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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의 왜 거짓말 했느냐는 마치 추궁하듯한 물음에 설이의 대답은 이랬다.   “I was supposed to. To whoever asks about my uncle. (나는 그랬어야 했어요. 삼촌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한테는 누구든.)”   “Why?”   “I was told to. (누가 시켰어요.)”   “누가?”   “할머니, 요.”숙희는 지나가는 사람한테마다 인사를 답하느라 설이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직 살아계시구나?”   “네?”   “Your grandmother. She's still alive. (네 할머니. 그녀는 아직 살아계셔.)”   “아, 네.”   “What about your grandfather? (할아버지는 어떻구?)”설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가자!” 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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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는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안 왔다. 숙희는 미쉘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강습생들이 집으로 돌아갔음을 확인한 후 퇴근 차비를 차렸다.    ‘맹랑하네?’ 그녀는 속으로 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씨름한 서류들을 한데 모아 들고 방을 나섰다. 로레인이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알아차리고 숙희에게서 서류들을 받았다. “Have a good time, Sue! (좋은 시간 가져, 쑤!)”     “I’ll try! (노력할께!)” 숙희는 옆칸 매리안의 방을 들여다 봤다. 매리앤은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숙희는 매리앤의 머리 너머 벽시계를 가리키며 입으로만 벙긋거려서, ‘It’s Friday!’ 하고, 말했다. 매리앤이 엄지 손가락 하나를 치켜 세워 보였다. 숙희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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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설이를 제 방으로 데려와서 책상 맞은 편 의자에 앉히고는 방문을 닫았다.     “How’s your mom? (엄마가 어떠시다고?)” 숙희는 재차 물었다.설이가 눈을 피해 잠시 머뭇하다가, “She’s home now. (엄마는 지금 집에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숙희는 그 말에서 어떤 뉘앙스를 느끼고 무슨 뜻인가 물으려다가 아이가 초면이라 아무래도 경계를 할 것 같아 그만두고, “Do you still live in Pennsville? (너 아직도 펜스빌에 살어?)” 하고, 물었다.   펜스빌은 미 메릴랜드 주(州) 북쪽 지방에 위치한 한 동네의 이름이다.설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고개가 숙여졌다.숙희는 더 이상 묻는 게 안 좋을 것 같아 대신 책상 위의 사진틀을 손으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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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머리 끝에서부터 짝 밀려 내려오는 전율을 참으며 로레인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Are you alright? (너 괜찮어?)” 로레인이 걱정스레 물었다.숙희는 마음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Is she in today? (그녀 오늘 들어왔어?)”   “Who? Who’s in? (누구? 누구 들어왔냐구?)”   “This girl. No, I mean, new people. (이 여자애. 아니, 내 말 뜻은 새 사람들.)”   “Of course! Let’s see... (물론이지! 어디 보자아...)”    로레인이 그녀 책상 맞은 편 벽에 핀으로 꽂힌 교육시간표를 들여다봤다. “Today, they are in Excel class, Sue. Room 104. (오늘, 그들은 엑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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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가 숙희가 내릴 4층을 누르고 자신이 내릴 8층을 눌렀다. 손가락 여러개가 3층, 5층, 6층을 누르고 엘레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프가 숙희에게 말을 걸었다. “For how long? (얼맛동안이나?)”   “Ten days. Actually, weekdays plus weekends. (십일간. 사실은, 오일에 주말을 보태서.)”   “Very nice! Have fun! (아주 좋네! 재미 많이 봐요!)”      “땡쓰!” 하며, 숙희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니 그녀의 볼에 깊은 보조개가 피었다. 그녀는 나이 마흔여덟살 치고도 아직 주름이 하나도 없다. 곱게 늙는 상이다. 애를 안 낳아 본 몸매는 아직 풍만하면서 그 선이 곱다.엘레베이터가 3층에서 서니 남자 하나와 여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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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 식당에는 많은 사원들이 카운터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숙희가 들어서자 하나같이들 어-오(Uh-oh) 하고 엄살을 떨었다. 인사과의 VP(Vice President)가 나타났으니 시간을 횡령한다고 뭐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숙희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려 쉬이! 하고는 커피 판매대로 갔다. 십년을 넘게 까페떼리아에서 일해온다는 베키라는 중년 나이의 흑인 여자가  “Hi, Sue!” 하고, 숙희에게 인사를 던져왔다. 숙희는 “하이!” 하고, 맞인사를 하고는 손가락으로 중간 사이즈 컵을 가리켰다.   “As usual? (늘 같은 걸로?)” 베키가 물었다.   “애즈 유주얼!” 대답한 숙희는 커피 머쉰 옆에 진열된 케잌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그녀는 치즈 데니시란 케잌과 파운드케잌울 집어들고 베키..

