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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 남편 어디 갔느냐고 묻는 손님들한테, “He’s busy. (그는 바쁘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매일 같이 돌아가며 각종 세일즈맨들이 가게에 들이닥치는 것을 몰랐던 영란은 그들이 정중히 권하는 대로 모두 주문을 했다. 그리고 은행잔고를 알아보지도 못 하고 그들이 내미는 청구서마다 수표를 끊었다. 어쩌다 가끔 찍어본 복권을 정작 하루 종일 붙어보니 실수투성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고 줄에서 기다리다가 돌아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호는 계산대에 하루 종일 붙어서 한 손님 건너 몇불씩 훔쳤다. 그 날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벌써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영호는 누이가 복권 판매대에서 쩔절매든 지 말든 지 술칸 계산대만 잡았다.그 뿐이 아니었다. 그로서리칸에서 일하는 청년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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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지 사흘째, 운진은 영란에게서 전화가 없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내, 너, 그럴 줄 알았지! 이제 아예 존가 하는 새끼 데려다 놓지?’화요일 오후, 운진은 미리 전화해 놓은 변호사를 만나 이혼에 대한 상담을 의뢰하고, 가게에서 거래하는 은행을 찾아갔다. 그는 신원증명으로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잔고 이만불에서 만불을 현찰로 찾았다. 마침 마지막 손님이었는지, 은행원이 문을 걸어 잠궜다가 운진을 내보냈다.그 때 운진의 주머니에 든 셀폰이 울었다. 꺼내보니 가게번호가 스크린에 떠올랐다. 운진은 받을까말까 하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자기! 어디야, 자기!” 영란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였다.   “무슨 일로 전화했는데?”   “자기 나간 거야? 말도 없이?”   “새삼스럽게 무슨 뚱딴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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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이 쑤를 보고는 히히히 웃었다.그 매네저가 그녀를 원더 워먼이라고 부른 데에는 또 다른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었다.첫째 회사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쑤는 마지막까지 남지 절대 잘려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둘째 그녀가 곧 칼을 휘두르면 감원대상들은 그대로 다 잘려나갈 것이라는 것.셋째 그녀가 부사장 제프와 스캔들이 터진 바람에 은행장의 노여움을 사 현재는 마치 퇴기처럼 회사 제 2 빌딩에서 인사일이나 보고 있지만 알트가 그녀를 다시 불러들이면 옛날처럼 굉장한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것 등등으로 해서 그녀를 비꼬는 의미도 들었지만 잘 버텨 나간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게 부른 것이다.그러나 다른 이들이 그녀를 원더 워먼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마치 불사조처럼 다들 그녀는 죽었다 한 상황에서 회복되어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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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솔직히 설이가 부담되었다. 우선 그녀는 그녀에게 따라다니는 소문 때문에 설이가 걸린다.또 설이가 옛 생각을 자극한다고 모르는 사람인 척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그의 가족의 소식을 듣는다면 애써 지우려는 옛기억을 되살아 나게 할 것이다.  먼젓번에 운서언니와 그의 모친을 만나는 바람에 혼란이 오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의 모친이 찬물을 끼얹어 주는 바람에 냉정해질 수 있었다. 설이를 또 보면 걔들이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 데려갔던 일이 기억날 것이고, 그러면, 뱅글뱅글도는 기구를 탔다가 그가 어지럼증에 토했던...숙희는 그 옛날 한 에피소드가 기억나서 그만 복도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때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숙희는 애써 기억을 털어냈다.    ‘아, 한번 기억이 나기 시작하면 그것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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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제일 먼저 설이가 일을 잘 하고 있나 그것부터 알아봤다. 그렇게까지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의외로 얼마 만에 자리를 더 나은 데로 옮겼다고 듣게 되었다. 데이타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인정받았다고 들었다.   ‘제법이네? 운서언니는 공부는 많이 하셨어도 그리 빠릿빠릿하지는 않았는데…’숙희가 구내 식당으로 커피를 사러가는데, 설이가 파일을 두 팔로 한아름 안고 부지런히 라비를 가로 질러가는 게 발견됐다.    “얘, 설이야!” 숙희는 설이를 불러세웠다.