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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특별 찬양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다.최영란의 꾀꼬리 같은 쏘프라노 독창과 후렴에서 합창단의 화음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저리저리하게 만들었다. 특히 베이스와 테너 파트의 우렁찬 화음은 마치 그 곡이 이들을 위해 씌여진 양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포효가 본당 안을 메아리쳤다.지휘자는 머리를 연신 흔들며 미친 사람처럼 지휘봉을 휘둘렀다. 그의 멋진 장발이 마구 춤추며 땀을 사방으로 마치 불꽃놀이의 광경처럼 뿌려댔다.   어 쓰릴 어브 호프 더 위어리 월드 리조이씨스   뽀(for) 욘더 브레이크스 어 뉴 글로리어스 몰은(morn)      뽈(fall) 온 유어 니이즈 오 히어 디 앤젤스 보이씨스   오 나이트 디바인 오 나이트 웬 크라이스트 워스 볼은(born)두번째 반복되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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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란의 쏘프라노 독창에 맞춰 다른 파트들의 화음이 잇따른다. 그러나 솔직히 멀리서 들어도 각 파트들이 갈피를 못 잡는다.운진은 계단을 뛰어 오르며 병선이가 없나 했다.운진은 연습실로 헐레벌떡 뛰어들었다.성가대 노래가 뚝 끊기고, 피아노 반주는 한 박자 후에 멎었다.모든 눈들이 운진에게 몰렸다.   안녕하십니까.운진은 고개를 이사람 저사람에게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성가대장 최 장로가 지휘자 선생을 봤다.지휘자가 운진에게 턱짓으로 들어가라고 했다.최 장로가 운진을 손가락을 까딱해서 주의를 이끌었다. 사촌동생은?운진은 주위를 둘러보며 전화기를 찾았다.   그래서 곧 병선이도 왔다.그 동안 친교실에서 커피를 나누던 성가대원들이 연습실로 다시 모였다.지휘자가 굳은 얼굴 표정을 조금 폈다.그가 지휘봉으로 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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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의 부모가 운진의 의복을 악다구니로 찢어 발기려 든다.운진은 묵묵히 땅속으로 내려가는 관을 본다. 거짓말이거나 꿈이거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관 속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있고, 영진네에게 속는 것 같다.관이 바닥에 완전히 내려지고, 천이 당겨져 올라왔다.수영의 손에 의해 첫번째로 흙이 흩뿌려졌다.그것까지 보고 운진은 양 쪽에서 앙다구니로 식식거리는 김씨부부를 슬쩍 밀쳤다.부부가 슬쩍 밀렸는데도 두 팔을 버둥대다가 흙더미 위에 주저앉았다.운진은 수영을 노려봤다. 수영이 묵묵히 서서 삽을 흙에다 찍는다.운진은 그에게 손을 들어보이고 지나쳤다. "잘 사시요?"순간.운진의 팔 하나가 허공을 갈랐다.턱!운진의 손에 몽둥이가 잡혔다. 아니. 삽자루가 잡혔다.운진은 삽을 천천히 내려 놓았다.   "인연이 있으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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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운진과 영진은 소파를 끌어다 드럼통의 숯불을 향해 돌려놓고 나란히 앉았다.영진은 소파에다 다리를 올리고 담요로 꽁꽁 말았다. 그리고 코트는 벗어서 어깨에 걸쳤다.찬바람이 혹간씩 훅 불어 들어오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 없다.밤하늘의 여광으로 보이는 화원의 딋뜰은 매끈한 백색 벌판이다.   "날씨가 계속 이러면 성가대 연습 못 가겠다, 그쵸."   그녀가 침묵을 깼다. "운진씨 찬양하시는 거 꼭 보고 싶은데."   "오. 그 쪽 교회도 뭐 해서 그거 보느라 우리 교회 못 와요?"   "몰라요. 하겠죠, 뭐."   "우리 교회로 보러 와요."   "그러고 싶은데... 그냥. 어쩌면.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운진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해짐을 느꼈다. 그는 군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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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영진네 부모에게서는 전화가 한번 더 왔다. 그녀의 부모도 결국 가게에서 지샌다고.   "나 오늘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거, 평생 안 잊을 거야!" 그녀가 그 말을 끝으로 남의 집 수화기를 또 내동댕아쳤다.그래 놓고 그녀는 그제서야 집 주인의 눈치를 슬쩍 봤다.운진은 수화기를 제 자리에 걸었다.영진은 발을 담요 밖으로 내보내고 꼼지락해봤다. "왜 발이 간지럽죠?"   "그래요? 어디 좀 봅시다."   운진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발만 줘봐요."   "왜요? 싫어요!"   "봅시다."   "싫다니까요? 근데, 제 양말이 왜 벗겨져 있어요?"   "얼은 발을 녹이려니 벗겨야 했죠."   "누가요!"   "제가 벗겼죠."운진의 그 대답에 영진은 제 몸을 둘러봤다. "또요."   "다른 덴 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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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화원 실내는 드럼통에서 타는 장작불로 인해 훈훈하다. 운진은 여름에 화원에서 쓰는 선풍기를 그 드럼통을 향해 틀어놓고는 연기가 안 들어오기를 바란다.영진은 소파에 뉘여진 채 담요로 꽁꽁 싸매어져 있다. 그녀의 두 손은 담요 속에 들었고, 두 발은 우습게도 수건으로 싸매여져 있다.   데릴러 오실 수 있으면 오십시요.    지금으로써는 몸을 데워주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거, 군대에서 배웠습니다.   제가 거짓말 하나 안 하나는 따님이 깨어나면 말씀드리겠지요.    저로서는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했습니다.운진이 끝까지 침착하게 통화를 마치는데.곁에서 지켜보는 병선이가 미치고 돌아가시려 한다. 진짜 진짜 하면서.   "와아! 성은 그걸 끝끝내 참으면서 다 말해? 좆 같은 것들이네."   "끝..

