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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에게 이번 일주일은 후딱 지나갔다.그는 토요일 저녁에 사촌동생 병선이가 놀러와서 술 먹으러 나가자는 것을 낚시로 잡아끌었다.   "이제 당분간 술은 좀 멀리해야겠다."   "성이?"   "토요일마다 계속 술 먹으니까, 일요일날 아무 것도 못해. 하루 종일 잠만 자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뭐."   "야. 오늘 밤낚시 갔다가 고기 안 올라오면, 바로 오자."   "왜."   "교회 좀 나가보려구."   "우리 교회에 여자애들 얼마 없는데?"   "이런! 여자애들 있나없나 보러 교회 나가냐?"   "아니면, 시간 낭비지, 성!"워싱톤 디 씨를 감싸고 도는 벨트웨이는 초저녁인데도 차량으로 밀린다.   "어디 또 사고났나, 씨발?"    병선이 추렄의 유리를 반 내렸던 것에서 마저 다 내렸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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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이 집의 벽시계를 자꾸 봤다.남의 집에 초면으로 와서 비데오를 본다는 게 좀 그렇다.그는 아홉시를 땡땡 치는 것을 기회로 일어섰다.   "내일 일 가야 하거든요."물론 거짓말이었다.   운진은 안주인에게 깊숙히 숙여서 인사했다. "오늘 잘 먹고 잘 놀다 갑니다."가장 어르신네는 벌써 취침을 시작하셨다고.영진이 얼른 따라 나섰다.   "요 집 앞에까지만, 엄마. 아까 차를 가깝게 못 세웠대."운진이 추렄을 집 가까이 안 댄 이유는 남의 집 앞에 똥차가 세워져 있다고 할까 봐 집과 집 사이의 빈 터에다 세웠던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걸어서 스무 발짝이나 될까.영진이 해 넘어간 밖으로 먼저 나갔다. "해가 졌는데도 더워요, 그쵸."   "이제부턴 뜨거워질 일만 남았으니까요."수영이 문간에서 손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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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험한...운진과 영진과 그녀의 오빠 수영의 합창은 거기서 끊겼다.그 집 가장이신 어르신네가 들어선 것이다.운진은 기타를 수영에게 얼른 주고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구십도로 인사했다.영진이 그 어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니가 말한 그 청년이냐?" 이 집 주인장도 저음의 소유자이다.수영이 중간 쯤에서 운진더러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운진은 두어 발짝 더 가서 그 집 식구들 앞에 섰다.   "아부지. 이 친구, 기타 솜씨가 보통 아닌데요?" 수영이 기타로 운진을 가리켰다.그 집 어른이 큰 기침을 하며 돌아섰다.    "아이, 아빠!"   영진이 부친의 팔을 잡았다. "못 치는 노래가 없어."그런데 이 집 가장은 아들을 아래위로 훑어 보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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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에게 오빠가 있다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쳐박혀 있어서 부모님의 속을 태우는데...   미스타 오께서 절 잘 아는 사이라고, 오빠를, 좀, 친구로.그래서 운진은 여자네 집으로 초대를 받아서 가야했다.미국 생활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통상이므로 초대는 보통 토요일에 생겨난다.운진은 대충 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영진이 전화로 불러준 약도를 믿고 나섰다.그녀의 부모네 집은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약간 부유층의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문을 연 이는 영진이었다.몸의 윤곽을 잘 나타내 주는 긴 드레스를 하늘하늘 입고서 운진을 맞았다.운진은 집 안에 들어서서야 아차! 했다.그는 꽃을 만들어서 왔던 것이다.혹시, 그러니까, 이 집 부모에게 선을 뵈러 온 건가?영진이 꽃을 얼른 받아서는 코에 가져다 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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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타 오 나랑 만나면서 내 친구 영진이 왜 만나요?"   양품점 여자 진희가 앙탈을 부렸다. "영진이가 그러던데요? 꽃집에 놀러갔었다고."   "친구랑 아는 남자니까, 부담없다 생각했나 보죠. 그리고 가르쳐 줬다며요?"   "이상한 기집애네. 담에는 받아주지 마세요."   "가르쳐 줬다데요?"   "그냥, 미스타 오 뭐 하신대니 하고 묻길래, 꽃집 한대나 봐 잘 몰라 한 게 단데."   "제가 일하는 꽃집을 정확히 알고 온 거 같던데요?"   "누가 가르쳐 줬지? 나도 모르는 걸... 미스타 오가 영진이한테 따로 말했어요?"   "이런!"   운진은 어이가 없어졌다. "알았다!"   "네?"   "어이, 김 새! 어이, 재수없어. 내 이 자식을, 그냥!"   "어머머?" 진희의 얼굴이 겁 때문에 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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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시간이 지루하게 지나갔다.운진이 삼촌네 꽃가게의 토요일 마감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데 사촌동생 병선의 머스탱 스포츠 카가 달려와서는 끼익 하고 멎었다.   왔네, 자식!운진은 속으로 웃었다. 너도 잘 하냐?   "성!" 병선이 차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운진은 화분 들었던 것을 내려놓고 동생의 차로 다가갔다.병선이 선글래쓰 너머로 인상을 썼다. "성. 그 양품점 기집애 책임질 거야?"   "어이, 야! 그 기집애라니! 숙녀님을 가지고."   "어... 정말인가 보네."   "왜. 그 여자가 내가 지를 먹었다고 썰 풀고 다니냐?"   "먹었어?"   "지난 토요일날 지네 아파트에서."병선이 차의 발동을 끄고 뛰어내렸다. "아니, 성이 여자를 먹어?"   "아니, 그럼, 주는데 안 먹냐?"   "어떻게..

