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77

pt.1 16-10x160

영란은 패밀리 닥터에게 예약하고 갔다.그 여닥터는 영란의 증세를 듣고는 청진기 같은 것도 안 대어보고 큰 병원을 바로 예약해주었다.그 병원은 영란이 유산시도수술을 받은 곳이었다.   "그 병원에 내 동창이 있어요. 잘 해 줄 거예요."그래서 영란은 그 홈닥터가 뒷면에 필기체를 못 알아보게 휘갈긴 명함을 받고 병원으로 바로 갔다.영란이 그 병원의 안내에 도착하니 홈닥터가 전화를 미리 해 놓았나 방문객 로그붘에 이름을 적고는 안으로 곧장 불려갔다.영란은 내과도 아닌 산부인과로 안내되었다.그리고 그녀는 뱃속의 어디 병이 아니라 자궁경구암 판정을 받았다.그녀에게 유산을 유도한 닥터가 차트에다 메모한 내용이 그제서야 밝혀졌다. 그가 어쩌면 암 부위를 발견한 것 같다는 약자를 써놓고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아무도 그..

pt.1 16-9x159

조카들을 본 영호가 얼른 시치미를 뗐다.킴벌리가 제 아빠를 잡아끌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킴벌리의 입에서 조그맣게 ‘애쓰홀!’ 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키미는 삼촌을 좋아한 적이 단 한번도 없는 조카이다. 그녀는 그 동안 아빠도 안 좋아했고. 삼촌도 안 좋아한 키미는 엄마보다는 이모를 더 좋아했다.챌리가 제 아빠의 앞을 가로막으며 제 삼촌을 계속 노려봤다. 챌리도 삼촌을 좋아하지 않는 조카이다. 그녀는 그 동안 학교에서 부모와 의논하라는 의제가 있으면 그 때나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그 두 처녀가 아빠란 이를 막 따르고 좋아한 적은 전혀 없었다. 어쩌면 단 한번도 없었다. 아빠라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며 그가 집에 있건없건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랬는데. 엉뚱하게도 그런 아빠를 이모와..

pt.1 16-8x158

뒷방에서 낮잠을 자던 킴벌리가 부수수한 얼굴로 일어나 가게로 나왔다.   “What’s going on? (무슨 일이야?)”   “엄마가 아프대.” 챌리가 대답해 줬다.   “Let her die! (죽으라 그래!)” 킴벌리가 콱 쏴부쳤다.운진은 챌리에게 눈짓으로 아무 말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킴벌리는 엄마 소리만 들어도 화를 냈다. 그토록 좋아하던 엄마에 대한 감정을 하루 아침에 바꿔 버린 킴벌리는 좀체 돌이키려 하질 않았다. 키미는 아비를 닮아서 제 스스로 돌아올 때까지 내버려둬야지 억지로 설득하려 하다가는 역효과를 낸다. 그런 키미가 이번에는 길게 가는 것 같다.복권 찍는 아주머니가 일곱시에 마감하고 퇴근했다.곧 이어 샌드위치 파는 아주머니도 청소를 끝내고 퇴근했다.      “우리 오늘 문 일찍..

pt.1 16-7x157

운진은 영호를 집 앞에 내려주었다.영란이 전화로 아프다고 말해서 운진은 영호를 구치소에서 만났던 것이다.   "누나가 아픈 모양이던데."   "집엔 아무도 없어, 그럼?"   영호가 마치 건달처럼 상을 썼다. "애들은?"   "내려라."   "씨발, 진짜 좆같이 구네?"   "이 자식이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얼른 내려!"   "하여튼 그렇게만 하슈, 응? 내, 씨발, 영아년하고 당신하고 딱 붙어 있는 거 보기만 해. 내, 씨발, 두 년놈을 한데 발라 버릴 테니."   "입만 살았구나. 덜 떨어진 놈. 내려!"영호가 벤즈 차에서 내려서는 문을 부서져라고 닫았다.   '나이를 헛먹은 놈!' 운진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앞마당 잔디에는 비닐 봉지에 넣어진 신문이 여러개 나뒹굴고 ..

pt.1 16-6x156

영란에 대한 조가의 괴롭힘은 그치지 않았다. 툭 하면 집으로 찾아왔다. 영란이 견디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해야 그제서야 마지 못 해서 갔다. 아니면, 전화를 쉬지 않고 걸어왔다. 건물에서 쫓겨날 때 길 가로 쏟아내진 물건들을 태반은 도둑 맞았는데 그 변상을 해 내라고 협박도 했다. 그 행위는 그 쪽 변호사에게 항의한 후에 수그러들었다.그 자는 찾아오거나 어쩌다 재수없이 마주칠 때마다 뭔가를 털어야 물러섰다. 최근엔 운진이 예전에 큰 맘 먹고 사준 금줄 손목시계를 강제로 빼았겼다.    영란이 의논 차 운진을 가게로 찾아갔는데 그 때 그가 마침 딸들과 저녁을 먹으러 나가던 길이라는 걸 알고도 선뜻 따라갈 염치나 용기가 안 났었다. 게다가 딸들이 보여준 냉정함이 그녀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했다. 특히 챌리가 ..

