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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영란이 남편의 방으로 내려와서 부부는 실로 몇년 만에 사랑을 불태웠다. 운진도 마음의 그물을 걷고 아내를 탐했다. 영란은 오랫만에 하니까 처음 할 때처럼 질이 아프다고 하면서 남편의 가슴을 꼬집었다. 운진은 그냥 억억하고 웃기만 했다.    그는 오션 씨티에서 숙희를 안 만난 게 천만 다행이었다. 만일 만난다면 어떻게 하리라는 계획도 없었다. 조카의 말만 듣고 즉흥적으로 달려간 바다행이었다. 만일 거기서 숙희랑 만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아내는 정말로 큰 일을 저지를 사람이다. 아무도 그녀를 못말린다. 친정부모도. 동생들도. 남편만 빼고.    영란은 남편의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운진은 새삼스럽게 아내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 봤다. 아내의 자는 얼굴이 참 평온해 보였다.    ‘그래. 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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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차가 빨간불에서 서는 김에 운전대에서 손을 떼었다.   "만일 그게 내가 몰래 숨겨 놓은 사진인데, 당신 말마따나 들켰으면, 당신 생각에 내가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은데? 나를 잘 안다니까 말해줄 수 있겠네.”   “찔렸으니까 지랄하고 난리 폈겠지, 뭐. 그 승질머리에.”   “그랬을 거 같애?”   “뻔하지. 오히려 더 잘 했다고 지랄난리 치겠지. 왜 남의 물건을 내 허락없이 뒤지느냐. 안 그랬겠어?”   “노(No). 이래서 당신은 날 안다고 해도 결국은 모르는 거야.”   “흥!”   “만일 당신 말처럼 내가 사진을 숨겨 왔다치자구. 그럼, 내가 들키게 숨겨 놨을거 같어?”   “그래서 뭐야. 어디다가 잘 감춰놓은 건 안 들킨단 말이지?”   “이 사람아, 그게 그런 뜻인가? 그나저나 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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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 남동생과 여동생에게 가게를 닫으라고 시키고 남편과 실로 몇년 만의 저녁 나들이를 했다. 저녁도 근사한 데 가서 와인을 더불어 먹고 비 오는 밤 거리를 차로 돌아다녔다.    신혼 때는 바람 쐬러 나갈 일이 참 많았었다. 바람이 불면 그야말로 바람쐬러, 하늘이 맑으면 밤하늘의 별을 보러 공원에 갔다가 경찰한테 훈계도 듣고, 비가 오면 인적이 끊어져 조용한 거리를 밤새 차를 몰고 다녔었다. 그래도 그 때는 피로를 몰랐었다. 영란은 운전하는 남편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녀로서는 아주 아주 오랫만에 하는 짓이다.그러면 그는 남은 손을 대충 둘렀다.    “나 사랑 안 하지, 그치.” 영란은 옛날처럼 어리광을 부렸다.    “그런 부정적인 질문은 단정적이라는 것 쯤은 알텐데?” 운진이 눈썹을 치켜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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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둘은 데이트가 시작됐는데...그 후 운진은 그 짬뽕 양보에 대해 칭찬을 바랬는데, 도리어 숙희에게서 핀찬을 들었다.   "먼저 남들 앞에서 표시를 내요? 우리가 안 사이는 아니었지만."   "제가 표시를 냈나요? 내 딴에는 보통처럼 군다고 했는데."   "사람들한테 나 짬뽕 좋아하는 것처럼 표시한 거잖아요."   "에이. 그 사람들이 한숙희씨 짬뽕 좋아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시킨 건데."   "그럼, 오운진씬 내가 짬뽕 좋아하는 거 알고 미리 시킨 거 아니었어요?"   "아, 이럴 때 알고 있었다고 해서 점수 따는 건데."   "그냥 가만이나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텐데 꼭 내색을 해서 점수를 잃죠?"   "아이. 짬뽕 좋아하실 거 같더라니."   "Too late!"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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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자리에 앉자마자 손목시계부터 들여다 봤다. 그녀는 아무래도 집에다 밥 먹고 들어간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자리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운진이란 사내가 맞은 편 자리의 남자와 얘기하다가 그녀가 일어서는 걸 보고 제 바지주머니에다 손을 넣고는 동전을 꺼내는 것이었다.   "이 집은 공중전화가 저기 화장실로 가는 복도에 있어요."그의 그 말에 숙희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동전을 가졌다. 이 사람이 마치 내 생각을 읽어?그녀는 마침 동전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공희모에게 먹고 들어간다고 공중전화로 말했는데 부친이 의논할 게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그것도 여섯시까지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음식이 지금이라도 나와서 몇분 만에 빨리 먹더라도 집에까지 이십분이 걸리니까 모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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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찬양 예배가 성공적으로 치뤄진 것을 축하할 겸 또 고생한 것을 격려한다고 어떤 장로 한 사람이 성가대원 중 젊은 층과 청년회원을 교회 근처에 자리 잡은 어떤 한국 음식점으로 초대했다. 그 장로란 이는 아주 큰 리커 스토어를 경영하는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삼십명도 넘는 인원을 모두 먹이려면 일인당 평균 십불어치씩만 시킨다 해도 삼백불이 넘는데 이민가정 웬만한 부자도 밥 한끼에 삼백불은 꽤 큰 돈이었다. 게다가 마실 거라든지 애피타이저라든지 등등이 추가되면...   음식점은 미리 예약을 받아 놓은 고로 테이블들을 한쪽으로 길게 늘여 놓고 의자들을 한 테이블에 둘씩 나란히 앉도록 사십석을 마련했다. 청년회원 중 성가대원들은 들어서는대로 웨이츠레스의 안내를 받아 안에서 부터 ..

