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로 접어들며 해가 일찍 떨어지기 시작했다.숙희는 여느 때처럼 창원이 잠시만 같이 있자 해서 하교 길에 잠깐 다방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데, 언덕길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창원이 걸음을 멈추며 숙희를 뒤로 가게 했다. 왜 선배 하고 숙희는 조그맣게 말했다.창원이 턱으로 전봇대를 가리켰다. 저기 또 숨어있네 하고.숙희는 옆골목으로 해서 가는 길을 안다.그래서 둘은 그 길로 부지런히 통과했다. 그 전봇대를 피해 가려는 것이다.둘이 부지런히 와 보니 그 그림자는 사라졌다. "이젠 더 일찍 다녀야겠다." 창원은 주위를 계속 살폈다. "좀도둑이거나 노상강도면 안 되지."숙희는 집 안으로 들어서서 대문을 꼭 잠궜다. 창원은 언덕을 내려가며 뒷골이 자꾸 송연해짐을 느꼈다.그는 최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