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77

pt.1 10-10x100

숙희부가 자세를 바꿔 앉으며 운진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운동하고 폭력하고 구분도 못 해?"   "전... "   "내가 유도 태권도 합쳐서."숙희부의 말은 거기서 끊어졌다. 숙희가 부친의 팔뚝을 쳤기 때문이다.   "9단이다." 한순갑은 끝끝내 구라쳤다.   “아아, 어쩐지이.” 운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인간의 근본은 어딜 갖다 놔도 안 바뀌는군.   “뭐가 어쩐지. 운동 말야?”   “녜. 숙희씨도 유단잔데,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자네 운동한 거 없으면 우리 숙희한테 늘 터질 텐데?”   “녜.”   "예란다. 이 친구 너한테 맞아봤구나?"   "아빠!"운진은 기분이 뭣 같이 되어가는 것 같아 무안한 척 하고 뒷머리를 만졌다.   “헛헛헛! 지금은 약과다. 얘가 한창 운동..

pt.1 10-9x099

그러나 운진은 숙희와 만나기로 한 날, 운동화에 편한 옷으로 입고 약속 장소로 갔다. 집 동네에서 좀 떨어진 어떤 도넛가게였다. 숙희가 손짓하는 곳으로 가니 챙 넓은 모자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눈초리가 아주 제법 무서운, 남자가 쳐다봤다. 그리고 보니 실제로는 물론 그렇지 않지만 숙희가 분위기나 제스처가 부친과 많이 닮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쩐지 딸을 그런 운동을 시킨다 했지…’운진은 반사적으로 구십도 깎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숙희부는 좀 거만하게 인사를 턱짓으로 받았다.숙희가 자신의 부친 옆에 앉은 채로 운진에게 맞은 편자리에 앉으라고 가리켰다.운진이 앉고 나니 그녀의 부친이 말을 던졌다.    “금방 한 말을 영어로 해 봐.”   “안녕, 하십니까 그거 말씀이십니까?”   “지..

pt.1 10-8x098

이튿날 숙희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운진은 영란과의 통화를 마악 끝낸 참이었다.   “어제 전화가 안 됐네요. 처음엔 아무도 안 받다가 나중엔 아버님이신가 본데 운진씨 집에 없다 그러시구. 또 조금 전까지는 계속 통화 중이더라구요.”   “아, 예. 누구랑 통화 좀 하느라구요.”   “졸업식장에 제가 좀 늦게 갔는데, 운진씨 안 계시더라구요? 일찍 가셨나 보죠?”   “아뇨? 늦게까지 남아 있었는데요?” 운진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며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요? 하긴 스태디움이 좀 커야죠. 사람들도 많고."   "그러니까요."운진은 숙희와 통화하면서 영란의 어떤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우리가 틴에이저들도 아니고 어쩌다 만나면 밥이나 먹고 영화나 보는 그런 시간낭비를 하지 말자는.....

pt.1 10-7x097

운진은 아무래도 숙희에게 큰 실례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 좋기 시작했다.그러나 그의 그러한 것은 영란의 말이 계속됨으로써 쑥 들어가버렸다.   "저는 외과를 하고 싶었어요."   “외과 계통요?”   “네! 호호호! 저 그런 거 좋아해요. 인명을 살리는 그런 일. 우리 부모님 꿈이 너무 높아요. 딸이 세계 무대에 서는 걸 꿈꾸신 모양인데. 처음엔 못 해 드리는 게 죄송하구 미안했는데, 이젠 아녜요.”   “동생…은, 잘 해 나가요?”   “우리 영아요?”   “녜.”   “걘 머리가 좋아요. 근데 노력을 안 해요. 지는 시집이나 일찍 간대요. 열네 살짜리가 아주 응큼해요. 지는 어쩌면 하이스쿨도 안 마치고 시집 갈 만한 데가 나오면 간대요.”   “집에 딸만 둘입니까?”   “아뇨. 한국에 ..

pt.1 10-6x096

그 때 운진의 부친 오상현이 판티액 스테이숀 웨곤을 인도 앞에 댔다. 옆자리에 앉은 그의 모친이 영란을 보고는 고개를 까딱했다.    “어머! 부모님?”    영란이 허리를 구십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그의 부모는 전혀 뜻밖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에에하고 건성으로 대꾸했다.   “교회... 같은 성가대 친구예요.” 운진이 구차한 변명을 했다. 말해놓고 그가 무안스러웠다. 여자랑 친구?   “저, 제가 운진씨한테 졸업 축하로 한턱 내려 했는데요, 어떠세요, 같이 가실래요?”    영란이 말했다. “어디 좋은 레스토랑으로 모실께요.”   “우, 우린 괜찮소.” 운진의 부친이 더듬거리며 대꾸했다.   “너나 가 봐라.” 그의 모친이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 플리이즈, 엄마! 왜 그런..

