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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의 여성들은 여성끼리 남자들 정신 못차리게 떠든다.남자들은 각자 멋있는 폼으로 앉아 밖을 볼 뿐이다.숙희는 운진이 건네준 쏘니 워크맨 즉 카세트 테이프 플레어를 들으며 간다.두번째 좌석에 앉은 인솔 장로 양반이 몸을 앞으로 하고 운진과 열심히 얘기한다.그 장로 양반 옆에 앉은 병선이는 말하는 사람을 번갈아 보며 열심히 듣는다.그들이 하는 대화는 각자들 떠나오기 직전의 고국 얘기이다.그러고 보니 장로 양반이 운진보다 일년 뒤늦게 이민왔다.   "아, 전 지하철 2호선 공사 시작할 때 왔죠." 운진의 말이다.   "나둔데?" 장로 양반의 말이다.   "2호선이요?" 병선이의 말이다.그 쯤에서 숙희는 남자들을 번갈아 봤다. 2호선이 뭐야?   교회 밴 버스는 버지니아 주로 들어선 후 캐피털 벨트웨이를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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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몸이 가벼워진 것은 약 탓이겠고, 마음이 가벼워진 것은 운진과 속읫말을 주고받고 난 이유이다.이제 그녀는 운진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변치말자는 약속도 했고, 결혼은 모든 이들이 다 좋다 할 때 그 앞에서 하기로 합의도 했어서 회사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두려움이 없어졌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차차 사무적이고 어떻게 보면 얼음같이 느껴지도록 냉정해져 간다.전처럼 사람을 보면 특히 남자를 보면 혹 해치려 들면 어쩌나 하던 과대망상적인 두려움 내지는 피해의식이 가라앉고 나니 어쩌다 업무 관계로 토론이 벌어질 때 자신의 의견을 과감히 발표하고 이견이 있을 때 부담감 없이 질문도 던진다.그녀는 같은 층에 근무하는 동료 사원들이 차차 다르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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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선이마저 마지막 사람으로 돌아가고 난 후.운진은 숙희더러 윗층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새로운 데를 발견했어요."   "뭔데?"   "얼른 보면 평생 모를 뻔 했는데. 옥상으로 통하는 비밀계단이 있더라구요."   "비밀계단?" 숙희가 물으면서 그래도 괜히 긴장되는지 운진의 손을 찾아 잡았다.얼른 보면 옷 같은 것을 걸어 넣는 클로짓 같이 생긴 문이 그 비밀통로라고. 그 안에 또 하나의 문이 있고 그 문을 잡아 당겨서 여니, 좁은 계단이...계단은 가파른 편이지만 별로 힘 안 들이고 올라갈 수 있었다.계단 꼭대기의 스톰도어를 밀어서 여니 페인트 칠한 옥상이었다.   이제 해가 넘어간 벌판은 먼 곳에 남은 여광을 힘 입어 얼룩덜룩하다.운진과 숙희는 과수원 집의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서서 빠르게 어두워져 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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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교회에 나온 청년회 회원들로 하여금 단독 입후보한 오운진에 대한 투표에서...   "오늘 청년회 회장으로 선출된 오운진군은 성도님들이 목격하셨듯 세례 받은 교인이며, 부모님들 뿐만 아니라 온 친척들이 우리 교회의 주춧돌..." 운운.예배 후 어떤 다른 투표가 거행되었다.황 장로를 휴무장로로 한다는 기안에 대한 투표.   '세례를 받지 않은 성도님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나, 관람은 하실 수 있다' 라는 광고에 교인들은 한사람도 움직이지 않았다고.그래서 황성렬은 당회의 결정에 이어 교인들의 투표로 청년회 회장에서 해임되었고. 황 장로는 현 맡은 행정 업무를 다른 장로에게 일임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새 청년회 회장을 축하 격려한다는 저녁 식사 초대가 최 장로에게서 나왔는데.병선이가 청년회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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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날인 일요일.아침 일찍부터 진희가 화원으로 왔다.   언니를-숙희를-먼저 태워 가면 미스터 오는 자동으로 오게 될 거라고.그런데 운진이 추렄을 몰고 나타났으니.   "어? 따로 살아요?" 진희가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한 말이다.   "저는 과수원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잠은 거기서 자요." 운진의 말이다.   "과수원, 요?" 진희가 숙희를 봤다.운진은 숙희를 슥 보고는 더 이상 입을 안 열었다.어쨌거나 진희는 먼저 떠났다.숙희가 되려 안 가려는 운진을 독려해서 둘은 교회로 향했다.   청년회장을 장로회에서 해임시켰다고 교인들이 여기저기서 수근거렸다.그래서 청년회 총무가 임시 회장으로 이끈다고.이 날 교회는 버지니아에서 오는 교인들 즉 황네 패거리들이 일체 빠졌다.   "그런다고 안 나오는 식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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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과 숙희는 병선이가 화원에 왔다가 헛탕치고 간 것을 모르고 과수원에서 하루 종일 있다가 화원으로 돌아왔다.주위는 그 새 어둑어둑해졌다.둘이서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고 하는데 이번에는 진희가 혼자 찾아왔다.   혹시 두 분이 저희들 결혼식에 들러리 서 주실 수 있는가 하고.   "와... 올해 시집 장가들 많이 간다." 운진이 한 말이다.숙희는 운진을 이상하다는 듯이 봤다. "누가 또?"   "그러니까요."   "응?" 숙희는 설마 동생의 결혼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했다.진희가 두 사람의 대화식을 듣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두 분이 처음 보면 안 그럴 거 같은데 은근히 웃기셔요."   "와아! 운진씨더러 웃긴다고 하는 말, 첨 듣는다." 숙희도 웃었다.진희가 연락하고 해서 네 사람은 먹는 데..

