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177

pt.4 4-10x040

토요일이라 매상이 팍 오르고 일찍 손님이 끊어졌다.아홉시쯤에 문을 닫아 걸고, 영아가 부득부득 밥 같이 먹자고 우디를 붙들었다.   "애들은 아홉시면 칼 같이 자. 폴 아빠는 아예... 죽었구."    "폴 아빠... 아직 안 죽었는데?"   "..."   영아가 잠시 혼동된 얼굴을 했다가 이내 웃었다. "아아! 역시 형부는!"영아가 우디를 가게 뒷방으로 끌었다.그 방에는 작은 탁자가 중앙에 놓였고, 그 위에는 신문지로 덮어놓은 저녁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아가 그 신문지를 접어서 치웠다. 그 밑에는 그래도 제법 신경 쓴듯 반찬 두어가지가 가지런히 놓였다.   "찌게만 덥히면 돼. 형부, 손 씻고 와. 얼른!"    영아가 형부라면서 감히 그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오, 역시 형부 히프는... 좋다!"..

pt.4 4-9x039

운진이 가게로 돌아오자 영아가 애들 밥을 얼른 먹이고 내려오겠다며 사라졌다.운진은 그리 바쁘지는 않지만 꾸준히 드나드는 사람들 상대로 장사를 열심히 했다. 곧 왕년의 장사 실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술을 팔고 복권을 찍고 담배도 금새 척척 집었다.게다가 손님들이 우디를 전혀 낯설어 하지않는 것이었다.해가 완전히 넘어가서 문 밖이 깜깜해졌다.영아가 왔다. "형부. 식사... 먼저 할래?"   "아니. 난 괜찮은데... 형록이는?"   "아직도 인사불성. 여태 말했잖아, 보기보다 약골이라고..."우디는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려는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그래도 애들은 잘도 낳네.   "잘 좀 먹이지."   "입도 까다롭고... 짧어."영아가 옛형부 곁에 바짝 붙어섰다.우디는 그녀에게서 방금 마친 듯한 치약 ..

pt.4 4-8x038

이제 사람들의 저녁 밥까지는 가게가 한산하다.   "나 볼 일이 좀 있어서." 운진이 가게를 나서려니 영아가 따라나왔다. "형부 안 올 거야?"   "어... 형록이가 못일어나면, 처제 혼자 못하지?"   "하긴 하는데에... 볼 일 보구 오지? 내가 밥 해 놓을께."   "그래요, 처제. 그럼."   "빨리 와, 형부. 응?"   영아는 사뭇 예전처럼 어리광 비슷했다. "맛 있는 거 해 놓을게."운진은 차를 몰며 영아가 보여준 모습을 눈 앞에 자꾸 떠올렸다.어리광은 다 아니지만 곁에서 치대고, 말할 때 콧소리를 섞어서 아양도 떨고 하던 모습을. 아니. 영아가 몸 접촉을 스칠 때마다 그리고 바로 곁에서 말을 건넬 때마다 운진은 아늑한 허공으로 떨어지는 황홀감을 느꼈다.어느 누구에게서도 못 가져보던 그런 ..

pt.4 4-7x037

운진은 영아의 '형부보다 약해' 라는 말을 달리 알아듣고, 저도 모르게 바짓속에서 일어서려는 것을 느꼈다.    '이 놈은 세월이 흘러도 옛맛을 아나?'영아의 유난히 무성했던 ㅇㅁ가 눈 앞에 선하게 보였다. 그녀의 꿈툴꿈툴거리던 ㅅㄱ의 움직임도.운진의 그런 공상을 깬 것은 어떤 이의 반가운 고함 소리 때문이었다.   "헤이, 맨? 워썹!" 누가 그렇게 소리치며, 방탄 유리를 두드렸다.운진은 누가 혹시 착각하고 그러나 했다. "어?"어딘가 낯이 익은 흑인 남자 하나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서 있다. 예전 가게에 단골로 늘 왔었던 자이다.   "헤이, 맨?" 우디도 그들의 억양을 흉내냈다.   "워디이 두잉 히어? (여기서 뭐 하는 거냐?)" 그가 방탄 유리에 이마를 대었다.   "저스트 비지팅. (그냥..

pt.4 4-6x036

수키가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반성문씩이나..."    우디는 쓰게 웃었다. "내가 무슨 쌈질한 국민학생이요?"   "그럼, 구두로라도 잘못했다고 사과해."   "사과는 했잖소. 당신이 안 받았지."   "그런 사과 말고, 정식으로 사과해."   "됐소. 거추장스럽게 말장난하지 맙시다. 서류나 빨리 준비하시요."   "자기!"   "나 가리다. 서류 준비됐다고 연락해 주면 그 때, 나도 변호사 사서 응하겠소."   "자기 정말 왜 이래? 나랑 안 살 거야?"   "어허이! 이 사람, 왜 자꾸 말을 돌리시나... 당신이 나보고 가방 싸들고 나가라 해서 나간 사람에게 왜 이러냐니. 말 만드는 중이요?"   "허! 기가 막혀서!"   "기 막힐 것 없소. 나는 아내를 두고도 딴 여자와 바람을 핀 죄로 이..