12-1x111 운진의 환상의 그 시발점

운진의 환상의 그 시발점   병선이 화원 앞문을 발로 차듯 열어젖혔다.운진이 영진을 안아 들고 들어섰다. "야! 목욕탕에 물 좀 미지근하게 틀어!"    "알았어, 성!" 병선이 작업화를 신은 채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운진은 영진을 소파에 뉘이고는 그제서야 앞문을 닫으러 달려갔다.안에서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야! 뜨거우면 안 돼! 응?"   "알았어, 성!"안에서 수돗꼭지를 틀었다 잠갔다 하는 소리가 났다.운진은 영진의 구두를 살살 벗겼다. 그리고 그녀의 발을 만져봤다. 그녀의 조그만 발은 딱딱하고 숫제 얼음이다.   에잇! 망할 놈의 집구석!   길이 얼어서 천천히 움직인다고 했건만, 무슨 일 나나!병선이 나왔다. "성..."   "야. 같이 좀 들자."   "알았어, 성!"두 남자는 축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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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욬 애브뉴는 오후 세시경에 뚫렸다.그 새 수키등은 하워드가 걸어 나가서 사 온 패스트푸드로 요기를 떼웠다.하워드가 다음날 아침은 일기예보를 잘 보고 각자 결정하는 대로 출근하라고 일렀다.수키는 차 위에 덮힌 얼음을 주먹으로 대충 깨내고 문을 열었다.그녀의 혼다 승용차는 가볍고 앞바퀴로 움직이기 때문에 힘 안 들이고 갈 수 있었다.   운진은 이제나 저제나 영진에게서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 올래나 해서 꼼짝을 못했다.그는 화장실에 가도 문을 열어놓았다.기다리고.기다리고.기다리다가 그는 다섯시쯤에 영진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왔느냐니요? 오형네 안 있고?"   수영이 금시초문이라고 펄쩍 뛰었다. "지금 주지사가 비상을 내려서 절대 밖에 나오지 말라는 판국에 우리 영진이를 보냈단 말요?"   "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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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수화기를 주워서 벽 전화기에 걸었다.그 전화기는 즉시 벨소리를 냈다.운진은 직감적으로 누구다 하고 수화기를 벗겨서 영진에게 내밀었다.영진이 화가 몹시 난 얼굴을 하고 식식거리면서 수화기를 빼앗았다.    "여보세요?"   영진이 하 하며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끝끝내 나더러 집으로 가라구."영진의 두 눈에 금새 슬픈 빛이 감돌았다.   "단. 나 집에 가기는 가는데, 엄마. 나중에 나한테 말 걸지 마. 알았지, 엄마."   영진이 끊으려다가 아 하고 다시 잡았다. "이 번호를 어떻게 알았어?"영진이 운진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통화를 끝냈다.운진은 그녀에게서 수화기를 받아 걸었다.   "전화 걸려온 데로 바로 전화 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녜. 스타 육십 구를 누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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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길이 완전 셧다운 된 것을 카 래디오를 틀고 알았다.뉴 욬 애브뉴가 앞뒤로 막힌 것이다.앞으로는 캐피탈 벨트웨이가 사고로 막혔고, 뒤로는 인디펜던트 애브뉴가 막혔다.   '허! 여기서 하루 종일 묶이나.'숙희는 자동차의 개스 게이지부터 봤다. 바늘은 사분의 일에 가 있다.숙희는 아침에 휘발유를 채울 걸 하고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나.'그녀는 반대편 길로 유-턴 해서 은행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자꾸 했다.차가 조금만 더 나가도 그 챈스를 놓친다.그녀는 마침 반대편에서 차가 한대도 안 오는 것에 의아해 하는 것도 잠시 차의 핸들을 왼쪽으로 과감하게 틀었다. 그리고 개스 페달을 밟으니 앞 바퀴로 구르는 혼다 차는 힘 하나 안 들이고 유-턴을 해냈다.그녀는 저 앞에 보이는 은행 건물에 대고 고개를 저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