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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녹차잔을 두 손으로 만지며 호호 불어 마시는 영란은 친정엄마가 나무라듯 던진 말을 들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여자는 서방 있을 때가 대접받는 법이다... 라는 말을.그 말을 들었을 때, 영란은 친정엄마를 무시했다. "엄마.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다 착해진대."   "그런 소릴..."   "엄마 말이야. 내 서방을 엄마가 그렇게 미워하더니, 딸이 죽게 생겼으니까 이제 착한 마음이 들어?" 딸의 그 말에 영란모는 다른 때 같았으면 딸의 그 싸가지 없는 말에 뒤잽이가 여러 차례 났을 텐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큰딸이야 말로 죽을 때가 되니까 착해지는지.영호가 누이를 병원에 태워가고 기다렸다가 집으로 태워오는데 어느 날 기다리는 동안 어느 누구에게 불려가서 놀랄 만한 말을 들었다. 암세포가 무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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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도 안 받고 아파트도 안 받길래... 밖이야?”   “애들이랑 밥 먹어, 지금.”   “맨날 외식하나 보지? 밖에서 먹어봐야 늘 그게 그건데. 집에서 해 먹어야 살로 가지.”   “그렇지.”   “영호가, 지가 실수를 했다고, 미안한가 봐요. 전해달래.”운진은 지금 영란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영호 얘기는 꾸며댄 말인 걸 안다. 그는 하마터면 거짓말 하지 마 하고 야단칠 뻔 했다. “미친 자식! 지는 사내새끼가 입이 없나?”   “직접 말하기가 쑥스러운가 보지. 나 보고 그러네. 매형한테 미안하단다 말해달라고. 걔도 나이만 먹었지 귀엽게만 자라서 뭘 몰라. 자기가 이해해요.”    ‘당신네 식구가 다 그렇지! 영아만 빼고.’ 그에게서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안 나왔다. "하여튼 알았다고."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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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영란을 방까지 부축해 주고 머뭇거리다가, “난 가게를 가 봐야 해서,” 하고 거기를 나왔다. 킴벌리가 같이 따라 나오려는 것을 나중에 언니랑 오라고 떼어놓고 돌아서니 영호가 거친 말투로 욕을 시작했다. “야 이 새끼들아! 엄마가 암 수술 받고 왔는데 그 태도들이 뭐야! 싸가지 없는 새끼들!”운진은 영호가 자신을 향해 시비거는 줄 알면서 그냥 지나쳤다.    ‘잘 해 봐라!’킴벌리가 계단을 쿵쾅거리며 뛰어내려왔다. “Shit!”   “뭐? 쓋? 너 지금 삼춘보고 쓋 했지!” 영호가 소파에서 발딱 일어섰다.킴벌리가 삼촌 영호의 코 앞까지 달려가 덤비려는 것을 운진이 막았다.    “야, 넌 조카한테 새끼가 뭐냐!”   “왜, 내 조카 새끼한테 야단도 못쳐?”   “니가, 임마, 무슨 주제에 조카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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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음에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가득했지만 어쨌거나 거리와 상점들은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탐내며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어느 날 오후 자신의 차 렠서스를 몰고 병원으로 태우러 온 동생 영호의 푸념을 귓전으로 흘려 들으며 영란은 뒷좌석의 부드러운 가죽 표면에 몸을 기댔다.   “집은 그 동안 니가 봤니?”   “그럼 또 누가 있는데?”동생 영호의 그런 자만스런 말대꾸에 영란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손짓을 했다. 2 주를 입원해 있으면서 방사선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영란은 이미 삶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고통이 심했어서가 아니다.병원에 있는 동안 두번인가 왔다간 딸 둘은 이미 엄마 편이 아니었다. 마치 누가, 아빠가, 강제로 보내서 마지 못해 왔다는 표시를 대놓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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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면서 사내에 또 한번의 불길한 소식이 돌았다. 어쩌면 회사가 서부의 어떤 회사에게 곧 팔리게 되고 무지무지한 감원이 단행될 거라는 소문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건물이 통째로 비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정보가 돌았다.   쑤는 중역인 관계로 굳게 닫힌 커튼 뒤에서의 회의에 참석했다. 제프까지도 목이 잘리는 합병이지만 쑤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귀뜸에 VP 급 임원들이 부러운 한숨을 보냈다. 단 한가지 조건은 숙희의 서부로의 인사발령이었다. 회의를 끝내고 나오면서 제프가 쑤에게 보직은 똑같은 인사부 VP를 유지할 것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이유는 그녀가 인사문제에 전혀 부정이 없고 평점이 늘 상위권에 들었었기 때문이라 했다. 서부에서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제프는 이 참에 자신의 여태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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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 사실 작은딸의 저주를 담은 욕을 들은 이후로 연 삼일을 머리를 싸매고 누웠었다. 