2-1x011 오운진

오운진   운진이 어느 샤핑 센터로 불려 나가서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사촌동생 병선이 사촌형을 일종의 들러리로 세운 것이었다.즉 어느 양품점에 일하는 여자를 직접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친구가 그 날 거기에 있는다 해서 보러 나가는 김에 사촌형을 일종의 꼽사리끼게 한 것이었다.병선은 원래 만나려 했던 여자에게는 정작 말을 못 붙였다. 그가 원래 만나려고 했던 여자가 병선을 한번 보고는 더 이상 말을 연결하지 않은 것이다.운진은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냥 돌아서려 했는데.통성명은 일단 했겠다 저쪽의 들러리 여자가 운진에게 말을 붙였다. "미스타 오, 어디서 많이 뵈었어요. 몽고메리 카운티에 사세요?"   "프린스 죠지스 카운티에 사는데요."    "어머. 이상하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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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하루 지난 후에 그 사촌동생 병선으로부터 다음날 어디어디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걱정 마, 성. 깨끗한 여자야."   "왜 그걸 강조하냐? 허허허!"   "우리 교회 성가대 반주하는 여잔데. 아마 성하고 잘 어울릴 ?"   "가만있어 봐... 니네 교회 피아노 반주자면..."   "성 얘기를 하니까, 어쩌면 알 것도 같다던데?"   "날?"   "아니. 내 사춘형이라니까, 그러면 알 것 같대."   "점점 더 궁금해지는데?"그래서 이튿날 운진은 이발까지 했다.그의 모친이 또 어디를 가야한다고 같이 나서는 것을 운진은 도망치듯 해서 떨구었다.사촌동생이 그에게 전화로 가르쳐 준 곳은 몽고메리 카운티의 한 번화한 샤핑 센터였다.같은 시각.숙희는 아빠의 악세사리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삼십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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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은 길도 모르고 헤매다가 차의 휘발유가 떨어져서 섰다.그가 그래도 수신인 부담으로 전화 거는 것은 알아서 제 부모네로 그렇게 했다.그의 부친이 부근의 지명을 잘 보라 해서 아들이 버지니아 어디에 간 것을 알았다.그 날밤으로 펜실배니아 주의 앨런타운에서 버지니아 주의 리치몬드까지 노부부의 장장 열시간 이상 달리기가 벌어졌고.아침녘에 도착한 거기서 아무 주유소를 찾아 이십불을 걸고 빈 휘발유통을 빌리고.그 통에다가 휘발유를 받아서 차가 선 곳으로 돌아가고.그 차에다 통에 든 휘발유를 넣어서 차 시동 걸어 그 주유소로 돌아오고.그 주유소에서 그 차에다 휘발유를 가득 채워서는 부친이 앞장 서고 모친이 차를 몰고 따라가는, 그것도 노친네가 하이웨이에서는 주눅들어 빨리빨리 못 가니까...장장 열몇시간만인 한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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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손님이 거의 없는 가게를 지키는 고역을 강제로 참아내고 있다.온통 가짜 액서서리를 파는 가게는 어쩌다 틴에이저들이나 기웃거리다 나갈 뿐 어른들은 밖에서 간판이나 유리에 붙인 설명들이나 보고는 그냥 지나친다.그래도 무슨 날 때 되면 가짜라도 사서 교환하려는 좀 가난한 아베크가 북적거린다고.그녀의 부친은 타고 난 바람끼를 제지 못하고 옆의 가게에서 옷 수선하는 독신 아주머니에게 아침부터 가서 치근거린다.공희의 모친, 즉 숙희의 계모는 무슨 말을 들었나, 의붓딸을 첫날부터 순순히 대했다.가게의 전화가 벨소리도 크고 촌스럽게 띨릴릴리 하고 울어댔다.숙희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수화기를 집었다.아빠가 벨 소리를 듣고 오려나 하고.   "에이치 앤드 티 주얼리?"   "숙희니?"   "아, 고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