설이가 숙희를 보고는 얼른 달려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쑤 아줌마!”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니?”   “이것들을 모두 파일해야해요.” 설이가 품에 안은 서류들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니? 나 커피 사러 가는데 너두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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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셐스로 온 운진은 모친에게 깨우지 말라 하고 소파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그는 저녁에 조카들이랑 외식을 했다. 남자조카애는 뭐가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했다.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 남자가 왔으니 말동무나 될 줄 알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여자조카 설이는 운진에게 벌써 시중을 잘 들었다. 음식점에서도 반찬을 이리저리 돌려주고 물도 떨어지기 전에 사람을 불러서 물컵을 채우게 했다.    “우리 설이는 나중에 시집가면 살림 너무 잘 하겠다.”삼촌의 그 말에 설이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이튿날 일요일도 운진은 오전 내내 잠만 잤다. 평생 밀린 잠을 한꺼번에 자버리는 듯 물만 마시고는 또 잤다. 정작 깨어보니 눈 앞이 어둑했다.    “엄마, 몇시야!” 운진 그가 몸만 돌려서 빈 공간에 대고 소리를 지르니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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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씨티에서 돌아 온 숙희는 입은 옷차림에 핸드백만 들고 집에서 내쫓겼다. 아니. 그녀는 가출을 감행했다. 그녀의 모친이 그 자와의 결혼얘기를 없던 일로 하던가 아니면 나가라는 호령을 했을 때 숙희는 나가는 걸로 선택했다. 그녀의 부친은 간곡히 말리고, 그녀의 모친이 그 때 남편더러도 당장 나가라고 등을 떠다 밀었다. 설마 제 까짓게 나가겠느냐, 나가라 하면 겁을 먹고 잘못했다고 빌 줄 알았는데. 숙희는 당당히 나가죠! 했다. 그것에 화가 난 그녀의 모친이 숙희의 기를 죽이려고 지금 당장 그대로 나가라고 했을 때, 숙희는 들어서던 그 차림 그대로 돌아섰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출을 택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내쫓겼다. 그리고 그녀는 부친이 그 때 에잇 하고 나간 것이 두 분의 이혼으로 번진 것을 전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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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의 모친은 인사를 하지도 않고, 인사를 받지도 않았다. 되려 딸의 손목을 비틀어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감생신! 어디를 함부로 넘봐! 가자!” 매자는 딸의 손목을 사정없이 잡아 끌었다.   “뭐가 어째!”    운진의 모친도 발끈해서 일어섰다. “그 에미에 그 딸년이구만! 어디서 못 배쳐 먹은 년이 어디 남자의 몸에 손찌검을 해! 어쩐지이! 싸가지 없는 에미니까 저런 싸가지 없는 딸년이 나왔지! 못된 년 같으니라구! 에이, 쌍년!”남편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    "그리고, 뭐? 영감생신? 영감생신이 아니라 언감생심이야, 이 무식아!" 정인이 그 말 끝에 웃음을 터뜨렸다.운진은 테이블에 머리를 팔로 고이고 치솟아 오르는 화를 참느라 어금니를 질근질근 씹었다. 숙희와의 결혼은 둘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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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걷다 보니 같은 곳은 아니겠지만 골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벌판을 향하고 섰다.   “근데요, 이렇게 골프 핑게로 빠져나올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어느 분 아이디언데요?”   “아빠요. 호호호!”   “숙희씨가 부탁하니까 순순히 들어주세요?”   “음, 아뇨. 아빠랑 한날 술 한잔 하면서, 진짜로 운진씨를 결혼상대자로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진진하게 말씀드리고 도와 달라고 애원했어요.”   “그랬더니 골프 치러 가자고 하셨나 보죠?”   “아니죠. 저를 여러가지로 시험해 보시고 제가 어떤 어려움도 버텨낼 각오가 돼있다는 걸 아시고 일단은 운진씨를 보시겠다 하셨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나올 수 있어야하니까, 아빠가 꽤를 내셨죠.”   “와아. 무슨 스릴영화..

pt.1 11-1x101 산 너머 산

산 너머 산   운진은 걸을 수 있을 만한 장소가 나타나자 추렄을 세웠다.둘이 동시에 내리고, 숙희가 운진의 팔 하나를 힘주어 잡았다. "운동 좀 하세요. 남자 팔이 이게 뭐예요."   "..." 운진은 숙희에게 붙잡힌 제 팔을 내려다봤다.   "또 삐치는 거예요?"   "알았어요."   "네!"   숙희가 웬일로 그의 팔을 흔들며 웃었다. "그럴 땐 시원시원하시네요."   “근데 어려움을 이겨 나갈 자신 있으세요? 예를 들어, 만일의 경우, 숙희씨의 어머님이 계속 반대하시면 어떻게 하실래요.”   “엄만 한번 틀어지면 좀처럼 맘을 바꾸진 않는데, 저두 그게 많이 걱정돼요. 근데, 지금 금방 하신 말씀에 어패가 있네요?”   “어려움을 이겨 나갈 자신 있으시냐고 물은 거요?”   “네.”   “만일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