16-1x151 가기로 정해져 있는 가을 소풍

가기로 정해져 있는 가을 소풍   교회 청년회의 가을 단풍 구경 겸 친목회가 전도사의 인솔로 떠나던 토요일.운진은 교회 총무에게서 얻은 흥섭의 주소를 찾아갔다.그는 소파에 꼿꼿이 앉았는데, 목에는 보호대를 붙였다.그의 아내가 몹시 의심쩍은 눈초리로 운진을 살폈는데.운진은 암말않고 다짜고짜로 흥섭의 목에 손을 대었다.흥섭이 말을 못하고 두 팔을 앞으로 버둥거렸다.운진은 그의 목 앞 기형적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뚝 소리와 함께 흥섭의 목청이 억 하고 열렸다.    "에그머니나!"   그의 아내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누구시래요?"운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 곳을 나왔다.   숙희는 토요일이라 실컷 자고 일어났다.실컷 자고 일어나니 오후 한시이다.이제 화원은 안팎으로 조용하다.그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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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도록 깨어나지 못한 흥섭은 마침 총무일을 마저 처리하려고 교회에 온 어떤 집사에게 발견되었다. 그 집사가 여러 차례 흔들며 일어나시요 정신 차리시요 여기가 어디라고 술 먹고 누웠소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것이다.흥섭은 목이 열배는 부어 올라서 말은 커녕 침도 못삼켰다.그러니 당연히 누구한테 봉변을 당했다고 둘러대지도 못했다.   흥섭은 악마의 눈을 보았다고 여긴다. 허술하게 서 있는 자를 요리 차고 조리 때리고 했는데, 그 자가 느닷없이 눈에서 불이 번쩍하도록 뺨을 때리고는 목을 찾아 잡았다.그 때 흥섭이 본 그 자의 눈은 어둠 속에서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일초나 봤을까, 흥섭은 그 다음을 모른다.그는 집에 돌아가서도 말을 잃었다.그의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경찰에 신고해야 안 쓰겠느냐고 난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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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이 단풍 놀이를 안 가겠다는데.김흥섭이가 전화 번호를 어디서 구했는지 화원으로 전화를 걸어왔다.마침 숙희가 퇴근해서 있는 참이라 통화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네. 우리 운진씨가 안 가는데, 저만 갈 수가 없죠."   그건 독재여, 독재. 아니, 한숙희 혼자 참여하면 누가 잡아먹남?   "그런 뜻은 아닙니다."   정 발이 없음 내가 데릴러 갈텡께, 가더라고.   "아뇨."   어허이! 명령에 불복종이네?   "지금 그 말씀은 지나치신데요?"   한번 선생과 제자는 영원한 선생과 제자여.   "그만 끊겠습니다."숙희가 수화기를 내려놨는데.김흥섭이가 또 걸어왔고.이번에는 운진이 대답했다. "안 간다는데, 왜 이리 끈질기슈?"   아, 몇년 만에 선생과 제자가 만나서 반갑고오, 단풍 놀이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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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원두막에 앉아 벌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황폐에에에, 한 벌판이네용?' 영진의 어리광 비슷한 말이 들려온다.그는 영진이 보고 싶다.그는 그녀의 아담한 몸체를 안아보고 싶다.그는 이제 그녀의 부모에게 화나지 않는다.그는 무리 해서라도 기세를 확장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   인간 세상은 결국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뭐가 들어있든 겉으로 넘치면 홀딱 반하는 것이다.   벌써 교회에서도 그가 화원에다 과수원까지 합쳐서 저 앞길에서 보이는 땅을 모두 소유했다는 것에 반응이 다르다. 속성으로 세례를 주고 청년회 회장을 시키자는 것이다.   벌써 교회에서는 다음 여전도회 회장은 오 집사 부인 김 집사라는 소문이 짝 났다. 게다가 그 집 며느리깜으로 근사한 색시를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