pt.1 1-1x001 2000년 여름의 끝자락

2000년 여름의 끝자락   숙희(韓叔姬)는 주말부터 시작하는 휴가를 하루 앞둔 금요일 이날도 일찍 출근했다. 그녀는 오히려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출근했다. 휴가 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이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을 밀린 서류 하나 없이 깨끗이 비워놔야 휴가를 가든 집에서 쉬든 마음이 편하다. 말단 사원까지 휴가를 다 보내고 나서 끝으로 그녀에게 차례가 왔는데,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그녀가 사는 미 동부지역 해안은 8월 하순이 지나면 이미 바닷물이 차가워지기 시작하고, 햇볕만 대낮에 따갑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는 바닷가는 서서히 폐장을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 노동절날인 9월 첫째 월요일이면 공식적으로 여름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닷가의 그 수 많던 피서인파가 9월의 첫 ..

19-10x190 (끝회)

운진은 숙희 앞을 가로막고 서서 한씨와 대치했다.한씨는 말로만 요놈의 새끼 요놈의 새끼를 연발하며 칠 기회를 엿보기만 하는데. 평소 어수룩하게 보았던 미스타 오란 청년에게서 빈 틈이 안 보인다.한씨는 스텦만 밟는 척 하며 요리조리 겨누기만 하는데. 미스타 오란 자가 덤비면 그 위력이 대단한 것 같은 위험이 보인다. 그리고 한 중령은 아니, 한 하사는 옛날에 오 병장에게 맞아본 기억이 있다.숙희는 그러는 동안 옷을 가다듬고 머리를 훑었다.그녀의 손에 뜯기고 남은 머리칼들이 한웅큼 쥐어졌다.   "아, 뭐 해요! 얼른 저 숙희년 안 끌어내고!"   공희모가 악을 쓴다. "그 왕년에 군대 실력 다 어디 가고!"그 바람에 한씨가 무턱대고 발길질을 하려 했는데.운진이 한손으로는 숙희를 슬쩍 방어하며 한손으로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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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숙희는 전날보다 조금 더 일찍 퇴근해서 운진에게 저녁을 사자고 화원 앞으로 달려왔는데.화원 앞 주차장에서 식구와 맞닥뜨려졌다.숙희는 얼떨결에 부친에게 혼다 차의 열쇠를 빼앗겼다.공희모가 숙희의 저고리를 움켜 잡았다. "이년 여기 있을 줄 내 알았지! 가자, 이년아!"숙희는 그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뒤로 물러서다가 저고리의 어깨선이 투둑 뜯어졌다.   아!   이 저고리는 운진씨한테서 선물로 받은 건데!숙희는 행여 그의 추렄이 나타나나 뒤를 자꾸 돌아다봤다. "이거 놓으세요."   "잔말 말고 가자." 한씨도 거들어서 딸의 다른 손을 잡으려 했다.숙희는 옷이 더 뜯어지며 공희모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이 이들이 가게에 있을 시간에.숙희는 부친이 차 열쇠를 바지주머니에 넣는 것을 봤다. "차 키 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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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은 두 사람의 꿈대로 계획대로 돌아가지는 앉았다.공희모가 그 장로교회로 찾아가서는 온 교회가 떠나가도록 난리굿을 피웠다.운진이 배달일을 마치고 화원으로 돌아오니, 그의 부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뭔 일이 또 벌어졌구만!운진은 불길한 예감을 애써 감추며 추렄에서 내렸다. "엄마. 아부지."그는 숙희가 퇴근해서 오기 전에 부모와 얘기를 끝내자고 서둘렀다.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네가 동거하는 여자는 애비를 정확히 모른단다.   걔 엄마를 한씨가 만나서는 불쌍해서 거둬 키워준 여자애란다.   "네가 오씨 집안의 삼대 독자인데, 그런 여자를 맞아 들여서야 되겠니?"   그의 모친은 차근차근한 서울 말씨로 아들을 타이른다. "이제 막 정이 들려고 할 때 일찌감치 마음 접고 걔는 돌려 보내라."그의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