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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지나간 다음날은 늘 거짓말같이 개인다.마침 토요일이라 보드워크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붐볐다.운진은 일부러 네거리를 두 개 정도 걸어서 찾아진 도넛 가게로 갔다. 숙희가 아침으로는 꼭 도넛과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그런데 역시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거기서 교회 성원들을 또 만났다.   "진짜 눈꼴 시어서 못 봐주겠네." 황성렬이 내뱉은 첫 말이었다. 제 딴에는 농쪼로 그렇게 말했겠지만 본심에서 우러나는 질투심을 나타내는 제스처였다.숙희와 운진은 애쓸 필요도 없이 성렬을 무시했다.운진은 병선이나 진희가 안 보임에 궁금해졌다.두 사람은 마침 비어지는 자리를 차지했다.   "신혼 첫밤은 어땠는고?"성렬의 두번째 비양거림에 반응을 보이는 이가 하나도 없다.   "요즘은 프레-허니문 베비가 유행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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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숙희를 혼자 놔두고 나갈 수도 같이 나갈 수도 없는 바깥 상황에 생각만 하다 말았다.   '자식! 올라가면 되게 뭐라 하겠는데?'운진은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내려서 숙희와 옆으로 섰다. "하이."젊디젊은 여자가 정문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오 마이 가앗!"방에서 비 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지 그들은 사뭇 바닷가라도 나갈 차림새였다. 그들은 전혀 주저않고 라비에서 통하는 스위밍 풀 문을 향했다. 나이들은 끽 해야 높은 틴에이저들 같은데 몸은 이미 제 굴곡을 다 갖췄다.서양 여자들은 몸이 일찍 발달하고 대신 일찍 쇠퇴하기 시작한다고.운진은 엘레베이터 문을 잡고 숙희 먼저 타게 했다.어느 한 사람이 부지런히 와서 그들과 같이 탔다.   "It's some kind of rain,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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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첫날 내내 쉬지않고 퍼부었다.청년회 수양회는 교회 버스 안에서 진행되어져야 했다.수업이야 반토막으로 넘기더라도 잠 자는 것이 문제였다. 새삼스레 민박이나 값싼 모텔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운진과 숙희는 그 수업에 당연히 참석하지 않았다.   둘은 호텔 꼭대기 방에서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비 내리는 바다를 구경했다.그들이 움직인 때라고는 그 호텔의 라비에 딸린 레스토랑에 내려가서 식사를 한 것 뿐.바닷가는 라이프가드 조차 철수했다.몇몇 비바람을 무릅쓰고 모래 위를 걷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들은 고함도 지르고 하늘을 향해 악도 쓰는데 젊은층들이었다.   "기껏 힘들여 왔는데, 비 때문에 잡치니 화도 나겠다."운진이 그들을 내려다 보며 한 말이다.   "태풍인가, 운진씨?"   "글쎄요..."숙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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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차를 세우면서 교회 밴 버스를 또 봤다.    체! 도로 나오랄 수도 없고.어쨌거나 운진은 비를 맞고 뛰어서 타코 벨 안으로 들어갔다.숙희는 한켠에 서 있고, 성렬이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운진은 숙희를 슥 한번 보고는 주문하는 카운터로 갔다. 그녀가 자청해서 성렬과 얘기를 하고 있든 아니면 성렬 혼자 일방적으로 말을 걸고 있든 둘의 대화 분위기를 무안스럽게 자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숙희가 운진 곁으로 와서 그의 팔꿈치를 살짝 잡는데.   "미쓰 한 꺼도 여기서 한데 오다 하는데요?" 성렬이 다가왔다.   "우리는 따로 왔는데, 왜 거기다 같이 주문을 해요?"   "우린 벌써 오다 들어갔거든요."   "됐는데요?"숙희의 그 말에 운진은 성렬을 봤다.   "아니, 미스타 오, 뭐 볼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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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그루마다 지푸라기를 묶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일년을 쉬는 나무마다 해충이 못 기어 올라가도록 올무를 엮는 것이다. 그리고 일년 후 봄에 그것들을 뜯어내어 벌판으로 실어가면 불을 지른다고.그 안에 진 치고 해를 넘긴 해충들을 태워 없애는 것이다.   해는 이른 감이지만 빠르게 짧아져 간다.숙희는 퇴근하면 옷을 갈아입자마자 과수원으로 달려간다. 그러면 히스패닠 일꾼들 아무나 그녀를 카트에 태워서 그날 그날의 운진의 장소에다 데려다 준다.   내일이면 둘이 오션 씨티로 가기로 한 날.운진은 해가 꼴딱 넘어가도록 뛰어다녔다.   "운진씨, 그런 건 언제 다 배웠어?" 숙희는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운서가 둘에게 밥을 퍼주며 참견했다. "얘는 맨날 책을 보잖아."   "와아! 그 머리 쓸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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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모는 여전도회 회장인 동생의 방문을 받았다.   "언니가 운진이더러 수양회 가라고 좀 해."운진모가 남편의 눈치를 실 봤다. "내가?..."   "운진이가 안 간다 하니까, 우리 병선이 녀석도 안 간다 하지. 병선이가 안 가니까 걔네들 또래 전체가 안 간다 하지. 게다가 성가대 청년회 애들 다 빠지지."   "그게 왜 우리 운진이 때문이래니?"   "운진이가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해도 통솔력이 있잖우. 한국에서부텀."   "우리 운진이... 미국 와서 완전 기 죽이고 사는데?"   "그래도 안 그래, 언니... 이유가 있어."   "그, 황 장로네 아들 패준 거?"   "꼭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친척들이 언니 말에 움직이는 걸루다 알거든."운진모는 남편의 눈치를 연신 살핀다. "글쎄, 걔가 내가..

