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2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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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영란이 남겨준 노트를 보고 그 동안 한사람씩 연락을 취했던 것이다.죽은 아내에게 빚을 진 여인네들은 대부분이 남편 몰래 쓴 돈들이었고, 알려지면 곤란한 꼴을 당할 두려움들이 있었다. 간혹 자녀들 등록금 문제로 급전을 돌렸던 이들은 쉽게 갚았다.운진은 아내를 농락 당하도록 부추기고 입방아 찧었을 여인네들에게 복수심이 일었다.그 중 두 여인은 운진 앞에서 순순히 팬티를 내렸다. 운진은 그 여인들이 예쁘건 날씬하건 상관없이 밀린 성욕을 배설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입을 통해서 어떤 소문을 내게 했다.   골프 선생이란 자를 붙잡기만 하면 돈 뿐만 아니라 싹뚝 잘라 버린단다고...   영호가 매형 운진의 하는 짓거리를 알고 잠자코 있을 리가 없었다.   '새끼가, 씨발, 지가 뭐, 돈 환이나 돼? 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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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이렇게 생각했다.숙희 그녀는 아니라고... 이십년 만에 만나 본 그녀는 먼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그래서 운진은 희미하나마 가졌던 어떤 기대감을 버렸다.그는 전에 설이가 넌지시 언급했던 말을 확인차 누이에게 깨놓고 물었다.   "전에 말씀한... 책방 여자라는 사람... 아직?"운서는 두말 않고 어떤 번호를 넘겨주었다.   그래서 운진은 누이의 주선 하에 책방 여인과 데이트를 시작했다.놀랍게도 그녀와는 세번째 데이트에서 동침했다.주말이라 그녀의 아이들이 친구네 집들로 놀러간 틈을 타서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그녀가 차려준 아침을 마치고, 운진은 바람 쐬러 나가자며 권유했다.그래서 두 사람이 간 곳이 철 이른 물가였다.   "무슨... 깊은 생각을 늘 하며 사시는 분 같아요."   여인이 낯선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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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그 종이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진짜 못난 사람이야.’ 그녀는 그 봉투를 어찌 할까 궁리하다가 옆에 있는 설이가 심부름한 면목도 있고 해서 일단은 무릎 위에 놓인 백 속에 넣었다.설이가 헤드폰을 머리에 쓴 채 숙희를 돌아다봤다. 그리고 헤드폰을 귀에서 떼었다. "네?"   “엘에이에 가면 삼춘한테 전해. 진짜 못난 사람이란다구.”   “아아.” 설이가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딱 한대 때려주고 오는 건데!”   “아아.” 설이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말은 그렇게 했어도 숙희는 심정이 찹착했다.    운진이 몇자 적은 글 중에 ‘그게’ 그의 이유의 전부였다는 대목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좋아하는 여자라 해서 지나친 행동 즉 그의 말대로 ‘남자 대우를’ 무시하는 행동을 감내할 비굴함이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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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숙희는 애써 침묵을 지켰다. 그 동안 그녀는 동생이 살도록 돌봐주고 배신한 아빠에게 그래도 잘 살라고 말 한차례 보내고. 그러나 그녀는 운진을 또 만나지 않았다.같이 탄 설이가 숙희의 안색을 살피고는 시종 침묵을 지켰다. 숙희는 눈치 빠르게 구는 설이가 고맙고 기특했다.    어차피 난 독신을 결심한 마당에 새삼스럽게...  그래도 운진을 다시 만나고 보니 옛 생각이 떠 올랐다.    누구의 아이디어였건...   성취 못할 일이었었기에 안 된 것이지 어느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라고 숙희는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컷 때려줬어야 하는 건데! 이십년 만에 만나 본 그 남자는 대화 조차도 피하지 않았는가! 나 혼자서 괜히 설이를 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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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가 운진에게서 눈을 떼어 운서를 봤다.    “설이가 그 매니저와 정식 데이트를 이미 시작했어요. 우선 제가 그 매니저를 알아보고 괜찮다 싶어서 어프루브 했죠. 설이도 기회가 오면 언니한테 말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제가 엄니 초상 치루러 오게 돼서 겸사겸사 왔다 말씀드리는 거예요. 설이, 아직 설겆이 하나?”   “저 금방 나가요!” 설이가 소리쳤다.마잌이 둘러보고는 말했다. “Am I missing something? (제가 뭐 미처 빠뜨린 거 있어요?)”운서가 말했다. “니 누나 시집 보낸댄다. 아줌마가.”   “A what?” 마잌이 못 알아듣고 반문했다.   "Your sister is getting marri... (네 누나가 결...)"   "What? She's getting mar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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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리와 킴벌리가 숙희에게 어색한 인사를 하고 둘이 나란히 이층으로 올라갔다.숙희는 식사를 다 끝내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잘 먹었어요, 언니.”운서가 숙희와 딸을 번갈아 봤다. “가까이 살면 내가 종종 밥을 해서 차려줄 텐데. 그나저나 캘리포니안가는 살기 좋아? 여기 메릴랜드 보다?” 설이가 나섰다. “일년 내내 써니야, 엄마.”   “Not that ugly Sunny, though! (그 못 생긴 써니는 말고!)” 마잌이 놀렸다.   “Shut up! (닥쳐!)” 설이가 마잌의 머리를 때렸다.운서가 남매를 점잖게 나무랐다. “밥 먹는데 애를 왜 때리니?”설이가 마잌을 또 한번 쥐어박았다. “He is stupid, mom! (얜 바보야, 엄마!)”   "하이고. 그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 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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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다 씻고도 제 방에 있다가 저녁이 준비되었다는 전갈이 설이를 통해 올 때서야 움직였다. 그래도 집안의 남자인데 손님에게 말도 건네고 해야 하는 줄 알지만 상대가 숙희인 지라 방에서 꼼짝 안 한 것이다. 그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상이 떠올랐다.   모두 저녁상 주위에 둘러앉았다. 설이가 눈에 띄게 숙희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킴벌리가 숙희를 몰래몰래 훔쳐봤다. 챌리는 시종 눈을 내리 깔았다. 그러나 손님을 내대는 분위기가 좀 전보다는 덜 한 것처럼 느껴졌다. 상에는 김치두부찌게도 있고 장조림도 있고 콩나물무침 시금치무침 등등 온통 한국식 일색이었다. 운서가 숙희 앞으로 나물들을 밀어주는 시늉을 했다. “찬이 입에 맞을래나?”숙희가 환하게 웃었다. “전 한국 음식 먹어보는 게 소원이예요, 언니.”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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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한테 새삼스럽게 팔을 벌릴 수는 없지. 너도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는 못하짐마! 설사 그녀가 기회를 준다 해도 난 못 해. 그니저나 히야! 파이넨셜 센터의 부사장이야? 대단하네…’운진이 가게에 도착해서 보니 옆 가게 확장공사 인부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 중 인솔자인 남자가 꾸깃꾸깃한 종이하나를 내밀었다.    “We’re all just finished, Mr. Oh. (미스터 오, 방금 우리 다 끝냈오.)”운진은 새로 꾸미고 있는 캐리아웃 자리를 돌아봤다.    영호에게 주어서 밥 벌이 해 먹으라 할 자리.그 안은 내일 당장 이라도 영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바닥이건 기물이건 깨끗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운진은 인솔자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여다 봤다. 카운티 헬쓰 디파트먼트에서 나온 인스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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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가 운진을 똑바로 마주 보고 섰다.   “운진씨. 이런 말도 제가 먼저 해야 해요?”   “녜? 아아...” 운진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참 나, 자존심 엄청 상하네!”    숙희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보였다. "여전히 내성적이신가?"   “제, 제가 염치가 없어서...”   “됐어요! 그럼, 모레 봐요.”   “녜.”   "에이그! 답답한 분!"숙희가 주먹을 들어보이고는 돌아서서 차로 갔다.그녀를 뒤에서 보는데, 운진은 어쩐지 그녀의 어깨가 슬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숙희의 모친을 공원 묘지로 내모시는 날 날씨가 너무도 쾌청했다. 관이 곧 묻힐 자리 위에 올려져 있고, 그 주위를 여러 사람들이 둘러섰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참석했던 교회의 목사가 집도를 인도했다. 숙희는 눈 같이 흰색의 정장..

pt.2 4-1x031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   운진은 반도 채 안 먹고 포크를 놓은 숙희의 파스타 접시를 쳐다봤다.숙희는 와인만 비웠다.웨이추레스가 와서 그릇들을 치우며 숙희의 와인 주문을 또 받아갔다.이내 유리잔에 맑은 와인이 가득 담겨 날라져왔다.숙희가 한두모금 입에 대고는 내려놨다. “운진씨.”   “아, 녜.”   “제가 만일 취하면 절 호텔까지 태워다 줄 수 있어요?”   “그까짓 와인 두 잔에 숙희씨가 취해요?”   “이젠 늙어서 조금만 마셔도 취해요.”   “그러세요, 그럼. 많이 드세요.”   “제가 취하면 막 때리든 거, 기억나요?”   “녜. 헤헤.” 운진은 그때서야 비로소 웃었다. 예전의 그녀는 그랬다. 어쩌다 술 몇잔 나누면 숙희가 취해서 운진을 때리고 땅에다 메다꽂았었다.    “지금도 누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