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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화원에서 학교로 바로 간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모친에게 가서 밥 달래 먹고 화원으로 곧장 온다. 그는 잠도 거기서 잔다.   "아니, 아파트는 뒀다 뭐하고?" 그의 모친이 물었다.    책망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물었다.   사실 아들이 좀 엉뚱하기는 하다.   "그 놈의 아파트는 조금만 늦게 들어가면 차 댈 데가 없어서 길 가에다 대야 해. 게다가 비나 와 봐. 난 원래 우산 안 갖고 다니니 완전 젖지."이 날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숙희는 비록 열발짝 걸으면 아파트 문에 들어서지만 우산을 펼쳤다. 그리고 그녀는 무의식 중의 습관처럼 억제 못하고 뒤를 돌아다 봤다.오늘도 그 짙은 색의 추렄은 안 들어올 모양이다.   이사갔나?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사하는 추렄이나 짐 실어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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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지나가는 말처럼 운진이 말했다.단풍 구경 한번 가자고. 영진은 등하교 할 때마다 나뭇잎들의 색이 변해가는 것을 보며 이제나저제나 그에게서 연락이 오려나 기다린다. 그녀가 또 먼저 찾아갈 수도 있는데, 이번엔 남자니까 찾아오면 안 되나 하는 중이다.자존심이 남보다 유달리 강한 그녀인지라 또 선뜻 나서기가 그렇다.먼젓번에는 그걸 꾹 참고 그의 거처로 갔다가 다른 얘기만 실컷 하고 와줬는데.   '설마 진희 만나는 건 아니겠지?'   '나한테 절대 안 만난다고 약속했는데!'영진은 결국 오빠에게 본심을 들켰다. "오빠... 미스타 오하고 아무 약속 없어?"   "오형... 지금 열심히 공부해."   "아아, 참!..." 영진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너무 놀았더니 잘 하면 퇴학 당한다고."   "나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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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를 너무 잘 하셔요.   성가대가 아주 잘 살아나고, 듣는 우리는 은혜를 아주 많이 받는답니다.   여인네가 향수도 아주 비쌀 것 같은 종류를 뿌리는지 냄새도 황홀하다. 게다가 여인네가 웃으면 양볼에 보조개가 아주 깊숙히 패인다.    "오래오래 계셔서 늘 좋은 찬양 부탁해도 되겠죠? 오늘은 이런 말씀 드리려고 일부러 올라왔어요."운진은 몸 둘 바를 모르는 자처럼 녜 녜 거리며 절절매었다. 그는 그 여인의 향수 냄새와 요염한 미소와 작은 키에 비해 잘 빠진 몸매를 어찌 감당 못하고 그저 쥐구멍만 찾았다.    "고맙습니다."   "또 뵈어요? 안녕히 가세요?" 여인이 상반신을 깊숙히 숙여서 인사를 한다.   "녜, 녜!"운진도 상반신을 구부려서 인사하다가 그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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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과 숙희는 서로 마주보는 아파트 건물에서 살지만 좀체 만나지지않는다.운진은 일찍 등교하기 때문에 숙희가 아파트를 나서는 여덟시 경에는 당연히 못 만난다.그리고 운진은 학교에서 바로 오는 법이 없기 때문에 네시면 퇴근해서 방에 틀어박히는 숙희와 마주칠 일이 없다. 그리고 숙희는 10월 들어 해가 그 각도를 바꾸면서 저녁 빛을 베란다로 쏘는 바람에 늘 커튼으로 열기를 막아 놓는다. 아니면, 집안에 들어섰다가 그 후끈한 열기에 숨이 막힌다.그녀가 그의 집에 있고 없음을 아는 것은 오직 우연히라도, 그러니까 의도적인 우연으로 커튼을 만지다가 짙은 색의 추렄이 보이면 아 집에 있네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은 운진도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마찬가지.그도 어쩌다 하늘색 혼다 승용차를 보면 아 그 여자 차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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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은 얼떨결에 따라 들어와 놓고는 걱정한다.   "어르신들 안 계세요?" 그녀는 안을 조심히 둘러봤다.운진은 부엌 스토브에다 물을 올려놓고 나왔다. "삼촌네 귀국하셔서 가 계시고 여긴 저 혼자예요."   "여기, 미스타 오 혼자세요?"   "녜."   "아아..." 그제서야 영진이 소파에 가서 앉았다.   "저, 라면 할 건데... 라면 같은 거 잡수세요?"   "가끔은... 먹어요. 라면은 진희가 킬런데. 아! 내가 왜 진희 얘길 하지?"   "요즘 진희씨 안 만나시죠?"   "진희는 요즘... 미스타 오 사촌이랑... 맨날 붙어 다니구."   "어? 말이 이상하다? 혹시 질투해요?"   "네에? 아니예요! 저 진희 질투 안 해요!"   "오, 난 또..."   "미스타 오, 진희랑 완전 끝난 거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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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그 남자가 여기 아파트에 살고 있구나 하고 괜히 신경쓰인다.좀 싸가지나?내가 손 흔드는 걸 못 봤나?가게에서는 싹싹하게 굴길래 좀... 그랬는데, 이제 보니 되게 건방지네?숙희는 혼자 있는 아파트라 맘 놓고 옷을 훌훌 벗었다.내가 이걸 하고 싶어서 얼마나 참았는데!고모네는 내 방이 따로 있었어서 자주 이랬는데!   그녀는 욕실 문에 들어서며 이미 알몸이다. 오늘 욕조에 들어가서 때 좀 불리자!그녀는 그 날 욕조 안에 한참 들어가 있다가 온 몸을 북북 문질렀다.   "아, 시원해! 날아갈 것만 같다!"그녀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맨몸에는 긴 타올을 감고 베란다 문 앞으로 갔다. 거기에서는 건너편 아파트 건물이 정면으로 보인다.그녀는 커튼을 살짝 당겨서 앞으로 오게 하고 주차장을 내다봤다. 추렄이....