pt.1 10-5x095

숙희의 차를 운진이 몰며 포토맥 강 가의 순환도로를 맴돌았다.   “전, 처음부터 그 여자 보고, 후회할 거라고 하지 말자고 했어요.”    “또 그 얘기시네. 우린 하룻밤 불장난 하자는 게 아니었죠. 말씀은 바로 하셔야죠. 오, 저랑 하룻밤 자고는, 어디론가 사라지려고 하셨어요? 그럴 속셈이었어요?”   “이왕 말이 여기까지 나온 거, 질문 하나 합시다.”   “하세요.”   “제가, 옛여자랑 하룻밤 같이 잤다고 말해도, 절, 아직 결혼 상대로 받아주시는 겁니까?”   “아아. 처음에 들었을 때는 솔직히 실망했어요. 제가 그 후론 깨끗하니까 내 상대도 깨끗했으면 하고 바랬는데, 할 수 없죠. 그냥 못 들은 척 받아 주던가, 아니면, 저도 어디 가서 순결을 주고 와서 쎔쎔을 하던가, 그래야겠죠?”숙희는 ..

pt.1 10-4x094

그녀의 집은 전에 늘 보아왔었지만 그 날 다른 일로 들른다고 하니 운진에게는 마치 수백개의 계단으로 된 성벽을 오르는 느낌이었다.집안을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모친이 대번에 언성을 높였다. “너, 지금 나랑 뭐 하는 거니!”    “사귀는 남자 소개한다고 했잖아요!” 숙희의 말투는 당당했다.      “썩 나가! 예가 어딘 줄 알고 감히!” 그녀의 모친이 운진의 코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그녀의 눈과 입에서 분노의 광기가 쏟아져 나왔다.운진은 겁도 나고, 한편으로는 오기도 났다. 십할, 날 뭘로 보는거야!’   “아빠!” 숙희가 이층에 대고 고함을 쳤다.   “아빠도 이 이 안 보신단다. 나가! 썩 나가!”    매자는 그를 아예 밀어낼 기색이다. “너두 어디서 이런 놈팽이를 데리구 다니니!”    이런 놈..

pt.1 10-3x093

18년 전의 봄 운진은 숙희의 부모를 만나러 갔다. 집에서 계속 선을 보란다는 그녀의 말에 운진은 실망이 되었었다. 실망은 되지만 대책이 없는데 숙희의 충고로 그녀의 부모를 만나러 가기로 하게 되었다.   “원래는 여자가 남자 집에 먼저 찾아가서 보이는 거 아닌가?” 운진이 중얼거렸다.   “제가 좀 밀리는 실정이라 그래요.” 숙희가 후후 웃었다.   “왜요?”   “엄마가 계에 나가는데, 거기에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 조카를 자꾸 저랑 소개하자 하나 봐요. 엄마는 이미 본 눈치구, 압력이 좀 거북해요.”   “제가 가서 어떻게 해야하나요?”   “이래서 내가 운진씨를 좋아한다니까요? 이렇게 하세요. 지금 운진씨 칼리지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는데 그거 끝나면 원래 전공한 걸 살려 보려 한다아. 그때까진 시..

pt.1 10-2x092

영아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래도 언니한테는 아는 척이나 내색을 못 하죠. 제가 언니나 오빠한테 먼저 물어보면 제가 형부랑 이렇게 뒤에서 대화하는 걸 다들 알죠.”   “그렇네, 참! 내가 생각이. 그럼, 처제만 속으로 알고, 맘대로 해요. 나가 주든 지 말든 지.”   “가겐 지켜야죠. 그것 마저 닫게 하면 어떡해요. 먼저 판 가게도 지금 아주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그거야... 언니가 알아서 하겠지. 뺏기든 뺏든. 난 상관 안 하니까.”   “수중에 돈은 있으세요? 언니가 집에 있던 돈은 다 내다 쓴 모양인데.”   “며칠치 매상이 있는데, 좀 그러네. 하지만 가게를 계속 열어서 돈 좀 충당하라구. 오빠 감시 잘 하구.”   “또 돈에 손 대죠?”   “흥! 어제도 백불 빼서는 형록이랑..

pt.1 10-1x091 별거의 시작

별거의 시작   운진은 아내가 싸늘히 내뱉고 간 말을 그대로 될 거라고 믿어버렸다.    ‘내일부터 가게는 지네들이 열겠지. 형록이도 마침 없고. 잘 해 봐라.’          운진은 총을 일부러 책상 위에 놓고 리빙룸으로 나갔다. 거기서 얌천히 경찰을 기다리기로 했다.경찰이건 누구건 총을 발견해서 제발 나 좀 끌고 가라고 빌었다. 운진은 소파에 누워 지난 일들을 되뇌이며 분할 때 흘리는 그런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끌어온 결혼생활이 후회되고 아내가 뭇남자들과 성행위를 하는 상상을 하니 미치고 팔짝 뛰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여길 나가버리자! 다 없던 일로 하자!' 운진은 벌떡 일어났다가 맥이 풀려 도로 눕고 잠을 청했다.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고 창문으로 불빛이 번쩍번쩍 비쳤다.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