pt.1 3-1x021 20년의 회상

20년의 회상   여전도회방은 책상 하나가 창문 가에 놓여 있고 의자 서너개, 그리고 다 낡은 가죽 소파가 입구에 가까이 있는 게 다였다. 숙희의 눈에 전화기가 안 보였다.   ‘여기서 뭘 어쩌라는 거야! 아무 것도 없는데? 차라리 화장실로 가는 거였다.’ 그녀가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방문이 밖에서 열렸다. 숙희는 아! 하고 놀랬다. 문을 연 사람은 어떤 여자였다. 그녀는 숙희가 아는 여자였다.    “언니가 어떻게...? 안녕하세요!” 숙희는 그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응. 우리 동생이 가 보라구 해서.”    그 여자가 옷 하나를 내밀었다. 그 옷은 얇은 봄철 스웨터였다. “우선 이걸루 갈아 입어. 젖은 옷 입고 있으면 감기 걸려.”   “근데, 스웨터만 어떻게. 헤, 참. 다 비칠텐데요…”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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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기억 속의 그 날도 비가 억수로 왔다. 아마도 금요일이었다. 그랬다. 이틀 후에 있을 부활절 찬양 준비 때문에 주말에도 남녀 성가대원들은 직장이나 학교를 마치고 저녁에 교회로 모였다. 그 날이 최종 연습이라 모두 모여야 했다.메조 소프라노에 소속된 숙희는 그날 따라 늦게 퇴근이 되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빵을 먹으며 부랴부랴 교회로 오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교회 주차장에 세우고 내리는데 한손엔 백을 잡고 또 한손은 마시던 콜라를 마져 마시고 악보를 챙기랴 책으로 비를 가리랴 허둥대다가 손에 든 것들이 몽땅 떨어졌다. 악보가 날아가 빗물에 담겨지고 백이 물에 떨어지고 손에는 다아 마시고 빈 콜라 컵만 남았다. 그녀가 치마가 차 문에 끼어 몸을 돌리지도 못하고 쩔절매는데 마침 추럭 한대가 주차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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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어쩌면 아내의 반응을 보려고 외박을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내의 반응이 별로이면 정말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영란은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은 어쩌면 사진의 여자와 전초전으로 만났을지도 모른다.그래서 일단 길을 터놓고 부부간에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그의 입에서 나올 마지막 말은 헤어지자는 한마디일 것이다.    신혼 때는 그래도 잘 해주고 다정다감했던 남편인데 그걸 다른 여자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사진건 보다도 더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게다가 남편이 다른 여자와 키쓰를 하고 입으로 온 몸을 애무하고 셐스를 한다고 상상하니, 아냐 아냐 하고, 영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운진은 아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훌렁훌렁 벗고 팬티와 속셔츠를 갈아 입었다. 영란은 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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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일요일이라 문 닫은 자신의 술가게에 밤 늦게 도착한 운진은 우선 맥주부터 깠다. 그는 가게불은 켜지 않은 채 뒷방만 켜고 병맥주를 수 없이 까고는 사무실 의자들을 연결해 놓고 그리고 그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루 종일 굶은 뱃속에 들어간 맥주는 금새 취기가 오르게 했다.    ‘씨발. 이대로 그냥 탁 죽었으면 좋겠다!’   숙희는 월요일 아침, 즉 노동절날 아침, 일찍부터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서 침대 머릿맡의 시계를 보니 7시다. 전화는 육로 승객 서비스 회사에서였다.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 내쇼널 공항이 태풍으로 일시 폐쇄됐기 때문에 아침 9시 비행기가 안 뜨고 대신 밴 버스로 아직 태풍의 영향을 받지않는 펜실배니아 주의 필라델피아 시로 가서 거기서 낮 12시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