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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야간 보초를 서는데.   둘씩 한 조가 되어 맡은 구간을 계속 왔다갔다 하죠.   철책선 경계 나가면 실탄을 지급 받아요. 엠-싴스틴에.   거의 귀로 주위를 감시하는데, 아무래도 철책선 부근에서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요.   운진은 엠-싴스틴의 자물쇠를 풀고 그 소리가 들려온다는 방향을 가늠하고 겨냥했다.아주 희미한 은하수 빛에 물체가 기는 것이 포착되었다.   여기는 올빼미 삼. 올빼미 원 나와라.    올뻬미 원.    철책에 침투한다.   완전히 넘어오면 생포 아니면 사살하라.   알았다, 오바.   단, 탄알이 철책을 절대 넘지마라.   알았다, 오바.운진은 곁에 나란히 엎드린 동료에게 손신호를 보냈다.둘은 엠-싴스틴을 까만 물체에다가 조준했다.그 물체가 정중앙의 철책을 완전히 지나서 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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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주차장에서도 흥섭은 숙희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운진은 주위를 살폈다. 보아하니 숙희가 되게 꺼리는 상대 같은데, 사내가 눈웃음을 샐샐 치며 자꾸 옛이야기를 이어가려는 품이 그녀의 기를 죽이려는 것 같아서.여차하면 한바탕 붙어야 하나 해서.그런데 숙희는 흥섭의 떠벌리는 사투리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운진의 손을 찾아서 꼭 쥐었는데 이상하게 그의 손아귀에서 편안한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한숙희, 결혼은 했능가?"흥섭의 한참 생글거리고 수다 떨던 말투가 갑자기 확 달라졌다.운진에게서 흠 재밌네 하는 반응이 나갔다. 남의 여자 결혼했는지는 왜 물어.   '뭐야. 교관과 여대생의 염문?'   "여기 운진씨랑 약혼했어요."   "이잉... 행복한 청년이구만." 흥섭이 운진을 훑어보며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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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이글 파이넨셜에서 보내온 잉여 자금 내역을 검토하고 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은행은 충분히 인수하겠네...'숙희는 그 두 지사가 팔린 금액이 전액 재투자 된 것을 발견했다. '진짜 새 회장은 사심 없이 사세 확장에만 관심이 있는 모양이네?'   이제 그녀는 이글이 군침을 흘릴 만한 정도의 은행을 찾아줘야 하는데.모두에게 구월이 빠르게 흘러가고 시월이 왔다.영란이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그 동안 운진과 숙희는 교회 예배라고 딱 한번 참석했다.웬일로 성렬이 운진을 보고 피하는 기색이었다.   "성이 계속 나와서 목사님 말대로 성경공부하고 문답 통과해서 세례 받으면, 일 나거든."병선의 친절한 설명을 운진은 한마디로 답변했다. "너나 열심히 해서 회장 나와라."   "에이, 나는..."   병선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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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오션 씨티에서 돌아온 지도 일주일이 지나갔다.과수원 둔턱에서 내려다 보이는 포도원은 모든 일이 끝나서 조용하다.그 곳과 과수원은 이제 봄이 올 때까지 긴 휴면기에 들어간다.운진의 화원도 이제 남은 국화와 사철나무 들을 처분하고 나면 동면기에 들어간다.과수원과 화원 사이에 일궈진 옥수수 밭에 바람이 불어 지나가면 이제 씨 받기 위해 남겨진 수숫대들이 으스스스 스치는 소리를 낸다.   운진은 그 밭의 옥수수들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그들이 이번 주 안에 와서 몽땅 따 가기로 되어있다.숙희와 운진이 나란히 산책하는 도로는 이제 차량의 통행이 사라졌다.숙희가 개의 목줄을 잡고 걷는다.웬지 눈에 많이 익은 상황이다.숙희는 새삼스레 긴장되어 운진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운진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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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둘은 한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서 텔레비젼을 봐도 감흥이 일지않는다.숙희의 어깨에 브래지어 끈이 나오고 앞가슴에 골이 패여도 운진의 눈은 지나간다. 왜.그도 숙희와 결혼해서 첫날밤에 서로를 첫경험으로 발견하고 싶어서. 아니면. 그녀를 보내줘야 하는 경우가 생겨도 그녀는 상처가 덜 할 것 같아서.몸까지 주었다가 헤어지는 일이 벌어지면 여자는 얼마나 힘들까 해서.   "사람들은 흔히 그러지... 남녀가 한방에서 밤을 보냈다고 하면, 당연히..."숙희의 그 말에 운진은 새삼 영진이 생각났다.   남녀가 밤을 같이 보내면 무슨 일이 생기느냐고 모친에게 쏘아부치던.   '엄마 아빠나 혼전 관계로 오빠를 임신해서 결혼한...'   '나는 어림없어요! 절대로!' 영진의 귀여운 외침이 들려온다.운진은 뜸을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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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잠자코 걷기만 하는 운진을 자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 마음이 나한테 없으신가 봐, 운진씨. 어떡해?"   "상관없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신경쓰지 말아요."   "공희엄마 만나시기 전에부터 그러셨어?"   "음... 물론 공희어머니가 이상한 짓을 한 바람에 틀어진 것도 있지만. 원래... 어머니가 점 찍어 놓고 저한테 소개하려던 여자가 있었잖아요."   "한국에, 미국에?"   "한국에... 는, 말고, 숙희씨도 알죠. 큰숙모의 사돈 처녀."   "아... 어머니가 그 여자를 좋아하셔?"   "..."   "어머니 마음이 나한테 돌아오시면 좋을텐데..."   "..."   "내가 화원에서 기거하니까 더 그러시나 봐."   "우리 둘이 결혼만 안 했다 뿐이..