14-1x131 태어나기로 되어 있는 운명

태어나기로 되어 있는 운명   운진모 김정인은 말로는 딸더러 이 기집애 저 기집애, 아들더러는 죽일 놈 살릴 놈 했지만 남편이 다 주라 하는 호통에 돈이란 돈을 싹 긁어서 아들에게 주었다.이제부터 우리 먹여 살려, 이놈아! 하면서.   "이제부터 누나가 화원 책임지면, 거기서 생활비 받아 쓰세요."운진은 시간을 다투어 변호사를 대동하고 과수원 인수 인계에 숙희도 참석시켰다.숙희는 언덕 위에 위치한 과수원 집 앞뜰에서 끝 없는 벌판을 보고는 기가 질렸다.거래는 현찰로 주고 받으면서, 반 다운에 나머지를 십년에 나눠서 갚기로 한 것처럼 기막힌 계약을 같은 변호사가 양방을 대표로 해서 서명을 증인했다.   과수원의 사과를 일반인에게 파는 것이 시들어지면, 나머지 사과들은 몽땅 거두어져서 나무통이나 밬스에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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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아랫층 친교실 벽에 회보가 나붙었다.   '청년회 추계 수양회'   기간은 노동절날이 낀 주말의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장소는 오션 씨티 외곽인 캠프장.   "장소가 제한되어 있으니 참가 희망자들은 미리미리 총무님에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청년회 회장인 성렬이 아랫층이 떠나가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청년회는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되어 있으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신청..."운진은 숙희의 손을 잡고 정문으로 향했다.   "어이, 오형!"   성렬이 여전히 큰소리로 불렀다. "말 하는 중인데 가는 건 무슨 예의요?"숙희가 걸음을 멈췄다.   "괜찮아요. 그냥 가요." 운진이 숙희의 손을 다시 잡고 문을 나서는데.성렬이 쫓아나왔다. "어이!"운진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가 계속 했다.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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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운진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지."   운진부가 결국 한마디 했다. "그렇게 놀라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소?"   "근데, 그 기집애는 안 돼요!"   "..."   "출신도 모르는 기집애를 어떻게 며느리로 받아들여요."   "그만하라니까!"결국 오씨가 약간 언성을 높혔고 운진모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수그러들었다. "소리는 왜 질러요?"   "그래도 아들놈이 사귀는 여잔데, 어떻게 단 한번도 저녁 초대를 안 한단 말이요."   "저녁 초대를 왜 해요! 그건... 인정한다는 건데."   "운서 말이, 둘이 엔간해서는 안 헤어질 거라 하잖소."   "에휴..."   "당신 이런 말 들으면 숨 넘어가겠지만, 정 아니면 둘이 당신 눈에 흙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답디다. 운진이 고집을 모르고 이러는 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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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입 소문이 얼마나 빠르고 무서운가.숙희는 운진을 따라서 교회에 갔다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어리둥절했다.벌써 소문이 짝 난 것이다.   이제 서른을 엊그제 넘긴 청년이 백만불대의 자산을 굴려.   게다가 색씨는 키도 크고 늘씬한 미인을 뒀어.   그런데 둘이 얼마나 검소한지 아직도 헌 차를 몰고 다닌다고.심지어 설교 제목에 검소한 생활이 곧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라고 들어갔고.부유한 집 배경에 학식 높았던 사도 바울이 성령을 받아들이고는 목숨 건 전파 할동에 일생을 바친 스토리가 포함되었다.운진과 숙희가 성가대에 섞여서 조용히 앉아 있는데, 동료 대원들이 자꾸 보는 것이다.특히... 최영란은 심기가 심히 불편하다.버지니아의 그 작자는 떨어져 나갈 줄을 모르고 아직도 딸 가지고 약을 올린다. 할 얘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