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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키는 삶에 번민이 올수록 은행 일에 몰두했다.다들 퇴근한 뒤에도 일부러 남아서 맞춰본 돈을 또 맞춰보고 설합이나 손금고도 잘 잠겼나 몇번씩 당겨보곤 했다. 그녀가 더 이상 뭉갤 이유가 없어져서 대리석 바닥을 또각또각 걸으면 라비 한 구석에 자리잡은 경비석에서 배불뚝이 아저씨가 모자 챙을 만진다.그녀가 늘 은행 주차장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직원이다. 그녀가 주차장을 떠나면 은행 정문의 철 셔텨가 내려진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근무 모습이 경비 아저씨에 의해 상부에 보고되고 있었다.   숙희는 퇴근길에 벨트웨이가 밀리면 차라리 더 좋다. 늦어지는 만큼 집에 더 늦게 들어가기 때문에. 그 만큼 공희모와 대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때문이다.그래 봤자 다섯시를 넘긴 적이 없다.그녀는 집에 도착한 때부터 부친과 공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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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공휴일이라고도 불리우는 레이버 데이(노동절).매년 9월의 첫 월요일.그 날을 마지막으로 휴가철이 완전히 지나면서 모든 이들이 일터로 돌아온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들도 그 날 이후 개강한다.   "이젠 미스타 오 아저씨가 월화수목금은 학교 가고 토일만 벤더 한대?"   공희는 아까부터 손님 하나 없는 가게에서 진희와 전화 수다를 떤다. "그래두 그 미스타 오 아저씨는 장사 잘 할 거야."한씨는 딸의 통화를 엿들으면서 입맛을 다신다.   진희가 이젠 이 가게에 절대 안 온다고.   아빠가 치근대기 때문에.   "한번만 더 해. 아빨 엄마한테 이를 거야!"작은딸의 그 말에 한씨는 기가 팍 죽었다.딸이 무서워서가 아니다.공희모는 출신이 출신인 만큼 뿅 가면 그냥 막가파이다. 그리고 한씨는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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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여섯시 쯤 되어 동생더러 그만 닫고 집에 들어가자고 뒤로 간 공희를 마악 부르려 했다.어디서 모여 왔는지 갑자기 일단의 소녀들이 약속처럼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어오! 이것들이 장난치려나 본데?숙희는 동생이 왜 빨리 안 나오나 하고 뒤를 연신 봤다. "공희야!"한 여학생이 탄성을 질렀다. "여기 있다아!"그러자 모든 소녀들이 어디 어디 하며 진열장을 마구 들여다 보는 것이다.   "아줌마, 이거 얼마예요?" 한 소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뭐, 아줌마?숙희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나지만 참았다. "뭐, 어떤 거, 학생?"    "이거요오!"여학생들이 얄궂은 머리핀을 가리키며 한꺼번에 소리지르는 것이다. 좀 전에 동생이 추렄 운전자에게서 얻어왔다는 것들을 그냥 아무렇게나 넣어놨는데 알아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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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전혀 손님이 없어서 그냥 일찍 닫고 들어갈까 하고 망설이는데.동생은 진희란 손위 친구 따라 나가서는 함흥차사다.그래도 내 차로 왔으니 집에 갈 걱정해서라도 오겠지 하고 있는데.숙희의 무심코 내다보는 시선에 한 낡아빠진 핔엎 추렄이 샤핑 센터 주차장으로 들어와서는 크게 유-턴하는 것이 들어왔다. 틴(teen)!그녀는 혼자 흉을 봤다. 애비가 누군지, 너두!   그런데 그 추렄에서 공희가 먼저 힘들게 내리고 진희가 잇따라 내리는 것이었다. 추렄 문이 닫히기 전에 잠깐 보인 운전석에는 이십대의 남자가 앉았다. 그의 피부가 완전 까만 걸로 보아 여름 동안 썬탠을 제법 많이 한 모양이다.   바닷가라도 놀러갔던 모양이구나...숙희는 괜히 부러운 생각이 든다. 에잇! 내년에는 꼭 가 봐야지.공희와 진희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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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키는 신입이라 아직 법정 휴가일수가 책정되지않았다.그리고 그녀는 휴가가 나와도 반납하고 일을 더 배우려 들었을 것이다.7, 8월에 기존 직원들이 휴가로 자리를 돌아가며 비웠다.그럴 때마다 수키가 빈 자리를 맡아서 처리했다.자연적으로 은행 업무에 대해 견문이 빠른 속도로 쌓여간 것이다.   8월말이 거의 다 되었을 때. 그러니까 거의 마지막 직원까지 휴가를 즐기고 일터로 돌아왔을 때. 수키는 그 은행에서의 세컨드 키 퍼슨(Key person) 즉 금전출납기의 설합을 열쇠로 열어줄 수 있는 두번째 서열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텔러들이 더 큰 돈이 필요하거나 실수해서 돈통을 다시 열어야 할 때 키 퍼슨이 열쇠를 사용해서 목돈을 가져다 주거나 설합을 열어준다.세컨드 키 퍼슨의 한계가 삼천불까지이다.첫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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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시골에서 엄마랑 두 식구로 자라면서 아빠가 돈이 많고 자식 욕심이 많아서 서울과 장호원 두 집 살림을 하는 줄로 알았다.남자들은 자식 욕심, 특히 아들 욕심 때문에 다른 부인을 갖는 줄로 알았다.그래서 아빠의 두번째 부인도 딸을 낳았다는 것에 안심이 되었었다. 그래서 숙희는 아빠가 어쩌다 오면 반가워했다.군복을 짝 다려서 입은 아빠의 모습은 숙희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아빠가 자고 가는 그 다음날 아침에 까만 승용차가 파리도 낙상할 정도로 윤을 내며 동네 골목에 세워져있으면 내다보고 좋아하곤 했다.   아빠, 차! 차!아빠는 숙희에게 돈을 두둑히 주었다. 엄마랑 사이좋게 나눠 쓰라고.   숙희는 고등학교를 서울에서도 좋은 데로 합격했다.그래서 작은집에서 기거하며 버스 한번으로 다니자고 아빠가..