15-1x141 만나지기로 되어있는 사람들

만나지기로 되어있는 사람들   오씨부인이 아들을 먼저 발견했다.아들은 완전 시커먼 안경에 위는 소매없는 셔츠와 아래는 카키색 반바지로 입고.여자는 역시 시커먼 안경에 밀짚 모자를 썼고. 그녀 역시 소매 없는 셔츠에 역시 카키색 반바지를 입고. 그리고 둘이 손을 잡은 채 보드워크를 천천히 걷는다.오씨도 봤다. "쟤네들이 우릴 먼저 볼 때까지 모른 척 해."   "저 기집애가 아주... 완전히 찰거머리로 아예 양심이나 체면은 내다 버렸네!"   오씨부인이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 "벌써 몸으로 호리는 거야? 지조도 없는 년!"   "요즘 애들 다 그래."   "뭘 요즘 애들이라고 다 그래! 안 그런 애들이 더 많은데."   "둘이 벌써 얼마째 사귀는데."   "십년을 사귀어 봐!... 다들 결혼 전에 몸 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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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선과 진희는 교회 성원과 떨어져서 운진네와 지내다가 미리 귀가하고.운진과 숙희는 삼일째 되는 일요일날 비로소 모래에 나가 앉을 수 있었다.그 날은 날씨도 쾌청했고, 백사장은 수 많은 양산과 비치 타올로 뒤덮혔다.두 사람은 모래에 미리 세워놓은 해가리개 우산을 임대하고 비치 의자도 빌려서 누웠다.   "운진씨, 물에 안 들어가? 수영할 줄 몰라?"   "이런! 임진강을 건너 다닌 사람한테."   "어... 그 강은 남북 경계선 아냐?"   "중간에 조그만 땅흙이 있어요. 거기서 북 애들하고 얼굴 맞대고 경계..."   "와아... 지금 나한테 공갈치는 거지!"숙희는 원 피스 수영복 차림에 얼굴을 거의 다 가리는 안경을 쓰고 바다를 내다본다.운진은 윗통은 벗은 채 누워서 상체에 선탠 로숀을 바른 후 숙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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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 멘스가 완전히 건너 뛴 것으로 확인지었다. 아예 한 방울도 비치지 않는 것이다.그녀는 눈 앞에 사물들이 노래지기 시작했다.이제 어디다 하소연을 할 것인가.그 원수를 떨구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덜커덕하고 그 원수의 애를 또 배었으니.영주권만 받게 해 달라 해서 같이 들어왔더니, 만 2년 넘은 지난 달 영주권 받자마자 다른 여자를 맞아 들인 인간인데, 어쩌다 또 몸을 섞고는 임신.그녀는 몸이 아프다고, 정말 임신 초기의 징조가 나타나서, 남동생을 전화로 불러냈다.그리고 집으로 온 영란은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모친에게 대꾸없이 방으로 갔다.그녀는 침대에 펄썩 쓰러지며 아아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떡하나! 어떡하나! 어떡하나...태어나기로 되어 있는 아이는 때가 되면 이유야 어떻든 잉태되고 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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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회는 그냥 흐지부지 되는 거지, 뭐."병선이가 커피를 하며 하는 말이다.수양회에서 교육과 설교를 담당한 강사가 밤새 달아나고.인솔 장로 중 한 명이 집에 급한 일이 있다며 달아나고.   "어떻게 연락이 되어 집에 급한 일이 벌어진 걸 알았나는 수수께끼지."병선의 그 말에 숙희는 웃었다. "집에 연락했나 보죠."   "그럼, 인솔자도 없는 수양회구나?"   "말이 수양회지. 저 미스타 황이 여자들 수영복 입은 거 보려구."병선이가 진희의 눈치를 얼른 봤다.진희는 커피 대신 하는 오렌지 쥬스를 들여다 보기만 하고 있다.왜 안 그렇겠나.미스타 오가 바로 앞에 근사한 여인과 나란히 앉아 있는데.   "그럼, 온 김에 오늘 날씨도 좋겠다, 다들 놀다 가겠네?"   "그럴려나 봐."   병선이가 진희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