남편이야 헤어졌으니 이제부턴 남남이라 쳐도 딸들은 평생인데, 키미에게 모진 욕을 먹고 나니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아이들을 어떻게 해 놨길래 하루 아침에 에미를 웬수처럼 여기게 하니! 그래도 난 지들한테 한 게 미안해서 울음이 나왔는데!’    킴벌리가 문을 모질게 닫고 나가는 바람에 현관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여지던 르노아르의 초대형 소녀상 액자가 떨어져 박살이 났다. 그 잔해들은 아무도 치워줄 사람이 없어 현관문간에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그 말은 영란이 며칠 동안 방 안에서 나와 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일요일날.운진은 아파트로 놀러온 형록과 그의 밴추렄으로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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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 남편에게 킴벌리가 어떻게 하고 갔다는 말을 하지않았다. 어차피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아비란 자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아이가 본성이 나와서 그런 것을 새삼스레 거론해 봐야 대답을 요구하는 바도 아닌 마당에...단지 아이들이 엄마의 망가져 가는 병색을 보지 않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가졌다.   조가란 자는 냉장고를 뒤져서 아무 것이나 먹으면 치울 줄을 모르는 자이다. 여기저기 쓰레기들을 흘리고 다니질 않나. 그리고 기회만 닿으면 뭘 그리 뒤지는 것이었다.문제는 그 자가 드나드는 것을 영란이 단호하게 물리치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의사에게 연락을 취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겠다고 했을 때, 일종의 의아해 하는 반응을 받았다.   "바깥 양반하고 의논이 되셨나 보군요?"    "네... 그런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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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말을 다 해버리고 딸의 비명이나 발악을 예상했다. 그런데 딸 아이는 전혀 뜻밖으로 소리없이 웃으며 앞을 지나 가게로 나가는 것이었다.   ‘허! 쟤가 웃어, 지금?’ 운진은 다행이라 해야할지 어쩔지 분간이 서질 않아 앉은 대로 멍하니 맞은 편 벽을 올려다봤다.챌리가 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봤다. "대디?"   “엉, 챌리야?”   “How much is this? (이거 얼마야?)” 챌리가 조그만 크기의 병을 들어보였다.   “오, 그거?”운진은 핑게김에 가게로 나왔다. 그는 챌리에게 대충 생각나는대로 값을 말해주고 킴벌리를 찾으려고 가게 안을 살폈다.킴벌리는 캐리아웃의 아주머니와 얘기를 하며 감자를 튀기고 있었다. 그녀는 높이 올라앉는 나무 걸상에서 아빠를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아주머니는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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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은 말도 못 붙이겠어요. 쟤 멘스까지 겹쳤으면..."   챌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쟤 오늘이 그런 거 같애, 아빠.”운진은 계산 찍던 것을 챌리에게 넘기고 밖의 차 안에 있는 킴벌리를 보러 나갔다.킴벌리는 차 시트를 뒤로 끝까지 젖히고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운진은 유리창을 두드리려다가 그만두고 돌아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쟤 화 가라앉을 때까지 그냥 놔두자.”킴벌리는 한참 만에 가게로 들어왔는데 여전히 골이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디. 나 술 줘.”   “안 돼, 임마!”   “줘!”   “노! 아빠 마이너한테 술 줬다가 프리즌(감옥) 가!”   “Bullshit!” 킴벌리가 욕을 내 뱉고는 뒷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부서져라 닫았다. 가게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그 ..

pt.1 18-1x171 하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하늘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2주에 한번씩 학교 공부가 꼭 밀리지 않으면 엄마를 찾아 볼 수 있다는 이혼 판결 때문에 그걸 지키러 챌리가 동생을 태우고 왔다가 엄마가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르고 마치 미친 여자의 형상으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딸 둘은 돌아섰다. 킴벌리는 밖에 나와 우는데 챌리는 속이 후련해졌다. 이제야 엄마가 뉘우치나 보다고, 챌리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주머니에서 셀폰을 꺼내 아빠의 가게로 전화를 했다.   “응, 그래, 챌리야. 엄만 어떠시대?”   “엄마 울어요.”   “너 보자마자 우시대?”   “아뇨. 혼자 우는데 좀 달라요.”   “다르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그냥 우는 게 아니구, 하여튼 좀 달라요.”   “무슨 말인지 모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