pt.1 16-5x155

영란의 친정에서는 큰딸의 비행을 다 알고 있었다. 영란은 친정에다가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만일 오서방이 전화하면 적당히 둘러대라고 엄포를 놨다. 그러던 중 영란이 한번쯤은 남편에게 정말 친정에 드나드는 것처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가게를 닫는 대로 저녁 먹으러 오라고 남편을 불렀던 것이다. 그 때는 영아를 시집 보내자는 의논이 구실이었다.그 날 친정엄마의 입에서 딸의 비행을 폭로하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암시적이 아닌 직설적으로.남편이란 놈이 첫번째 남자가 아니었으며, 결혼 후에도 이놈 저놈과 두루 통정하는 것을.그의 처갓집은 그래서 사위란 놈이 그 보복으로 처제를 욕보인 것이라고 나중에 큰딸과 난리를 쳤다...      영란은 회복실로 옮겨졌다. 운진은 아내가 안정된 얼굴로..

pt.1 16-4x154

영란은 그런 삶으로 해를 넘기더니 어느 날 낭패한 얼굴로 동생 영아에게 접근했다.   “얘, 내 멘스가 언제 언제지?” 언니의 그렇게 묻는 것을 보는 순간 영아는 형부를 속으로 욕했다. ‘스투핏(stupid) 같은 남자네! 무슨 결혼 생활이 저래!’    그 후 영아는 형부를 노골적으로 깔보기 시작했다. 가게에서 같이 일하면서 툭 하면 형부를 무안주었다. 같이 일하는 형록이 영아에게 때때로 싸가지가 있느니 없느니 했을 뿐 정작 형부는 내색도 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아는 언니가 집 안에 숨겨놓은 돈을 꺼내 세는 걸 봤다. 동생이 접근하자 영란이 허겁지겁 돈을 백에 쑤셔넣는 것이었다.   “언니, 뭔 돈을?”      “넌 몰라도 돼!” 영란이 쏴 부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안방 침대 머리..

pt.1 16-3x153

분만실로 들어선 운진은 말문이 막혔다. 영란은 온통 호스와 기계에 싸인 채 가랑이를 벌리고 침대 위에 뉘어져 있었다. 그녀의 활짝 벌어진 가랑이쪽에는 남자 의사 두 명이 무언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운진은 간호사 한 사람이 가운을 입혀 주는데 반응없이 아내의 축 늘어진 모습을 멍청히 바라다봤다. 그렇게 앙칼지고 남편을 속여가며 몸도 함부로 굴리고 돈도 모두 날려버린 여인이 지금 분만실 침대 위에 누워 자신에게 남들이 무얼 하는 지도 모르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 눈이 멀 정도로 환한 조명 아래 영란의 새하얀 허벅지가 양 옆으로 힘 없이 벌어져 있고, 그와 대조되게 새카만 그녀의 음모가 불빛에 반짝였다. 그것은 곧 피임을, 운진은 알아차렸다. 고무장갑을 낀 의사 한 명이 그녀의 질 입구에 매달린 물체를 조심..

pt.1 16-2x152

형록이 운진을 째려보며 픽픽 웃었다.    “씨발, 이혼할 여자 죽든말든 내버려두지 사서 고생이슈? 그러니, 씨발, 맨날 당했지! 에잇, 쪼다네.”형록이 그렇게 말하자 영아가 그를 아플 정도로 등을 때렸다.   “아야! 안 그래? 뭐 미련이 남았겠느냐구! 나 같으면, 씨발, 죽든지 말든지 그냥 내버려 둔다.” 물론 형록은 악의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영아가 이번엔 형록의 팔을 스웨터 위로 꼬집었다.챌리가 금새 눈물이 글썽해지며 형록을 노려봤다.그런데 킴벌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Unfortunately, that’s my dad. (불행하게도, 그게 내 아빠야.)”  형록이 챌리의 시선을 피하며 영아를 보란 듯이 감싸안았다. 영아가 형록의 팔을 풀고 운진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주머니에서 두껍게 반 접..

pt.1 16-1x151 영란의 남자들

영란의 남자들   영란은 기가 막혔다.이젠 남편마저 경어를 쓴다. 딸들과 남편을 합쳐 그들이 경어를 씀으로 해서 무척 멀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영란은 안간힘으로 붙잡고 있었던 지푸라기를 놓치고 물로 빠지는 연상을 했다. 몸이 뒤로 떨어지는데 한 때 같이 살던 남편이 내려다만 본다. 그의 얼굴이 멀어지면서 영란은 물 속으로 빠졌다. 부릅뜬 눈에 물 표면이 멀어져 갔다. 내가 이래 뵈도 수영에 자신 있었는데!이쯤이면 물을 잔뜩 먹고 죽어야 하는데 출렁거리는 물 표면이 점점 멀어지고, 영란은 차차 깊은 어두움 속으로 가라앉는 걸 느꼈다. 빛이 닿지 않는 심해로 빠지는 지 눈 앞이 캄캄해졌다...   가게에서 졸도한 영란은 저녁 늦게도 깨어나지 않았고 혈압이 자꾸 내려가 간호사가 계속 맥을 짚었다. 임신부가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