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77

6-7x057

"오빠는 아주 잠적했어요."   영진이가 음식을 허겁지겁 먹으며 하는 말이었다. "빚쟁이들한테 얻어맞고..."수영이 사라졌다던 날 밤, 그래도 그의 친구네 집에 얹혀 지내는 여동생을 찾아와서는 그랬다고.   오형한테 비행기표 보내 달라 해서 돌아가라고.   그리고 나중에 영진이가 시민권을 따면 형제 초청으로 불러 달라고.운진은 음식값을 지불했다.진희는 운진의 화원 살림집에 누가 사는 것을 안다.그래서 거기는 안 될 거고.진희의 집으로 데려가면 부모님이 뭐라 할 걱정 보다도 영진네서 대번에 알면 일 난다.   아빠 정비 공장에 빈 방이 없나...   "일단, 영진씨, 집으로 가세요." 운진이 단정지어 말했다.   "네?"   "네?" 두 친구가 동시에 놀랬다.   "어떡할 거예요. 녜? 저랑 못 만나게 하..

6-6x056

집에서 자꾸 선을 보입니다.   숙희는 운진의 그 말이 아주 까마득한 절벽 밑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그녀는 앞에 놓인 서류를 몇번씩 되풀이 해서 읽어야 했다. '그래서 나더러 어떡하라구...'숙희는 운진이란 사내가 어떤 치사한 수작을 부린다고는 여기고 싶지않다.그녀가 알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운진이란 사내는 고집불통이다.   나한테 화가 많이 나 있구나...그 날 숙희는 상사의 점심 합석을 사양했다.   아무래도... 사우쓰 캐롤라이나로 갈까 봐.숙희는 빌딩 내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샀다.그녀는 마침 비어지는 창가 자리로 갔다. '비도 오고...'허옇던 주차장 바닥이 물기에 젖어가며 그 색이 아름다워져 간다.   '집에서 선을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선을 보고 왔다는 말이다. '우리는 양..

6-5x055

숙희는 저녁을 먹고 치운 후, 화원 뒷뜰에 풀어놓여진 개를 가 봤다.개가 제법 큰 크기의 개집 안에서 얼른 나왔다.그녀가 펜스 너머로 손을 넘기니 개가 제 머리통을 갖다 대고 비볐다.그녀는 펜스 봉에 걸린 개 목줄을 끌렀다.개가 벌써 알이차리고 겅중겅중 뛰었다.   "가만 있어어!"숙희가 개야 알아듣든말든 우리 말로 야단치듯 말했는데, 개가 얌전히 정지했다.그녀는 개의 목끈에다 개줄 고리를 걸고, 펜스 문을 열었다.개가 얼른 나와서는 그 큰 몸집을 흔들며 꼬리를 쳤다.   "너 아무 데고 똥 싸면 안 돼. 알았지!"그녀는 개가 알아듣든말든 그렇게 말했다.개가 딱 한 보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더도 덜도 아니게 딱 한 보를 앞서서 가는 것이었다.숙희는 어두워진 밭길이지만 개가 앞에서 가니 의지가 되었다. ..

6-4x054

다음날.이번에는 운진이 정화네로 저녁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그것도 운진 혼자.운진은 누이의 눈총을 받으며 화원을 떠났다.   '너 어쩔려고 그러니?'누이의 말이 그의 귓전에 뱅뱅 돌았다. '숙희네 아버지가 놈팽이들을 몰고 와서 난동을 피운 것 때문에 숙희랑 안 좋은 거야?'   '그렇더라도 지금 너의 행동은, 숙희에게 말하는 게 나중에 사태 수습에도 이로울 걸?'   '프로포즈 했는데, 툇짜 놓더라구요.'운진의 그 말에 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아니면, 다른 데 룸메이트로 가던가 아니면 적당한 남자가 프로포즈 하면 가 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운진은 평소 숙희에 대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누이에게 말했다.   '의외로 남자 관계가 헤푼 것 같습니다.'   '상..

6-3x053

"그래서... 저녁만 같이 먹은 거니?"   운서가 점심을 하며 동생에게 묻는 말이다. "그 처녀가 음식을 다 장만했다매."   "그랬나 보더라구요..."   "..." 운서는 동생을 빤히 봤다.   "저도 얼떨결에..."   "그래서, 어떡할 건데?" 남동생과 누이의 말이 한꺼번에 나왔다.   "집에서 그 처녀랑 결혼하라 하면, 할 거니?"   "..."   "그 처녀가 널 먼발치서 한번 보고... 그 후 계속 졸랐댄다."   "녜에..."   "그 때... 숙희가 너랑 같이 안 있었어?"   "녜?" 운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삼촌이랑 숙모가 그 처녀를 데리고 왔었을 때, 너, 숙희랑 뒷뜰에 있었잖아. 개랑..."   "어... 녜에..."   "엄마 말이, 그 쪽 집에서는 너만 좋다 하면 당..

