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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이 텅빈 아파트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던 운진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직감에, 키미! 했다.  참! 키미는 아직 운전을 못 하는데! 그가 부지런히 가서 문을 여니 역시 킴벌리와 챌리였다.    “키미! 챌리! 오마이갓! 들어 와.”작은애가 쿵쾅거리고 들어와 한쪽 구석에 가 쪼그리고 앉았다.운진은 챌리를 한번 보듬어 안아주고 등을 톡톡 쳐주었다.    “들어 와.”챌리가 앞으로 팔짱을 낀 채 방 한복판에 섰다.운진은 작은애 앞으로 가서 마주 앉았다.    “Kimmie. Tell me what you want me to do. (키미.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지 말해.)”킴벌리가 화난 눈을 들어 제 아빠를 마주봤다.   “I’ll do anything you want me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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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의 친정은 초상난 집처럼 온통 슬픔에 젖어있다.  큰딸의 이혼에 작은딸의 실종에 아들은 공금횡령으로 조사를 받았다.게다가 이제는 원로인 최 장로가 집을 슬그머니 나갔는데, 언제부터 준비를 해 놓았는 지 다른 여자 즉 교회의 한 과부여인의 집에 가 있다고 해서 또 한바탕 뒤잽이가 났다.그러나 영란은 친정엄마에게 '힘들어 죽겠으니 건드리지 말고 알아서들 하라' 고 했다.지금 영란은 이혼에 아이들 커스터디 문제에 코가 빠져 있는데 늙은 부모의 그깟...                밤에 조가가 영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자꼬짜로 그 자가 영란을 욕해댔다. “니 남편 새끼가 날 지금 길바닥으로 내쫓을려고 드는데, 씨발년아, 그냥 가만히 자빠져 있냐?”   “전화 끊어! 너 같은 놈하고는 말 안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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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운진은 아이에게 아빠가 당분간 살 아파트를 나중에 보여줄까 보냐고 물었다.   “How many rooms? (방이 몇개?)” 아이가 관심있게 물었다.   “Three.”   “Can I have one? (내가 하나 가져도 돼?)”   “Sure. Any time! (그래. 언제든지.)” 아비는 주저않고 대답했다. 만일 그런 데서 대답을 머뭇거리면 아이에게 실망을 주고 상처를 준다. 어쨌든 어른들이 문제를 일으키는데 딸들까지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서.   “Can I see it? (볼 수있어?)”   "Now?   "응!"   “Sure. Let’s go! (그래. 가자!)”아이가 깡총 일어나 따라 붙었다.운진은 작은애를 벤즈 차에 태우며 이 시간까지 애가 집에 돌아가지 않았는데 연락을 않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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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애 킴벌리는 늘 말이 없다. 그렇다고 불만에 쌓였거나 바보는 아니다. 행동하는 것은 영리한데 말을 굉장히 아낀다. 나이가 열여섯살 반인데 키가 크고 늘씬하다. 그것만은 엄마를 안 닮았다.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운진은 아이에게 무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Coke!” 작은애는 간단히 대답했다.아빠는 카운터 뒤의 유리문으로 된 냉장고에서 플래스틱 병에 든 코카 콜라 병 하나를 꺼내주었다.   “Thanks, dad.” 아이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Sure. You want cup? (그래. 너 컵 원해?)”   “Mm, mmm. I’m okay. (음, 음. 난 괜찮아.)”킴벌리가 병 마개를 틀어서 열고 첫모금을 마시며 가겟문 쪽을 가리켰다.운진은 문쪽을 보고 챌리가 들어서는 걸 봤다.챌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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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엔 얼라가 말장난 하지않나 싶은디. 모르겄소, 미쓰 한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숙희가 찾아간 김 사범이 한 말이었다.    "저는 판단이 얼른 서지 않아서요."   "시방 문제는 미쓰 한이요. 다 알지도 못 하면서, 얼라 말만 듣고 이렇게 행동하는 기 난 맴에 걸리요. 뒤에스 숨어설랑은 조카를 시켜서 수작 떠는 지도..."   오십 후반의 머리가 허옇게 샌 김 사범은 숙희의 얘기를 듣고 나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시방 지가 오군을 만난 지 꽤 오래됩니다. 아마 십사오년은 좋게 넘었뿐졌는디. 뭣이냐, 전화 미얏군데 하면 소문 정도야 알아내지 않겄소?"   “아이는 착한 아이예요. 거짓말을 할 애는 아닌 것 같은 데요.”   “미쓰 한이 그렇다면 그렇겠지요. 