8-1x071 그런 아픔들

그런 아픔들   운진은 명년 봄까지 클로즈한다는 안내문을 써붙이고, 화원 건물 문을 잠궜다.올해는 삼촌이 일찍 기권한 바람에 수입이 짭짤했다. 벤더보다 나은 걸로 봐야 하나...그리고 운진은 부모가 기다리고 있을 원래 삼촌네 집으로 향했다.삼촌은 결국 딸을 누이동생 즉 운진모에게 맡기고 귀국하는 것이다.   "운서에미하고 자네가 집에 살고. 우리 애는 아파트에서 운진이랑 있게 하나?"   삼촌이 하는 말이다. "우리 애가 오빠하고 있겠다 하네."   "에이. 그건 안 되지, 오빠." 운진모가 펄쩍 뛰었다.   "안 돼?"   "어떻게 애들끼리 있게 해. 말도 안 되지!"   "지가 밥빨래 한대."   "그래도 그건 안 돼. 내 새끼들이지만, 요새 애들... 안 돼."그래서 아파트 임대가 끝날 때까지 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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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가방 두 개만 달랑 들고 집을 나서면서 등 뒤로 계모의 있는 욕 없는 욕 다 들었다.   "돈도 니가 가져왔으니까, 니가 갚어, 이 년아! 우린 빌려달랜 적 없다!"숙희는 이미 고모부에게서 들은 바, 돈 되받을 생각은 눈꼼만큼도 안 한다고.그리고 고모가 그랬다. 그 집에서 왜 마음 고생하느냐고.한국의 엄마 말 듣고 간 건 착한데 그만 나와 독립하라고.그래서 그녀는 욕이 날아오든말든 쳐다보지도 않았다.숙희는 이 날 새 아파트에 들면서 이상한 것을 봤다.건너편 건물 앞에 유난히 눈을 끄는 추렄이 세워져 있는데.그 색이 참 더러운 고동색이다. 설마...아무리 세상이 좁다 한들 여기서 또 만나나.내가 여기를 두번씩이나 와서도 왜 못 봤지?제발, 그냥 똑같은 추렄이었으면...숙희는 가방 두개를 들여놓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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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어쩔 수 없이 펜실배니아 주의 고모네를 가서 돈을 빌려왔다.   "돈은 아빠 말대로 집 파 는대로 갚는다고 했어요."   숙희가 돈을 한씨에게 내놓으며 한 말이다. "고모네도 풍족친 않아요."그 집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돈으로 다른 걸 시작하시든지 하시구요... 저는 이사 나가겠습니다."그리고 숙희는 신문에 난 아파트 회사 광고들을 보고 여러 군데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렌트값이 괜찮고 캐피탈 벨트웨이에서 얼마 안 들어가는 곳을 두 군데 정도 잡고. 퇴근 후에 돌아봤다.한 군데에서 첫달을 무료로 준다고 해서 그 곳에다가 어플리케이숀을 써 넣었다.   "아, 레전씨 뱅크?" 사무원이 반색을 했다.숙희는 집에 돌아가서 저녁이 없음을 알았다.   기가 막혀서...그녀는 먹기 싫지만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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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부엌 식탁에 쌓인 각종 고지서를 보고 한숨이 나온다.가족은 난데없이 교회를 간다고 다들 나갔다.숙희는 아침을 찾으려다가 그만 두고 방으로 갔다.   너무 힘들다...   내가 이게 무슨 팔자람.숙희는 침대에 들어가서 뒤집어 썼다.   곧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엄마...   진희가 영진을 먼저 찾은 바람에 병선이가 자동적으로 끼었다.운진은 수영을 추렄에 태우고 먼저 출발했다. 영진이 따라오겠거니 하고.그런데 병선이가 빠지고, 진희가 영진을 제 차에 태우고 모이기로 한 맼다널즈로 왔다.   "낄 데를 끼어야지!"   진희가 병선을 두고 한 말이다. "미스타 오 있는데도 낀대."운진은 영진을 흘끔 보고 진희에게 눈을 흘겼다.그러나 영진은 안다. 그러나 그녀는 신경 안 쓰기로 한다.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