어디를 갈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탔는데 하필 그쪽 방향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새로 지어진 어떤 건물 때문에 그 특이한 기와 지붕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뭘 그렇게 봐?"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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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집 앞에 누런 천지붕을 뒤집어 쓴 찝차가 세워진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정애는 계속 재잘거리며 두어 걸음 더 가다가 멈춰섰다. "왜 그래?"   "아... 쫌 이따 들어가자."정애가 찝차를 가리켰다. "저 차 맨날 누군데?"   "돌아가신 아부지의 부관이셨대."   "근데. 왜 맨날 와?"   "우리 떡볶기 먹으러 가자. 응? 내가 살께." 숙희는 정애의 팔을 끌었다.그 때 한순갑이 대문을 나섰다. "오! 숙희야!"숙희는 이미 돌아서서 가기 시작했다.   "야!" 한순갑이 꽥 소리질렀다.정애가 돌아서서 숙희를 쫓아갔다.   "너 일루 못 와?" 한순갑이 동네가 떠나가라고 소리질렀다.송여사가 대문을 나왔다. "한 소령님, 저..."   "어쭈? 이것들이?"   한순갑이 공군 잠바 소매를 걷어 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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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럼, 한 소령님네서 학교 다닐래?"   "엄마!"    숙희는 대번에 눈물을 글썽였다. "차라리 대학 안 갈께."숙희는 더운 날인데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송 여사는 한 소령 보다는 정 장군이 더 두렵다. 왜.정 장군이 숙희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나올까 모르기 때문이다. 혈육이라고 반길지 아니면 남의 가정 파탄 일으킬 일 있느냐고 난리를 피울지 감이 안 잡힌다.차라리 한 소령에게 비밀 지켜 달라 하는 편이 더 수월할 것 같다.그런데 딸은 한 소령 말만 듣고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그러나 숙희는 서울로 진학하고 싶은 열망이 점점 가열되어 갔다. 그 이유는 한 소령이 더 이상 두려워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면, 혹 혼자 자취하며 다닐 일이 걱정되지않기 때문도 아니었다.   어느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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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여사는 딸의 대학 공부를 위해서 서울행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지만 걱정되고 겁이 났다. 왜.장군님을 만나게 될까 봐.숙희가 만 열여덟살이니 서울을 떠난지 일년 모자라는 이십년이지만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했다. 서울 생활을 하다 보면 꼭 정 장군이 아니더라도 하다 못해 아는 이라도 만나게 될 테고...그렇게 되면 말은 단번에 퍼지는데...엄마의 비밀 때문에 딸의 진학길이 막히는 것은 엄마가 불행한 삶을 살아온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다. 그렇다고 딸만 혼자 덩그라니 '그' 서울에 올려 보낼 수도 없다.그렇다고 엄마의 친척이 살고 있는 조치원으로 가라 할 수도 없다.엄밀히 따져서 딸이 기댈 수 있는 혈육이라면 정 장군 밖에 없다...     정 장군은 당시 기혼자였고, 십년 결혼에 자식이 없었다. 그가 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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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시간이 가도 눈썹학생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같이 있던 학생에게 넌 제발 입 좀 조심해라 응 하고 어른처럼 말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장을 나가서는 제법 폼 재면서 담배를, 그것도 건방지게 꼬나 물던 모습이. 서울.숙희는 고 3이 되도록 서울을 구경 못 했다. 왜.그녀의 모친은 서울을 무슨 사람 잡아가는 곳처럼 표현하며 딸에게 절대 생각도 말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서울에서 소위 데모하고 도망다닌다고 말한 학생들은 달라 보였다. 장호원에서 보는 남학생들과 많이 달라 보였다.   "엄마. 정애는 서울로 대학 간대."숙희는 방과 후 모친에게 어려운 말을 꺼냈다.   "정애가 실력이 되남?" 송여사는 딸의 말을 일단 부정적으로 받았다.   "걔 중학교 때부터 체조한 걸루."   "..

pt.23//1-1x001 1970년 장호원, 숙희

1970년 장호원, 숙희   숙희는 ROTC를 대학 4년 동안 받으면 졸업과 동시에 여군 소위로 임관될 것이라는, 더 나아가서 승진도 되고 우수한 두뇌의 육사 출신 신랑을 만날 수도 있다는 교련선생의 설명에 입을 다물었다.그녀에게 군대란 것은 공포였다. 왜.잊을만 하면 찾아와서 엄마를 괴롭히는 한 소령님이 두려워서.이제 숙희는 엄마와 소령 계급 모자를 쓴 사내와의 대화를 다 알아 듣는다. 그의 말은 시작부터 끝까지 '발각되면' 모녀가 목숨을 잃은다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모친은 시장에서 일수놀이 해서 버는 돈에서 얼마를 내놓아야 했다. 그러면 소령이란 이는 한번 더 엄포를 놓고 가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군대라는 단어와 군복 입은 모습이 공포였다.   어느 날, 숙희는 엄마한테 울며 대들었다. 이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