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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키는 하워드와 헤어지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부친의 가게로 향했다.공희는 어쩌면 내 말을 들으니까 오늘 아빠랑 만나서 시간을 보내도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면 들어줄지 모르겠다... 그녀는 도심지에서 외곽으로 빠져 나가는 길이 주말에는 처음이다. 이 길도 토요일 같은 때에 나오면 드라이브 하기에 안성마춤이네?숙희는 그 파크웨이를 지나가며, 벌써 단풍이? 노 웨이! 하며 지나갔는데.운진도 같은 때에 같은 파크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이 날 그는 한 주 건너 뛴 뒤에 나와서 뾰족탑이 보이는 인디펜던트 애브뉴 선상 아무 데나 좌판을 벌였는데, 마침 관광 버스 한 대가 그 곳 밖에 세울 데가 없는지 정차했다.그 버스에서 일단의 동양인들이 우루루 내렸다.   투덜투덜.   여긴 뭐야.   뭐야, 이건!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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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도 두시까지 하니?"   한씨가 큰딸에게 묻는 말이다. "시간 괜찮으면, 오늘 아빠랑 식사나 하자꾸나."숙희는 작은 감동이 가슴에 일지만, 애써 미소로 응수했다. "첫날이라 몰라, 아빠."   "토요일날 오픈하는 은행 보면 주로 열두시에 닫던데."   "엄마한테 혼나지 마시고 얼른 들어가 보세요, 아빠."숙희는 애써 부친에게는 좋게 했다.   애비도 족보도 모른다는 말이 뭐예요 하는 질문이 목구멍에서 까불까불하는데, 그녀는 애써 나오지않는 미소로 덮어버렸다.   "이따가 늦게라도 가게로 오너라."   "봐서요, 아빠. 다녀오겠습니다!"숙희는 아빠가 우정 따라 나와서 그 정도까지만 대화를 해 준 것만 갖고도 기쁘다.   아빠는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나를 늘 관심있게 보니까! 그녀는 그렇게 자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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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퇴근 길이 막히면 더 좋다.늦어지는 만큼 집에 늦게 들어가기 때문이다.그녀는 점심을 늦게 먹었다는 둥 점심 먹고 속이 안 좋다는 둥 이런저런 핑게를 대며 저녁 밥상에서 식구와 마주 대하기를 회피했다.한씨는 단 한번도 딸더러 그래도 나와서 국 한술이라도 떠라 하는 말조차 안 한다.공희가 몇차례 문을 두드려 가며 밥 먹자고 했다가 모친에게 되게 혼나고는 그 다음부터 언니 부르는 것을 더 이상 안 한다.   숙희는 대신 출근하면 아침과 점심을 또박또박 챙긴다.   은행에서 연례행사로 가을이면 어느 일요일을 잡아 전직원 가족들을 위싱톤 메모리얼 파크로 초대한다고. 그 때는 초대인원에 제한이 없다고.스무명이 와도 되는데 단 혼자는 안 된다고.수키는 빠지기로 했다.   [메이 비, 다음 번엔...] 수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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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이 수영과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그 집을 나서는데, 마침 그녀의 부모가 도착했다.운진은 무조건 구십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왜 왔어!"    "가는 건가?" 그 집 어른과 안주인이 동시에 말했다.   "녜!" 운진은 그 부부에게서 뭔가 가시돋힌 말투들을 느꼈다.순간, 영진과 헤어져야 하는 그림이 눈 앞에 떠올랐다.   "아부지. 나 만나러 왔어요. 왜 그러세요?" 수영이 신경질을 냈다.영진이 제 오빠를 가만히 봤다.   "언제부터 니 친구야!"    부친이란 이가 여전히 쏘아부친다. "그 기타는 왜 들고 있어!"운진은 반사적으로 손에 든 기타를 수영에게 내밀었다.수영이 가져가라고 도로 밀었다.영진도 가져가라고 손짓을 했다.운진은 영진에게 기타를 쥐어 주었다. 그리고 그는 인사를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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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사촌동생을 볼 일이 있다고 따돌렸다.그리고 그는 영진이 기다리고 있을 어느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날씨는 9월 들어 그 새 며칠 지났다고 조금 선선했다.운진은 추렄 유리들을 내리고 달렸다.   영진이 악보를 들여다 보며 비음으로 음을 대충 해 보는 척 하더니 웃음을 터뜨렸다.그녀가 악보를 운진에게 도로 내밀었다. 그녀가 생선 튀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음료수를 대롱으로 빠는데.운진의 눈에 그 모습이 참 귀엽게 보였다.영진은 얼른 보면 얄상하게 보이는데, 자주 보고 가까이서 보니 오목조목 예쁘다. 그녀는 몸매가 소위 글래머 타입은 아닌데. 아니. 아담하고 작은 체구인데,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올만큼 나왔다.   "장로 교횐데 그런 걸 해요?"   "모르죠, 나는. 교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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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9월인데, 성가대는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 찬양을 미리부터 준비한다고. 성가대장이 운진을 타이르는 것이다.운진은 괜히 성가대를 들어갔다고 후회한다. 그는 한국에서도 해 본 적 없고, 미국에서는 사촌동생이 미리 말을 퍼뜨려서 하는 수 없이 이 날 처음으로 참석해 봤는데.그는 솔직히 아까 교인들 앉아있는 좌석이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 제 하는 일이 너무 불규칙해서요... 자신을 못하겠네요."   "주일날 예배 전에 한시간씩 하는 건데, 뭐가 힘들다 해, 이사람아."   "괜히 대답 드렸다가 약속 못 지켜 드리면..."성도들이 감명받는 걸 똑똑히 봤다며, 성가대장이 채근하는 것이다. "누구지? 삼촌이 집사시지?"병선이 되려 사촌형을 잡아 끌었다. "성! 가! 가!..