pt.4 4-5x035

"형부. 힘드시죠?"   영아의 말에 점감이 담뿍 들었다. "얘기, 들었어요."운진의 눈은 폴에게 고정되어서 눈썹으로만 까궁하는 중이었다.녀석이 낯을 안 가리고 눈을 자꾸 마주치며 웃었다.   "무슨 얘기를, 누구에게서?"   "챌리가... 가끔 와요."   "오오."   "아빠가 여태까지 저들 때문에 힘들게 사셨는데, 이제 편하게 살았으면 한다구."영아가 폴의 머리를 살짝 밀어서 안으로 보냈다.   "원... 걔도 쓸데없는 말을 여기다 해서, 처제를 속상하게 만드나."   "에게게? 저는 영원한 이모예요. 형부는 가짜아빠지만."   "흐흐.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나는 영원한 가짜아빠."   "그런데, 우리 챌리하고 킴벌리는 참 특이하죠?"   "왜?"   "왜... 아빠하고 이모하고... 사랑하면서..

pt.4 4-4x034

형록의 가게 뒷방에 전기 히터를 켜 놓은 채 밬스 위에서 잠을 잔 우디와 영호를 아침 먹으라고, 영아가 깨웠다.   "형부! 형부 좋아하시는 스타일로 북어국 끓였어요." 영아가 유독 우디에게만 친절하게 굴었다. 그녀도 지난 밤 제법 마셨는데, 거뜬한 모양이었다.영호는 지나가는 말처럼 '아직도 형부야?' 했을 뿐이다.형록은 그 때도 정신이 안 나는지 머리를 물건 진열대에 기댄 채 뭐라고 응얼응얼거렸다. 아마 영호처럼 말했을 것이다.   "괜찮아, 처제? 어제 작정한 사람처럼 마시던데."   "저 술 센 거 형부도 아시잖아요."우디는 아주 시원하게 끓여진 북어국을 국물만 두 그릇 마셨다.영호가 해장이라면서 미니쳐 사이즈의 위스키 두 개를 얻어왔다. "드슈. 속 풀어야지."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영호가 여전히 ..

pt.4 4-3x033

알트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일단 말은 마무리를 하자고 셀폰을 고쳐잡았다.    [그래서 네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게 뭘까?]   [개리가 쑤에게서 훔쳐간 돈은 쑤가 어찌됐든 땀을 흘려서 번 돈인데, 개리란 놈이 그걸 먹었다. 그 액수가 거의...]우디란 자의 말인즉슨, 아내를 설득해서 더러운 돈 돌려주고 그 동안 괴롭혀 온 것을 사과 받자로 설득시킬 예정이었는데, 개리가 훔쳐간 돈 만큼은 빼고 그러겠다는 제안.   "흥!" 알트는 흥미로운 자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일단 그렇게 하고, 네가 개리를 죽여서라도 그 돈을 뺏으면 너 해라. You can have it!]   우디가 무슨 자신이 있는지 큰소리를 탕탕 쳤다. [그렇다고 너더러 그 돈 찾아달라는 어리석은 부탁하는 거 아니다. 두 돈 다..

pt.4 4-2x032

숙희는 숙희대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중이었다.남편의 전화를 자다가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뜸 온라인 뱅킹을 수정하라고 한마디만 던지고 끊은 바람에 다시 걸어서 따진다거나 무시한다거나 할 엄두도 없이 마침 들여다 보고 있던 참이라 접촉 방법을 바꿔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 후 온라인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뭔가 많이 아나 봐...'   '혹시 내 돈을 누가 빼내갔는 지도 아나?'숙희는 빨강색 셀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아담은 아니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서 하는 걸로 봐도 그렇고... 온라인 뱅킹을 당장 바꾸라는 걸로 봐서도... 이상하지?'숙희는 남편이 안 받든지 받아서 바로 끊던지 간에 일단은 걸어보자 하고 셀폰을 열었다.   "안 자고 뭐 하나, 이사람아." 운진은 약간 취기있는 ..

pt.4 4-1x031 동지 섣달 긴 긴 허리를 감아다가

동지 섣달 긴 긴 허리를 감아다가   운진은 개리와의 통화를 일방적으로 마치자마자 몇시가 되었든 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여태 안 자면, 지금 당장 당신 은행 온라인 어카운트 열어서 아이디하고 패쓰워드 바꾸지? 빈 잔고라도 이제부터 어느 누구도 장난 못 하게."   "왜?" 숙희는 자다깬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여튼."   "왜, 자기."   "와아! 진짜!"    운진은 셀폰을 접었다. "하래면 하지, 저만 잘났나? 그러니까 이놈 저놈이 갖고 놀지!"그는 셀폰을 바닥에다가 팽개치려다가 말았다. 영아가 받으려는 제스처를 취해서였다. "셀폰만 아깝지, 형부."   "흐..." 운진은 셀폰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왜. 무슨 일이 있어?"   "...응."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