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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겨울 바다를 찾은 방문객들을 먼 발치에서 촬영한 장면들이 나왔다.여자 앵커가 '따뜻한 기온 영향으로 제법 되는 인파가 바닷가에 몰렸다' 고 좋은 뉴스를 내보내고는 이내 좀 전에 다른 채널에서 보았던 것과 각도가 다른 장면의 빌딩 모습과 바람에 펄럭거리는 접근 금지 경고 노란 테이프 줄이 건물 입구를 막은 것을 보여주었다.   '제레미... 래스트 네임이 뭐야. 코... 코그네? 제레미!'운진은 곁눈질로 화장실 쪽을 훔쳐봤다. '제레미라면 향수 준 그 새끼 아냐! 허!'운진은 숙희가 새 향수를 여태 지성껏 지니고 다니는 것을 안다.그 새로 보이기 시작한 향숫병이 지금도 모텔 방 화장대에 놓여있고.그녀가 좀 전까지 옆에 있었을 때 그녀는 그 새로운 향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운진은 텔레비젼의 볼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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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일행은 저녁을 먹고 난 후, 바닷가를 더 거닐면서 짝끼리 또는 바꿔서 다녀봤다.두 딸의 약혼자들은 일요일에 각각 중요한 약속들이 있다고, 그날 밤으로 떠났다. 챌리와 킴벌리는 따로 얻은 방에서 잠만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아빠 엄마를 못 보고 떠나야 한다고 했다. 게임기는 아빠 엄마가 나중에 올 때 챙겨서 가져오라 하고...숙희는 배가 꺼져야 자겠다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 집에서도 늘 그러듯 밤 뉴스 프로를 틀었다.    "나 너무 먹었나 봐, 자기. 그치..."그녀가 배를 슬슬 쓰다듬었다.운진은 침대 옆에 놓인 접는 소파에 길게 앉아서 TV를 보다가 아내를 봤다.    "글쎄. 걱정될 정도로 너무 먹더라구. 그것도 급히. 그러면 안 되는데..."그의 말을 숙희가 손을 내저음으로써 제지했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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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즉 토요일 이른 저녁 때였다. 딸들과 약혼자들은 다 큰 것들이 실제로 어려서 가지고 놀던 비데오 게임을 하며 모텔 방 안이 떠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결국 숙희가 참고 기다리다가 먼저 일어섰다. "나가, 우린, 자기."그래서 운진이 파커를 걸치고 숙희를 따라 나서려는데, 다른 네명이 게임을 껐다.   "Who's buying? (누가 사는 거지?)"   그 중 제일 부잣집 아들인 개리 주니어가 주위 사람들을 둘러봤다. "Them? (그들?)"넷의 눈이 운진과 숙희에게 향했다.그런데 숙희가 '노!' 하며, 고개를 차게 저었다.   "우와아! 엄마가 다 낸대더니?" 킴벌리가 놀랐다는 제스처를 보였다.어쨌거나 여섯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방을 나섰다.제이콥이 잽싸게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Is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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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와 운진은 딸들 앞을 지나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챌리가 셀폰을 귀에서 잠시 떼었다. "낼 아침에 온대, 아빠."   "엉, 그래애!" 숙희가 대신 얼른 대답했다.   "누가? 뭐?"   "됐어어!" 숙희는 어깨로 남편을 밀었다.한겨울인데도 그리고 밤인데도 물에서 먹을 게 찾아지는지 멀리서 바닷새들이 부지런히 난다. 보드워크의 조명에 하얀 새들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 다닌다.주위에 사람이 별로 없는 방파제를 만나져서 숙희가 운진을 그리로 밀었다.   "나... 정말은, 자기... 겁이 많어. 알어?"   "나도 그렇게 봤소."   "그래서... 자기한테 고백하자면..."결정적인 말이 나올 순간인데, 챌리와 킴벌리가 다가와서 왁! 하고 놀래키는 장난을 하는 바람에 숙희의 심각했던 마음이 사라졌다.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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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의 철학에 '매달린다' 라는 단어가 참 생소하다. 그러니까 남에게 '간청한다' 라는 뜻도 되나 본데, 여태껏 살아온 숙희는 남들이 그녀에게 매달리고 간청했으면 모를까 그녀가 남에게 그래 본 적이 전혀 없어서 낯선데 이제는 혼자 대하기에 벅찬 현실을 남편에게 부탁 내지는 협조를 구해보고 싶어도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아직은 내가 이 이를 백 프로 모르니까.'숙희는 저도 모르게 남편의 팔 힘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운동 같은 것도 안 해봤다 그러고... 그 전에 내가 때리면 피할 생각도 없이 맞기만 하고... 