6-2x052

운진은 그녀의 그 행동에 속으로 놀래고 당황했지만 겉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애써 감추었다.   소위 국 간이 입에 맞나 보려 했다는데.    "국이 서울식이네요."운진은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그의 삼촌이 수저를 내저었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도식이지."   "경기도나 서울이나..." 그의 모친의 맞장구였다.   숙희는 충청도라 했고.   진희는 전라도라 했고.   영진씨는 어디랬더라...운진은 자신을 줏대없다고 여기면서도 옆에 앉아 조용히 밥 뜨는 여인이 경기도라 하니까 갑자기 친근감이 든다. "어... 엄마가 하는 식과 똑같네요."그런데, 그녀가 무슨 이유에선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쿡 하고 웃었다.   "얘가, 운진이가 올케더러 엄마라니까 우습나 봐."그의 숙모의 그 말에 그녀가 웃음을 참느라 더욱 애..

6-1x051 틈을 비집고 들어서는 도전

틈을 비집고 들어서는 도전   숙희는 아이에프티씨 컨설팅 그뤂의 메릴랜드 지사에 복직되고.운진은 화원 일로 바빠지기 시작하고.병선이가 한날 찾아와서 사촌형에게 어떤 소식을 전했다.그 동안 부모를 찾는 빚쟁이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오빠 친구네 집에 숨어있던 영진이가 진희와 간신히 연락이 서로 닿았는데.   "빨리 안 들어오면 여권하고 영주권이 잌스파이어 된대, 성."사촌동생의 그 말에 운진은 암말 않고 비행기 삯만큼 돈을 주었다.그런데 운진은 한날 꼭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라는 모친의 전화를 받았다.   "나도 모르겠다? 갑자기 새삼스레 왜 그러시는지..."누이의 그 말에 운진은 안 간다고 하려다가 만일 안 가면 또 무슨 트집과 난리가 생길까 해서 숙희에게는 말 않고...   운진은 집에 가서 뭘 알고는 은..

5-10x050

숙희는 약간 서늘한 공기가 볼을 스치는 느낌에 눈을 떴다.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천장 팬이다.    방안?   그녀는 머리를 움직여서 옆이나 어디를 보려고 했다. 그녀는 머리맡 쪽에서 소근소근거리는 영어 대화를 들었다. 운진씨?   "Oh! I think she's up. (아! 그녀가 께어난 것 같소.)" 운진의 음성이다.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뒷통수부터 만졌다. 아, 어퍼...   "아, 아파요?"   운진이 숙희의 앞으로 와서 섰다. "아파요?"숙희는 상을 쓰며 주위를 둘러봤다.그녀는 정복 경찰 두 명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된 거?..."   "우선은 숙희씨 아버님이랑 사촌 되는 사람과 사촌의 친구란 남자에게... 숙희씨가 차지(charge)를 원하는지... ..

5-9x049

운진과 숙희는 괜히 서먹서먹하게 며칠을 보냈다.운진은 집으로 가지 않았고 숙희는 화원을 떠나지 않았다.그녀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 그대로.그러나 둘 사이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온 일요일.둘이 개를 앞세우고 차 안 다니는 길을 따라 나란히 걷는데. 이 날따라 운진이 유난히 주위를 신경쓴다.그는 뭔가 예감이 되게 안 좋다. 그 안 좋은 예감이 그에 대해서인지 그녀에 대해서인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다.그는 숙희를 길 가장자리로 걷게 자꾸 밀었다.숙희는 길 가장자리의 모래가 신에 달라붙으니 싫어서 차도로 올라서는데. 그가 자꾸 몸으로 밀어서 그녀로 하여금 굳이 흙을 밟고 가게 하는 것이다.그들의 뒤에서 자동차가 다가오는 소음이 들려왔다.운진은 ..

5-8x048

그런데, 병선모가 아들 말을 전해 듣고 약간의 질투심에 언니를 찾아가서 약 올리고 난 후 건진 것은 있었다.운진모는 동생이 가고 난 후 생각하다 보니 참았던 울화기 치밀었다.그래서 그녀는 화원으로 갔다.   "엄마!"   운서가 대번에 눈치채고 달려 나왔다. "왜 왔우!"   "이 망할 놈의 자식, 어딨니!"   "엄마!"운서가 모친을 막으려는데, 기운이 펄펄 넘치는 노인네가 딸을 밀어 버렸다.운진은 밖에 나오기 싫다는 숙희를 데리고 밭에 나가서 돌아보는 일 겸 산책을 하다가 어디서 악악거리는 고함소리를 들었다.   엄만가?그는 숙희 모르게 뒤를 슬쩍 돌아다 봤다. 왜 오셨나, 또...운진의 왜 오셨나 또 하는 투정은 모친의 첫욕에 사그라졌다.그의 모친이 밭에까지 한달음에 달려 와서는 숙희를 확 떠다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