4-1x031 한숙희

한숙희   숙희가 레전씨 은행에서 일주일째 일을 배우도록 대나에게서는 연락이 안 왔다.그래서 그녀가 대나에게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일단은 어디에 취직이 됐으니 큰 부담 갖지 말라 그렇게 말하려고. 그랬는데 대나의 모친의 말이 그녀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다른 지방으로 갔다는 것이다.숙희는 그냥 알았다고만 말했다.   홍일점처럼 레전씨 은행에 동양여인으로는 쑤가 유일한데, 이주째 접어드는 근무에서 이미 상사들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그녀는 나이 스물일곱에 비해 성격이 너그럽고 통이 크며 어쩌다 남자 직원들이 농반 진반으로 데이트를 언급하면 '나는 약혼자가 한국에서 오기를 기다린다'는 잌스큐즈로 무마한다.   그녀가 새까만 머리를 층층으로 커트하고 정장한 차림으로 텔러들 뒤를 다니면 고객들이 우정 호기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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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은 처음 얼맛동안은 옷도 안 벗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따라다녔다.놀이기구는 무엇이든 겁이 나서 안 탔다.운진과 사촌여동생이 롤러코스터에 오르면 짐을 지키는 게 고작이었다.그러다가 영진은 더 뜨거워져서 물로 왔을 때 비로소 오기가 났다.운동장 만한 스위밍 풀에는 수백명이 들어가 있나 보다.그 물 속에서 첨벙대고 놀다가 어디서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면 사람들은 일제히 두 팔을 허공으로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사이렌 소리가 줄어듬과 동시에 풀장의 한쪽 끝에서부터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 파도는 바닷가의 파도를 방불케 하며 사람들은 바닷가에서처럼 파도를 탄다.어느 새 운진은 수영복 바지 차림으로, 그의 사촌여동생 혜정은 보기에 아슬아슬한 비키니 차림으로 나타나서는 옷이 든 가방을 영진에게 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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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은 집에서 절대 허락 안 한다고 서운해 하면서, 운진에게 다음날 꼭 오션 씨티를 가야겠느냐고.그녀는 사뭇 떼를 썼다.운진은 난처해 하다가 제안을 했다. "그럼, 미스 킴 오빠도 같이 가자 하면요?"   "울 오빠를요?"   영진이 순간 반색했다가 도리질을 했다. "오빠 앞에서 수영복은..."   "오빠가 구식 사람처럼 까다로워요?"   "아, 아뇨. 울 오빠 신식이예요. 하지만, 아직 오빠 앞에서 옷을 안 벗어봐서."   "수영복도..."   "그리구!... 그리고 바닷가 가면 사람들 많잖아요. 날 볼텐데."   "다들 벗고 있죠."   "작년에 진희랑 갔다가, 저는 차 안에서 땀만 흘렸어요."   "사람들 많은 데 가면 두려워요?"   "아뇨, 아뇨! 그래서는 아니구요... 아는 사람 만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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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에게 기다리는 대나는 연락이 없고, 레전씨 뱅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여름 한철 바쁜 시기에 잠깐 채용하는 임시직이 열렸는데, 혹 관심 있느냐고.대우는 시간당 10불.언제까지 한다는 보장을 못 한다고.그래도 관심있으면 방문하라는 솔직히 모욕적인 통화 내용이었다.그러나 숙희는 일단 수락했다.   비지네스 매네지먼트를 전공한 이에게 텔러 임시직이라니.그러나 숙희는 일단 출퇴근이란 것을 맛보고 싶다. 그 동안 다른 데를 계속 알아보면 되겠지. 그 동안 혹시 대나에게서 연락이 올지.   숙희는 더운 날씨이지만 정장 차림으로 은행을 찾아갔다.정문의 대리석으로 된 아치가 새삼 고풍 분위기를 자아냈다.숙희는 그 정문을 힘차게 당겨서 열고 들어섰다.바닥은 언제나 봐도 유리에 물을 뿌려놓은듯 말갛고 눈부시게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