툭 하면 삐치는 남자를.'그런데 그가 전에 사람을 돌로 때려서 하마터면 살인 미수로 들어갈 뻔 했었던 사건을 어찌 설명할까...    김 선생 말처럼 이 이에게 어떤 잠재력이나 저력이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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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진은 혼자 앉아있다가 세 여자가 다가오니 풋 하고 싱겁게 웃었다.   "왜 웃어, 자기?"   숙희가 당연히 남편 옆자리에 앉았다. "내 마실 건?"   "그냥, 스프라잇 시켰소."   "잘 했어, 자기. 괜시리 캐페인 든 게 싫어지네?"   "왜?"   "몰라. 마치 누가 내 귀에다 그런 거 그만 마시라고 하는 것 같애."운진이 숙희의 머리 언저리를 살펴보는 시늉을 했다. "아무도 없는데?"   "오오오!"   숙희가 건너편에 앉은 딸들을 보고 웃었다. "아빠가 조크를?"   "Is it? (그래?)"   "Is that a joke? (그게 농담이야?)"딸 둘이 가볍게 응수했다.숙희는 눈만 뜨면 진한 커피로 하루를 열고, 낮에도 조금 피곤하다 싶으면 역시 캐페인이 든 음료수를 찾곤 했는데, 이날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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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팈 씨티라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찾아온 둘은 실망했다.길은 엉망에다가 더럽고 보이느니 어디서 맨 카지노 선전의 휘황찬란한 간판 조명이 뻘건 대낮에도 눈을 어지럽혔다. 게다가 해가 오후로 기울어지면서 정면으로 들어왔다.그리고 어렵사리 찾아진 해변가는 열발짝 걸으면 끝나는 모래사장이 전부였다.애틀랜팈 씨티 하면 숙희에게 떠오르는 아픈 추억 하나. 첫순결을 성폭행으로 빼앗은 랠프가 만나자 해서 왔다가 또 봉변을 당한.그녀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들한테 미리 전화해야겠다, 자기."   숙희가 차문 잠긴 것을 눈으로 연신 확인하며 셀폰을 챙겼다. "우리 다른 데 가자, 자기."   "여기까지 왔으면 한번은 땡기고 가야지?"   "아니! 하지 말자, 자기! 우리 딴 데 가자, 응?"   숙희가 펄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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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웨어 주의 루이스(Lewes)란 곳에서 페리호에 차를 싣고 뉴 저지로 건너는 겨울철 행락객들이 제법 되었다.그들의 특징은 대부분이 노년층에 몹시 있어 보이는 부부들이란 점.그들은 눈만 마주치면 미소를 건네왔다.숙희는 오랜 습관처럼 역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자기 조금만이라도 웃어."   숙희가 운진의 귀에다 속삭였다. "자긴 미친 듯이 웃어야 정상으로 보여."   "엇, 치이!" 운진은 미친 듯이 웃으라는 말에 그렇게 웃었다.페리호가 그리 빠른 속도로 물을 건너는 것은 아닌데, 숙희는 목덜미에 찬 기운을 느꼈다.전에는 한 겨울에도 내복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젠 나도 늙었나 봐.'숙희는 난간과 함께 둘 전체를 붙잡고 있는 운진을 돌아다봤다. "자기 추워?"   "오, 당신 춥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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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 그녀가 운진이라는 남자로부터 기대한 대우라 함은 한국 남자가 아내에게 자상하게 베푸는 그런 대우를 말한다.그녀가 아는 한 미국인들은 특히 백인 남자들은 잘 할 때는 간 쓸개라도 내어줄 것처럼 하다가도 변심하면 전혀 남처럼 되어 버린다.그녀가 바라는 한국 남자들은 여자를 위하고 감싸주며 장난도 치고 하는 남자들이다.그리고 숙희는 특히 그런 남자에게 기대고 싶다.어려서부터 집에서 남자애처럼 키워졌고 그녀 또한 일곱살 됐을 때까지는 사내인 줄 알았다가...초등학교 시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이 가던 남학생놈들이 개천가에 일렬로 서서는 꼬추를 내놓고 누가 오줌을 더 멀리 쏘나 시합을 했는데, 거기서 숙희는 깨달았다던가...학창 시절 숙희는 인물 좋은 여학생 깡패였다.소위 칠공주파니 어쩌니 만들어서 남을 ..

pt.2 17-1x161 쉰둥이의 임신

쉰둥이의 임신   간단한 짐을 꾸려서 싣고, 운진이 운전하고, 부부는 뉴 저지의 해변가를 향해 떠났다.숙희는 옆좌석에 앉아서 몹시 들뜬 분위기였다.    "자기 나 일하는 동안 화났었나 봐?"   "아... 꼭 그렇지도 않은데."   "나는 나대로 답답해서 미치겠다라구. 한 회사의 감원 계획을 두 사람이 추진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거든. 게다가 마지막 발표하는 날까지 기밀이 절대 새어나가면 안 되고, 심지어 가족들과도 거론하면 안 되거든."   "그런 걸... 왜 요구한단 말요."   "기밀이니까. 만일 실수로 새어나가면 큰 파문이 일잖아. 안 그렇겠어?"   "어차피 다른 기업들 보니까 신문이 먼저 때리든데?"   "그건 매스콤에다가 슬쩍 흘리듯 발표하니까 그런 거구. 그 전에 작업은 미리 하는 거지..