5-1x041 황성렬

황성렬   본당에 한가득 모인 교인들이 경건한 자세로 머리들을 숙였다.과앙~웅장한 올갠 소리가 첫 음을 잡았다.   주는 성전에 계시오니   온 땅은 잠잠하라~성가대에서 우렁찬 기도송이 본당을 가득 메운다.특히 남성 베이스 파트들의 저음이 감명적으로 들려온다.   주 앞에 잠잠해   주 앞에 잠잠해성가대 지휘자가 신이 나서 고개를 연신 끄떡인다.성가대의 베이스 파트가 갑자기 달라진 것이다.기도송은 전주와 전혀 달리 우렁찼고. 교인들은 벌써 은혜스러운 조짐에 미소가 한가득씩.교인들이 웅성거리며 성가대를 보려고 이리저리 움직인다.키가 크고 풍채 좋은 목사가 강단에 올라섰다.    "오늘 성가대가 유달리 은혜스럽죠?"짝짝짝짝!본당 한가득 박수 소리가 가득 찼다.지휘자가 돌아서서 구십도 인사를 했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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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승용차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여서 떠났다.추렄은 역시 오른쪽으로 꺾어서 그러나 숙희의 차를 향해 똑바로 왔다.숙희는 본의 아니게 남을 엿본 것처럼 된 기분이다.그녀는 추렄이 지나가면 출발하자 하고 앞을 똑바로 봤다.추렄이 다가와서는 높은 위치의 헤드라이트로 하필 숙희의 얼굴을 정면으로 쐈다.숙희는 인상을 쓰며 미친 자 다 있네 하고 차의 기어를 후진으로 넣었다.   널 보려고 기다리는 거 아니다!   관심 끄시고 착각은 금물!숙희는 차를 뒤로 쭉 빼서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기어를 전진으로 바꿨다. 그리고 개스 페달을 막 밟으려는데, 어디서 우우우~ 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순간, 숙희는 저건 경찰차나 앰뷸런스 소린데 하고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녀는 갑자기 시장끼가 엄습해 왔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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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희모가 부엌에서 난리를 피우며 저녁 준비를 한다.   무슨 놈의 기집애가 쌀 앉힐 줄도 몰라?   지가 무슨 대감집 딸년이라고 해서 바치는 밥만 처먹어!   호적에 오르지도 못한 거를 불쌍해서 입적시켜주고, 미국에도 따라오게 해 주었으면, 고맙다는 뜻으로라도 만일 집에 와서 아무도 없으면 밥 정도는 해놔야 그나마 사람 구실한단 말을 듣지.   내가 니 종이야, 이년아!와당탕!부엌에서 다이닝룸으로 스텐레스 스틸 냄비들이 굴러나왔다.그 중 하나가 숙희의 발 앞에까지 튕겨져 왔다.어째 아비란 이가 내다보지도 않고 역성은 거녕 말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공희만 소파에 앉아서 언니를 봤다 부엌을 봤다 할 뿐이다.숙희는 아까부터 서 있는 자리에서 문을 향해 돌아섰다.   언니...공희가 눈치채고 조그맣게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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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주차장에 나와서야 참았던 숨을 푸하 하고 내뱉았다.남자들이란 젊은 거나 늙은 거나 하나 같이 여자를 장난감처럼 취급하고!숙희는 부친이 점점 증오스러워져 간다. 암만 나이 들어간다고, 딸을 놓고 같이 농을 해?   숙희는 차를 찾아 가다가 파란 연기를 꼬리에서 내뿜으며 떠나갔던 짙은 색의 그 추렄이 세워져 있는 것을 봤다. 그 추렄은 아마도 양품점에 온 것이리라. 그 추렄은 양 유리가 내려져 있고, 뒤 짐칸에는 온갖 종이 밬스 같은 것들이 가득 실렸다.그 때 양품점 유리문이 열리며 일단의 남녀가 나왔다.그 때쯤 해서 숙희는 하늘색 혼다 승용차에 올랐다.아주 우연이었다.남자가 그냥 이리저리 보다가 숙희 쪽을 스쳐 보고 지나가다가 일순간 멈췄다.숙희는 애써 외면하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녀의 외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