지가 쪼까 알아보지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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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쟁반을 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혼란이 왔다. 오션 씨티. 사진. 이혼. 그녀는 설이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스물네살치고 너무 당돌하지 않은가. 감히 어른을 놀리는 거 아냐! 숙희는 어리둥절해 하는 설이를 뒤로 하고 구내식당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설이가 삼촌더러 날 봤다고 했더니 오션 씨티를 갔다고?   ‘오션 씨티 나 갔었는데! 나도 갔었는데!’   숙희는 그 날 일을 어떻게 마쳤는 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고, 그리고 설이를 일부러 피하려고 약간 일찍 퇴근하려는데 주차장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설이와 마주쳤다. 설이가 뭐라 하려는 제스처를 하는데 숙희는 모른 척 하고 지나치려 했다.    “안녕히 가세요!” 설이가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숙희는 설이에게 손만 흔들어주고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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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가 부득부득 우겨서 숙희에게 점심을 샀다.   “안 그러면 제가 아줌마랑 점심을 같이 못 먹어요.”   “성격도 참 희한하다. 내가 매일 사 준 들, 그게 맘에 걸리니?”   “네.”   “그래, 솔직하니 좋다.”   “제가 아줌마랑 같이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저한테 잘하는 거 아세요?”   “그래? 말하자면 내가 니 빽이란 말이냐?”   “빽? 응... 아, 네!” 설이가 킥킥 웃었다.숙희는 꾸밈없이 말하고 솔직하게 감정 표현을 하는 요즘 아이 설이에게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도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다. 그리고 마잌을 생각하면 자꾸 손이 가려는 충동을 참는 고통이 보통 심한 게 아니다. 원인은 하나. 마잌에게서 운진의 모습이 풍긴다. 제 엄마인 운서언니를 닮았는데, 운진의 모습이 더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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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이혼건을 맡은 변호사가 운진의 가게에 들렀다. 운진은 이혼이 성립될 때까지 묵을 아파트를 구한 것을 말하고, 아이의 양육에 대해 이길 수 있도록 힘써 달라 하고 그의 차에다 맥주 한 케이스를 직접 실어 주었다.   "애들을... 선생님이 맡으시게요?"   "예. 그러는 게 애들한테 그나마 좋을 것 같아서..."   "미국은 거의 엄마에게 호의적이라... 유태인이 모계사회 아닙니까? 미국법이 유태인의 율법을 많이 따랐거든요."   "아이들의 장래가 딸린 문젭니다."이혼 담당 변호사가 양육 문제에서 유리하도록 힘써 보겠다고 했다.   상업용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건물 살 손님이 나타났다고 일러주었다. 사겠다고 하는 작자는 예상했던 대로 먼젓 가게만 샀던 조가였다.    '흐흥... 반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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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시 조금 넘어 가게를 여니, 운진에게 영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아를 더 늦기 전에 보내는게 좋을 텐데, 자기, 말 듣지.”   “처제 여기 없어.”   “뭐라구? 같이 안 있다구?”   “응.”   “엄마 전화 받았대매! 엄마보고도 없다 그랬대매!”   “없으니까.”   “헛, 참. 일 내고 있네.”   “형록이랑 어젯밤에 떠났어.”   “뭐라구?”   “못 믿겠으면, 아, 전화기도 놓고 갔다. 그나저나 여기 아무도 없는데, 당신 좀 와서 라러리 좀 찍지.”   “허이구, 차암! 뻔뻔스럽긴.”   “올 거야, 안 올 거야!”   “안 가!”전화가 끊겼다.운진이 가게 전화기를 내려놓았는데, 벨이 울렸다.    ‘그럼, 그렇지!’  그는 수화기를 나꿔채듯 집었다. “여보세요!”   “저어, 사장님..

pt.1 14-1x131 딸들과의 대화

딸들과의 대화    운진은 눈을 떠 보고 몸이 침대 위에 누워 있고 천장은 어두운 걸 알았다. 그는 깨어질 듯 아파오는 머리를 간신히 올려 방 안을 살펴봤다. 그 모텔방이다.처제가 누웠을 옆 자리가 비었다.    ‘처젠 어디 갔나 본데? 몇시쯤 됐나?’침대 사이에 놓인 테이블 위의 알람시계를 보니 1:35 A.M.을 가리켰다. 그는 잠을 더 청하려 했다.딸들을 빼앗기는 장면이 떠 오르고 가게를 빼앗기는 장면도 보였다. 조가가 남산 만한 배를 한 영란과 나란히 서서 손가락질을 하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운진은 악몽에 시달리며 자다깨다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어렴풋이 어디선가 셀폰 톤이 울었다.    ‘내가 셀폰이 없는데?’ 삐리리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러고 보니 귀에 익은 벨소리다. ‘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